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인 May 15. 2021

한국에는 산이 많다

나한테는 무섭기만 한 산이 정말 많다



​​


한승태 <인간의 조건>

‘6. 퀴닝 Queening’ 중​


전라도의 산은 서울의 산에 비해 모든 면에서 ‘산’다웠다. 서울의 산이 빌딩과 도로 같은 것에 뭉텅뭉텅 잘려나간 채 도시의 변두리에 처박혀 있는 반면, 남도의 산은 당당하게 그 지역의 주인으로 군림하고 있었다.



 *​


한국에는 산이 많다. 곡선도 자연도 푸르름도 많다. 그리고 전해져 오는 이야기도 많다.



나는 산을 무서워한다. 바다가 막연하게 좋은 것처럼 나무가 무성한 산 안쪽도 막연하게 무섭기만 하다. 어떻게 그렇게 높을 수 있을까. 산에도 뼈가 있을까. 지질학자들은 산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어릴 적 살던 오두막집의 뒤편에도 산이 있었고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뒤에도 있었다. 친할아버지와 증조부모님도 산 허리에 묻혔다. 녹색 산이 굽이굽이 감싸고 있는 도로를 달리면 서울을 벗어났다는 실감이 든다. 여기저기 파 먹히고 구멍이 뚫려 힘겹게 버티고 있는 도심의 산들이 아니라 육지에 거대한 물결을 일으키는 용의 몸통 같은 산들. 산이 많은 나라에서 태어나 누릴 수 있는 것들이다.



사실이던 아니던 일제가 한국을 침략하며 백두대간의 혈에 쇠말뚝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괜히 등골을 섬찟하게 만든다. 산에는 바다만큼이나 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도깨비와, 귀신과, 채 찾아내지 못한 시체와 온갖 비밀들. 전설들. 산에는 숨을 곳이 너무 많다. 바다처럼 숨이 막혀 자연히 죽어버리는 게 아니라 더욱더 비참하게 쫓기고 헤매다 떨어지게 될 것 같다.


동생은 어릴때 아파트 뒷산 등성이를 겅중겅중 오르는 원숭이 같은 무언가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얼굴이나 모양이 보여선 안될 거리인데도, 멀리서 고만큼 선명하려면 고래만 한 크기 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도 동생은 그것이 흰 털이 북실북실한 원숭이 얼굴의 사족보행 짐승이었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 나는 차 안에서도 진한 녹색의 산을 가만히 바라보게 된다. 나도 이상한 존재와 눈이 마주칠 일이 있을까. 지금 차창옆을 지나가는 산은 나무와 숲 속에 무엇을 품고 있을까. 전래 동화 속에, 할머니 옛이야기 속에 있던 모든 것들은 실재하는 것이 아닐까. 깊은 산속 인간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매야만 마주칠 수 있는 곳에서 여전히 맥을 이어가고 있으면 어쩌지. 정말 어떡하지.


산은 무섭다.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기 좋은 곳이다. 육지임에도 불구하고 아무에게도 발견될 수 없는 곳으로.




매거진의 이전글 네가 태어나면 사랑받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