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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May 11. 2021

언제쯤이면 지혜로워질까

우매한 사람의 우매한 글


​​


슈테판 츠바이크 <위로하는 정신>

‘3. 창작의 10년’ 중


가장 지혜로운 사람조차 유혹을 피하지 못한다. 처음에는 자신을 알고자 하지만 나중에는 자신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다.

​​


*

나는 왜 글을 쓸까에 대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내 글을 보여주기엔 겁이 많고, 아무것도 쓰지 않고 살기엔 쓰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100일을 쓰고 365일을 써도 줄지 않는다. 내일 쓰고 싶은 것들이 오늘 생긴다. 그런 인생을 살고 있다.



일기를 오랫동안 썼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소설도 썼다. 성인이 되고부터는 뒤죽박죽인 기억을 정리해 혼자 보는 자서전을 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쓰는 글에 불필요한 것들이 그득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보기에 예쁘지 않은 것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것들. 누군가 알 필요도 없는 것들. 그래도 나는 쓴다. 그것들이 내가 쓸 수 있는 전부다.



글을 쓸 줄 알면 그때의 순간이 한 장의 종이 위로 펼쳐질 줄 알았다. 나는 위대한 작가가 아니고, 내가 읽었던 책들은 모두 글재주라면 혀를 내두르는 재능가였으며, 내 글이 그들의 글과 같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한데도 나는 막연하게 그런 상상을 했다. 머릿속에서만 회상하던 것들이 온갖 색채와 함께 그때의 감정을 담은 이야기가 되는 것을. 눈이 부시고 찬란한 한 권의 책이 되는 것을.


하루하루 일기를 쓰면서 깨닫는다. 그때, 그날의 하늘이 쪼개지고 천지가 개벽하는 것 같은 고통도 오늘과 똑같은 하루였을 것이며, 빛이 내려오지도 교훈적이지도 않았다는 걸. 그저 내가 자라고 변하는 과정이었을 뿐이었다는 걸 말이다.



글을 쓰는 것은 재미있다. 누군가 보아 주길 간절히 원하는 것도 아니고, 글을 쓰며 돈을 벌고 싶은 생각도 없기 때문에 나는 나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되는대로 써재낀다. 그리고 모든 글에 조미료를 뿌려 스스로가 조금 더 그럴듯하고 멀쩡한 인간으로 보이도록 간을 한다. 그래 봤자 내가 쓰는 글이라 사골처럼 우려 나온 경솔함과 성급함을 어쩔 수는 없지만, 양념으로나마 그 맛을 숨기려고 애를 쓴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실망하는 투로 몽테뉴가 출판을 앞두고 본인의 글을 어떻게 치장했는지를 말하며 아쉬워한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는 자기도 모르는 자신을 구체화하려고 펜을 들지만, 어느 순간 겉치레에 마음이 쏠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것을 쓸 때가 제일 즐겁다. 모두가 괜찮게 보아줄 글을 쓰려면 아무것도 손을 댈 수가 없다. 돈을 받고 내키지 않은 주제를 쓰는 건 더욱이 힘든 일이다. 나는 영원히 작가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나이를 먹다 보면 그때의 내가 얼마나 미숙했는지, 어떻게 변해왔는지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소심한 마음으로 안네의 일기를 동경한다. 한 사람이 그저 살아왔던 인생이 역사와 상황에 맞물려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을. 자세히 들여다본 사람의 삶은 그만큼이나 매력적인 것이다. 그래서 모두가 괜찮다고 말할법한 글에 관심이 없다. 영화 같은 인생을, 장르도 골고루 번갈아가며 찍는 내 삶을 쓴다. 신나게 묘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주제는 나 자신이다.



스스로를 알고자 했던 것이든, 본인을 꾸미려 하는 것이든, 글로서 남아있는 내가 만든 문장들이 하나하나 다 소중하다.


내가 우매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혜로워지고 싶어 내 글에서 과정을 찾는다. 내가 자라나고 있는 과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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