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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킴 starkim Feb 23. 2018

나만의 성공 기준

새벽 5시. 새벽 뉴스 앵커가 출근하는 시간이다. 하루를 시작하기에는 이른 시간. 새로운 소식으로 아침을 깨우기 위해 앵커들은 이른 새벽에 하루를 시작한다. 꽤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쉽지 않다.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출근해서 메이크업과 뉴스 준비를 마치고, 잠이 깨기도 전에 정신 차리고 생방송 뉴스를 하기 때문에 새벽에는 늘 예민하다. 최대한 빨리 생방송 모드가 되기 위해 모든 감각을 깨운다. 촌각을 다투며 ‘전투 모드’가 되어야 하는 치열한 일상의 반복. 마치 기계처럼 똑같은 패턴으로 반복되던 어느 날. 문득, 새벽 공기가 달랐다. 한순간에 긴장이 풀렸다. 이건 분명 가을이 왔다는 신호였다. 새벽 공기 속에서 가을을 발견한 순간. 가을의 흔적은 향기로 다가왔다.

‘핫초코를 마실 때가 왔군.’

가을이 오면 난 핫초코를 마신다. 아주 어릴 적 무척이나 아팠던 날이었다. 집에 온 손님이 핫초코를 사 왔다. 한참을 앓다가 엄마가 준 핫초코를 마시고 다시 잠이 들었다. 가을이었다. 잠들 때 코끝에 걸리던 가을 향기가 기억난다. 그때 그 가을의 향, 그때의 기억. 그때부터였다. 가을 하면 핫초코가 떠오르게 된 건. 새벽녘의 가을 향기와 핫초코. 나의 가을은 시작됐다. 뉴스에서는 아직 열대야와 폭염 얘기가 한창이지만.


남들의 기준과는 조금 다른 삶.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았다. 한마디로 늦깎이 인생. 대학 입시에서 재수를 했고, 동아리 활동으로 군대도 늦었다. 금융위기로 공중파 시험이 아예 없었던 2009년을 지나, 입사도 서른의 나이로 ‘간신히’ 했다. 처음부터 늦었다. 어차피 늦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조급해하지 않고 내 속도로, 조금 느리게 가더라도 자세히 보면서 가자는 생각. 늘 그랬다. 남들과의 속도 경쟁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할 수도 없었다. 출발선이 달랐으니까. 하지만 행복에 대해서는 달랐다. 누구보다 행복해지고 싶었다.


육아휴직도 행복하려고 한 선택이다. 선배들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빈자리에 대해 양해를 구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많은 분의 격려와 지지가 있었다. 감사하고 또 죄송했다. 그러던 중 한 선배가 말했다.

“한별 씨는 승진 욕심은 없나 봐?”

충격이었다. 육아휴직과 승진이 관련이 있던가? 그럴 수도 있겠다. 남들이 일할 때 쉬는 거니까. 정확히 말하면 육아를 하는 거지만 회사 차원에서는 쉬는 것으로 볼 수 있으니, 승진이 조금 늦어질 수도 있겠구나.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빠른 승진보다 중요한 게 있으니까. 오히려 더 확실히 다짐하게 됐다. 꼭 육아휴직을 해야겠다. 만약 가족과의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으로 승진이 늦어진다면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던 대로, 천천히. 내 속도에 맞춰서, 내 호흡에 맞춰서. 직장을 위해 가족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다 위에서 만나더라.”

또 다른 선배는 승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속도는 조금 달라도 어차피 다 만난다는 얘기다. 하지만 가족은 회사와 달라서 노력한 만큼 돌아온다고, 어쩌면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안이 됐다. 나 역시 가족과 함께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혼자 먼저 가서 가족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조금 느리더라도 오손도손 얘기 나누면서 ‘같이’ 가고 싶었다.




조금 느리더라도 오손도손 얘기 나누면서 ‘같이’ 가고 싶었다.


과연 성공이 뭘까? 돈, 지위, 명성 등 다양한 단어들이 떠오른다. 성공을 정의하는 단어도, 기준도 너무 많다. 하지만 정답은 없다. 성공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에게 성공은 행복이다. 그것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 내가 육아휴직을 선택한 이유다. 육아휴직을 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은 더 명확해졌다. 어차피 남들과 다른 속도로 살아왔고, 남들과 다른 시간을 살아간다. 내가 만든 나만의 기준에서 본다면, 나는 성공적인 삶을 위해 꽤 잘 가고 있다. 먼 훗날 지금의 나를 돌아보며 그때의 난 분명 ‘잘한 선택’이라고 나를 칭찬할 것이다.



덧붙이는 이야기)

육아휴직 중에 난 승진을 했다.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위에서 결국 다 만난다. 

자신만의 확실한 성공 기준만 있으면 된다.


난 누구보다 행복해지고 싶었다.



먼 훗날 지금의 나를 돌아보며
그때의 난
분명 ‘잘한 선택’이라고
나를 칭찬할 것이다.



<라테파파> KBS 김한별 아나운서의 육아대디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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