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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킴 starkim Feb 16. 2018

평범한 하루의 기적

“윤슬아, 오늘도 잘 지내보자. 잘 부탁해.”


아내가 출근하고 딸과 둘만 남겨진 아침. 지금은(!) 천사같이 예쁜 딸에게 속삭인다. 하지만 곧 울음을 터뜨리겠지. 아이가 울면 일단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한다. 젖병, 기저귀, 아기띠, 포대기, 베이비랩, 모빌 등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게 무엇일까? 아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모르니 답답하다. 하지만 조급해하면 안 된다. 지금 가장 답답한 건 표현조차 할 수 없는 아이일 테니. 최대한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해 본다. 여러 가지를 시도하다 그중 하나가 맞으면 안도의 한숨. 그게 아니면 다시 여러 가지 시도를 무한 반복한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힘들지만 싫지 않다. 이렇게 반복되는 평범한 하루 속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매일 자라고 있다. 그 평범한 하루 덕분에. 평범한 하루의 기적이다.


내 모든 것이 바뀌었다. 마치 지금까지의 내 삶은 이 순간을 위한 연습이었던 것처럼.


아내가 출근한 후 아이가 잠들었다. 잠든 아이의 모습은 정말 천사 같다. 간단하게 집 정리를 한다. 분명 자기 전에 정리를 했지만 또 해야 한다. 육아를 할 때 밤은 단순히 ‘자는 시간’이 아니다. 수면과 일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시간이다. 조금 먹고 빨리 배고파지는 아기들의 특성상 새벽에도 우유를 준비해야 하고,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 등 한밤중이라고 달라지는 건 없다. 몽롱한 상태로 급하게 처리한 일들의 뒤처리는 온전히 아침으로 미뤄진다.

필요할 때 바로바로 사용할 수 있게 아이가 깨기 전 아이를 돌볼 준비를 하고, 잠든 아이를 안고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는다. 하루 중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이다. 아이가 깨면 쭈쭈를 주고(젖병의 경우 살짝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먹여야 더 잘 먹더라), 트림을 시키고, 기저귀를 갈고, 아이랑 논다. 이때 아이가 잘 지내는 모습을 사진 찍어서 아내와 부모님께 보낸다. 안심하고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러다 윤슬이가 울면 앞서 이야기한 다양한 방법들로 달랜다. 다행히 윤슬이는 울음이 짧다. ‘울음이 짧다’라는 표현도 윤슬이와 함께하며 처음 들었다. 이내 아이가 울음을 멈추고 웃으면, 또 아이와 함께 논다. 컨디션 좋은 아이의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많이 담으려 하는데 생각보다 그 시간이 길지 않다. 1~2시간 놀고 나면 작은 입을 벌려 하품을 한다. 아이를 재울 시간이다. 아기띠나 포대기를 하면 두 손이 자유로워 집안일을 할 수 있다. 다시 어질러진 집을 정리하고, 아이가 깼을 때를 대비한다. 그리고 아이가 깨면 다시 반복.

이렇게 순서대로만 진행되어도 수월하겠는데, 육아는 언제나 예측 불가. 생각지도 못한 변수도 생기고, 아이의 컨디션도 늘 다르다. 매 순간 모든 감각을 집중해야 한다. 아이가 자는 순간조차도. 빡빡하고 힘든 일과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감동이다. 아이의 작은 행동, 작은 표현에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 맛에 육아를 하는구나. 지금이 힘들기보다 감격스러운 것은 어쩌면 모든 신경을 아이에게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 아닐까?



아이는 매일 자라고 있다. 그 평범한 하루 덕분에.



불과 100일. 내 모든 것이 바뀌었다. 마치 지금까지의 내 삶은 이 순간을 위한 연습이었던 것처럼. 우리는 여전히 알콩달콩 사랑하며, 아기자기하게 이 가정을 만들어가고 있다. 여전히 행복하고, 따뜻하며, 아름답다. 별다를 것 없는 일상에 작은 선물 하나가 왔을 뿐이다.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 없다. 그런데 집안 공기의 온도가 바뀌었다. 아빠가 육아휴직을 했을 뿐인데, 집안 공기의 무게가 바뀌었다. 내 마음도 바뀌었다. 

아이가 울면 처음에는 답답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윤슬이는 지금 얼마나 답답할까? 나의 무력함에 화가 나고 윤슬이에게 미안했다. 동시에 아내, 어머니, 장모님에 대한 존경심이 일었다. 정말 여러 가지 감정이 몰려왔다. 육아는 정말 쉽지 않다. 힘들고 어렵다. 윤슬이로 인해 내 모든 것이 변해간다. 상황도, 생각도, 나 자신도. 그렇게 부모가 되어간다. 참 기분 좋은 변화다. 

늘 깨어 있고, 늘 살아 있다. 결국, 이렇게 반복되는 평범한 하루가 아이를 키운다. 평범해 보이지만, 특별한 하루 속에서 나 역시 크고 있다. 오늘도 절대 돌아오지 못할 하루가 지나고 있다.


아빠가 육아휴직을 했을 뿐인데, 집안 공기의 무게가 바뀌었다. 내 마음도 바뀌었다.




윤슬아, 오늘도 잘 지내보자. 잘 부탁해.



<라테파파> KBS 김한별 아나운서의 육아대디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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