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i 기획자의 두 번째 이야기
정부의 가이드로 시작된 전면 재택은 처음에는 기한이 정해져 있었으나, 기한 이후 출근을 며칠하고 나면 또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전면재택이 선언되고, 확진자 수가 감소하여 출근을 시작하면 확진자가 급격하게 늘면서 또다시 전면재택이 선언되기 일쑤였다.
그 와중 긴급(?)하게 백신이 개발되어, 백신 접종 후에는 괜찮을 거라고 출근이 다시 시작되기도 했지만, 사람에 따라 덜 아프기도 하고, 많이 아프기도 하는 차이가 있을 뿐, 백신이 코로나 감염을 백 프로 막아주지는 못하는 느낌이었다.
길어지는 재택 속에서 처음 느낀 느낌은 이게 정말 현실인가? 싶은 생각이었다. 라스트 오브 어스 같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그린 게임의 한가운데 내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주변에서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며 생존자 키트와 배낭을 구매하는 사람도 있었고, 개인용 도끼와 삽을 구매한 사람도 있어 웃어넘기던 기억이 난다.
그래 정말 게임처럼 사람들이 좀비처럼 될 수도 있으니까, 나도 구매할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내 토끼 같은 고양이들을 두고 어디 갈 수도 없고, 어차피 난 집에서 대응해야 한다(?)라는 생각에 생수와 라면, 햇반, 부탄가스를 좀 넉넉하게 사두고, 장기 보관해서 먹을 수 있는 스팸이나 참치 등도 구매를 해서 혹시 몰라(?) 모든 게 끊기면(?) 최소 1-2주는 살아남을 수 있는 채비를 해놓으려고 했었다.
그리고 혹시나 밖에 나가면 꼭 마스크를 하고, 집에 들어오면 손소독제로 꼼꼼하게 손을 닦으려고 했다. 감기 기운이 있으면 마스크를 집에서도 꼭 쓰고, 우리 고양이들은 백신을 맞을 수도 없고, 아프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사람들과의 만남도 가능한(?) 추후로 미루거나, 꼭 필요한 경우에만 조심해서 만났던 것 같다.
그리고 출근하던 때와 달리 슬랙이 울리면 가능한 빠르게 대응하려고 했는데, 왠지 집에서 딴짓을 하는 것처럼 비칠까 봐 더더욱 유의했던 것 같다. 나중에는 '휴식 중' 표기 기능이 생겨서 안심(?)하고 쉴 수 있었지만, 근무한 만큼 급여를 받아가는 구조에서 어뷰징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다들 노력하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1-2년의 시행착오를 거쳐 3년 차에 이르면서는 다들 나름의 룰을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가능한 업무 시간 내에만 일하려고 하는 분위기가 확산되었고, 초과 근무는 가능한 지양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던 것 같다.
나도 처음에는 정신없이 일을 처리하고, 밤늦게까지 일하기 일쑤였지만, 가능한 밥때에는 밥 먹고, 초과 근무를 해야 하는 경우, 급한 일이 아니면, 가능한 다음날 하거나, 저녁 먹고 산책도 하고 좀 쉬다가, 꼭 필요한 범위 내에서만 빠르게 처리를 하고자 했던 것 같다.
한 번은 동료의 집에 정수기 아줌마가 오시고 나서, 그분이 확진이 되시고, 혹시 몰라 동료가 출근한 날 만났던 사람들도 자가 격리에 들어가고, 다들 두근두근 하며 추이를 지켜보던 기억도 난다. 우리 집도 정수기 아주머니가 오시는 날이 미뤄지고, 원래 오시기로 한 날에서 몇 달 뒤에 아주머니가 오셨던 기억도 난다. 혹시 나도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소한 소문도 빠르게 퍼져 나갔고, 다들 조심하고 유의하는 분위기였다.
23년도가 되면서 전 국민의 90퍼센트 이상이 백신을 맞고, 감염자도 점점 줄어들면서, 주 1회는 팀별로 자율로 출근하는 정책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감기 기운이 있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미리 팀 방에 공유하여 온라인 출근으로 대체하기도 했지만, 다들 가능한 출근하는 분위기였고, 오랜만에 하는 출근은 어색함을 불러오기도 했던 것 같다. 동료가 옆에 있는데도 슬랙으로 이야기하거나 온라인으로 회의를 하기도 하고, 출근의 시행착오를 다들 겪어 나갔다.
23년도 말 즈음에는 대부분의 회사는 출근하는 분위기가 되었고, 우리 회사는 인원수가 너무 늘어서 주 1회 고정 출근 후, 점진적 전면 출근으로 정책의 방향이 잡혔다.
재택을 너무 사랑했던 나는 출근하는 날이 있다는 게, 그 날짜가 늘어난다는 게, 언젠가는 매일(?) 회사를 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재택 제도가 남아 있을 때, 이 즐거움을 좀 더 만끽하고, 고양이들과도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