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과 나흘 소동,

우리는 왜 글자 뒤의 뜻을 놓치는가

by 현루

1. 낯선 언어가 되어버린 우리의 일상


​2020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사흘’ 소동을 기억하시나요?

연휴가 사흘이라는 기사에 “3일인데 왜 4일(사흘)이라고 거짓말하느냐”라는 항의 댓글이 빗발쳤던 사건입니다.

누군가는 이를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하며 웃어넘겼지만, 교육 현장과 사회 곳곳에서 들려오는 비명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금일(今日)'을 금요일로 알아듣고 과제를 제출하지 못한 대학생,

'무료(無料)'를 공짜가 아닌 '지루함'으로 오해해 화를 내는 보호자,

'고지식하다'를 '지식이 높다'는 칭찬으로 받아들이는 아이들.
​우리는 지금 글자를 소리 내어 읽을 줄은 알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의 뼈대를 읽어내지 못하는 '실질적 문맹'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문해력(文解力)이란 단순히 글자를 아는 능력이 아니라, 글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타인과 '조화'롭게 소통하는 능력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아이들의 문해력은 뿌리가 뽑힌 나무처럼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우리는 어디서부터 단추를 잘못 낀 것일까요?


​2. 글자 뒤에 숨은 뜻을 잃어버린 아이들


​문해력 저하의 가장 큰 원인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뿌리'인 한자어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한국어는 고유어와 한자어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는 언어입니다.

하지만 한자 교육이 공교육에서 멀어지면서, 아이들은 단어의 속뜻을 유추하는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예를 들어 '사흘'이라는 단어를 봅시다.

'사흘'은 순우리말입니다.

그런데 왜 아이들은 이를 '4일'로 오해했을까요? 숫자 '4'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뜻을 짐작해 버린 것입니다.

만약 아이들이 '초하루(1일), 이틀(2일), 사흘(3일), 나흘(4일)'이라는 우리말의 체계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접했다면, 혹은 숫자 '석 삼(三)'과 관련된 어휘들을 통해 수의 체계를 한자로 이해했다면 이런 오해는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한자어 오해입니다.

'심심(甚深)한 사과' 사건이 대표적입니다.

'깊을 심(深)' 자를 쓰는 이 단어는 "마음의 간절함이 매우 깊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한자를 모르는 세대에게 '심심'은 오로지 '지루하다'는 의미로만 읽힙니다.

상대방의 깊은 진심이 담긴 사과가 졸지에 성의 없는 장난으로 변질되는 순간, 소통의 '함께함'은 깨지고 불필요한 분노와 갈등만 남게 됩니다.


​3. 문해력은 '세상'을 읽는 눈이다


​글자를 읽지 못하는 것은 불편함에 그치지만,

뜻을 읽지 못하는 것은 세상을 오독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단어 중 한자어의 비중은 약 35% 수준이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와 전문 용어로 넘어가면 그 비중은 70%를 상회합니다. 즉, 한자를 모른다는 것은 아이들이 교과서라는 지도 없이 거친 지식의 바다에 던져진 것과 같습니다.
​학습 결손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수학의 '정의(定義)', 사회의 '권리(權利)',

과학의 '증발(蒸發)'. 이 모든 단어는 한자라는 열쇠가 없으면 열리지 않는 상자입니다.

열쇠가 없는 아이들은 이 상자들을 통째로 암기하려 듭니다.

이해가 수반되지 않은 암기는 금세 휘발되고, 아이들은 공부를 '지루하고 어려운 것'으로 정의 내리며 포기하게 됩니다.
​문해력이 높은 아이는 단어 하나를 접할 때

그 글자가 품고 있는 이미지와 맥락을 유추합니다. '함께'라는 뜻을 가진 '공(共)' 자가 들어간 단어들을 보며 "아, 이것은 여럿이서 조화를 이루는 일이구나"라고 스스로 깨닫습니다.

이러한 유추 능력은 지식을 확장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감정과 사회적 맥락을 읽어내는 공감 능력으로 이어집니다.


​4. '조화'와 '함께함'을 위한 언어의 회복


​우리가 다시 한문을 익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과거로 회귀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나은 미래, 더 깊이 있는 '함께함'을 실천하기 위해서입니다.

언어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입니다.

다리가 부실하면 마음은 전달되지 못하고 허공에서 흩어집니다.
​한문 공부는 단어의 뿌리를 찾는 과정입니다.

'사람 인(人)' 자가 두 사람이 서로 기대어 있는 모양에서 왔다는 것을 배울 때, 아이는 인간이란 본래 혼자 살 수 없으며 타인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감각합니다.


'평화(平和)'의 '화(和)' 자가 입(口)에 벼(禾)가 들어가는, 즉 모두가 골고루 배불리 먹는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아이는 진정한 평화의 의미를 가슴에 새깁니다.
​이처럼 한문은 단순한 문자가 아니라 인문학적 성찰의 시작점입니다.

풍성한 어휘력을 갖춘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고, 타인의 아픔을 깊이 있게 수용할 수 있습니다.

언어의 풍요로움이 곧 마음의 풍요로움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5. 뿌리가 튼튼한 나무는 흔들리지 않는다


​문해력 위기의 시대, 우리는 아이들에게 화려한 기술이나 지식을 먼저 가르치기보다 언어의 '뿌리'를 먼저 단단하게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한문은 그 뿌리를 지탱하는 핵심 영양분입니다.
​'사흘'을 몰라 당황하는 아이를 탓하기보다, 글자 속에 담긴 풍성한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글자가 가진 본래의 뜻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아이들은 비로소 타인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세상과 조화를 이루며 성장할 것입니다.
​이 브런치북은

암기 지옥으로서의 한문이 아닌,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공감의 폭을 키우는 '살아있는 한문'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더 넓은 세상을 향해 자신 있게 나아갈 수 있도록, 이제 그 뿌리를 함께 다져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