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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인 Jul 29. 2021

소다수 같은 여름

박완서, <목마른 계절> 속 여름 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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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야, 그렇지?



6월의 태양은 강렬하고 가로수는 싱그럽고 가뭄이 계속되는 날의 아스팔트를 축이는 살수차의 물줄기는 상쾌하다. 살고 있는 기쁨이 물줄기처럼 거침없이 피부에 끼얹혀 온다. 사는 건, 6월에 사는 건 소다수처럼 맛있다.

박완서, <목마른 계절> 6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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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밤에 달려도 선선하지 않다. 땀이 마르면 불어오는 바람에 몸이 서늘할 정도였는데 공기 전체가 데워졌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느낀다. 7월 열대야의 한가운데다.

박완서 작가의 묘사를 좋아한다. 물줄기처럼 끼얹혀오는 삶과 여름. 소다수처럼 맛있을 것 같은 그녀가 써놓은 유월. 이 책은 6.25 전쟁이 터지기 직전 어느 여대생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저렇게나 아름다운 유월은 선명해서 더욱 슬프다. 주인공의 앞에 곧 일어날 일들을 생각하면 더 이상 소다수처럼 맛있지 않다.​


싱그럽고 상쾌하고 흩뿌리는, 짧은 문장 사이에 온갖 공감각적 표현이 들어가 있다. 맛있고 눈부시고 무더울 것 같은 장면이다. 어떻게 해야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볼 때마다 목이 뻥 뚫리는 탄산을 들이켠 듯한 시원함을 가져다주는 박완서의 여름.

땀에 절어 집에 들어왔다가 팽팽 돌아가고 있는 에어컨 바람을 맞으니 다시 그리워진다. 살랑살랑 부는 종이부채의 바람, 평상에서 벌컥벌컥 들이마시던 화채, 자잘하게 눈가로 내리던 나무 그늘과 덜덜덜 들려오는 낡은 선풍기 소리가. 애매하게 한국의 여름을 경험해 본 인간이라 마냥 그 시절의 공기만 찾게 된다. 척박한 서울살이에서는 에어컨이 꺼질 날이 없다. 옷깃을 여며야 할 정도로 벼린 바람이다. 가끔은 여름에 들어선 것 같지도 않다. 드라이아이스 같은 에어컨 바람이 무서운 나는 늘 겉옷 한벌을 챙겨서 가방에 욱여넣고 다닌다. 서울은 잠시라도 더운 것을 용납해주지 않으려나보다. 길거리는 아스팔트로 지글지글 익어가는데 더위가 싫으면 얼른 들어오라는 듯이 에어컨을 틀어재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냉탕과 열탕을 넘나드니 급격한 온도 차이로 몸이 병난다. 서울에 여름이 왔다.

향수병을 부르는 기억 속 여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테지. 아쉬운 일이다. 이제 전만큼 서늘해지지 않은 밤의 기온으로 간신히 여름을 느낀다. 강변을 달리며 물 가운데 혼자 떠있는 오리와 외롭게 서있는 왜가리가 내가 지금 느끼는 여름이다. 나이 먹은 새에 계절이 참 외로워졌다. 박완서 작가의 묘사 속에 선명해서 무서웠던 전쟁 전의 여름과, 내가 느끼는 고요하고 적적한 물새들의 여름. 그 사이 어딘가를 생각한다. 아마 내가 그리워하는 것들은 전부 그 틈바구니에 끼어 시간에 잡아먹혔을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모든 것이 부서지고 새로 지어진 지금 시대에.

소다수 맛의 여름이 그립다. 매일이 끓어버린 콜라 같은 요즘의 여름 속에서 나는 징징거린다.

사는 게 새콤하고 달짝지근했던 모든 계절들을 돌려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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