산은 다시 산이요, 물은 다시 물이라
우리는 긴 여정을 통해 반야심경의 심오한 바다를 건너왔습니다.
오온이 공하다는 선언에서 시작하여, 세상 모든 법의 실체가 없음을 논증하고, 마침내 마음에 걸림이 없는 절대 자유의 주문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마지막화에서 우리가 도달해야 할 지점은 신비로운 도피처가 아니라,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바로 이 번잡한 세상입니다.
반야의 완성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지혜의 눈을 가진 채 다시 세상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는 '회향'에 있습니다.
흔히 수행의 단계를 말할 때 "처음에는 산이 산으로 보이고 물이 물로 보이다가, 공부가 깊어지면 산이 산이 아니고 물이 물이 아닌 단계를 거쳐, 마침내 다시 산은 산으로 보이고 물은 물로 보이는 경지에 이른다"라고 합니다.
여기서 마지막 단계의 산과 물은 처음의 그것과 다릅니다.
예전에는 집착과 욕망의 대상으로 산과 물을 보았다면, 이제는 그것들의 공성을 온전히 꿰뚫어 보면서도 그 모습 그대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지혜로운 시선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반야심경이 우리에게 주는 최종적인 삶의 태도입니다.
공을 깨달았다고 해서 세상의 질서를 부정하거나 허무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체가 없기에 매 순간이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찬탄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반야심경의 핵심인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결국 삶과 진리가 둘이 아님을 말합니다.
진정한 깨달음은 깊은 산속 토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 바닥의 소음과 직장의 업무, 가족 간의 갈등 속에 있습니다.
공(空)의 지혜를 증득한 보살은 현실의 문제를 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제가 공함을 알기에 더 용기 있게 직면하고, 그 속에서 최선의 인연을 만들어갑니다.
생활 속에서 보살도를 실천한다는 것은 내가 만나는 모든 인연을 부처로 대접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나를 힘들게 할 때도 그 모습이 고정된 실체가 아님을 알고, 그 이면의 고통을 함께 느끼며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지혜도 없고 얻을 바도 없다"는 가르침은 우리를 모든 결과에 대한 강박에서 놓아줍니다.
내가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상조차 내지 않고 묵묵히 행할 때, 그 행위는 가장 순수하고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이렇게 색(色)과 공(空)이 하나로 녹아든 삶은
매 순간이 축제이며, 우리가 머무는 그 자리가 바로 극락정토가 됩니다.
반야심경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무유공포, 즉 두려움의 소멸입니다.
인간의 모든 두려움 중 으뜸은 죽음에 대한 공포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생겨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불생불멸의 도리를 배웠습니다.
파도가 부서진다고 해서 바닷물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듯, 우리의 육신이라는 인연이 다한다고 해서 생명의 본질인 공성이 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죽음이 공함을 아는 사람은 삶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내일 죽음이 오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보살의 마음은 바로 이 공성의 확신에서 나옵니다.
상실과 이별이 닥쳐올 때 슬퍼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 슬픔의 뿌리에 매달려 자신을 파괴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것은 잠시 인연으로 모였다가 흩어지는 구름과 같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당당함은 우리를 삶의 주인으로 세워줍니다.
어떤 시련이 닥쳐도 "이 또한 공(空) 한 것"이라 미소 지을 수 있는 여유, 그것이 반야심경을 가슴에 새긴 이가 누리는 최고의 권능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향해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모든 것이 공하기에 모든 것이 가능하며, 내가 없기에 우리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반야심경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본래 가지고 있던 그 눈부신 지혜를 가리고 있던 무명의 커튼을 걷어주었을 뿐입니다.
이제 경전을 덮고 세상 속으로 나가십시오. 여러분이 마시는 공기, 만나는 사람, 겪는 고통과 즐거움 그 모든 것이 반야의 현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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