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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르 Oct 23. 2023

시민파워를 높이는 스마트시티

스마트시티 기술의 가치확장

인터넷을 포함한 모든 스마트시티 기술은 치명적 약점에 노출되어 있다. 1982년 인터넷표준 프로토콜이 개발되고 1995년에 상업용 시장에 들어왔을 때, 사람들은 그 혁신성과 가능성에 환호했다. 전자메일, 메신저, 화상통화를 통해 멀리 떨어진 사람과 연결을 강화하고, 포럼, 블로그, 소셜네트워크, 온라인쇼핑 사이트 등으로 사회경제적인 가치를 확대할 수 있으며, 여론수렴, 사이버 선거 캠페인, 온라인 투표, 전자의회, 전자공청회 같은 전자민주주의를 구현함으로써 시민파워(Civil Power)를 신장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흥분하였다. 

의회, 정부, 법원, 언론과 함께 제5부의 권력으로 불리는 시민파워는 산업혁명을 통해 비약적으로 발전한 자본주의와 함께 꾸준히 성장해왔다. 시민파워는 여러 의미를 내포한다. 통치측면에서 의사결정에 개입하는 시민권한을 의미하며, 도시지능과 집단지식을 만드는 시민력이나, 효율적인 행정의 자원분배에 참여와 개입(engagement)을 뜻한다. 그동안 시민파워는 시간적, 공간적 비효율성으로 인해 다른 권력과 달리 대의적으로 행사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의 등장은 이러한 대의제를 벗어나 시민들이 통치행위에 자율적이고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인터넷이 민주주의 확대에 크게 기여하리라는 낙관론과 전혀 상반된 결과를 가져왔다. 인터넷 공간은 익명성과 낮은 책임감으로 인해 포풀리즘과 흥미 위주의 정보공유 장소로 변질되었다. 왜곡과 선동, 가짜뉴스가 범람하며, 현실 민주주의 한계를 사이버 세계에서 그대로 재현되면서 더욱 양극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시민은 올바른 정보를 확보할 수 없으며, IP 조작을 통한 부정선거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불안 요인으로 등장하였다.


스마트시티의 발전은 인간의 편의성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요소 기술들을 결합하여 도시 미래를 예측하고 예측된 미래에 상응하는 통치규범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캠프가 불법으로 수집한 5천만 명의 개인 심리정보를 활용한 사례는, 스마트시티 기술이 기존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인터넷은 시민을 우민화하는 새로운 통제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지금까지 스마트시티는 급격한 도시화에 따른 희소한 도시 자원을 최적으로 관리한다는 (허상적) 프로파간다를 내세우며 스마트시티의 가치를 기술의 효율성에 집중하여 왔다. 즉, 스마트시티를 주도하는 정부나 거대 자본과 기술을 집약한 기업은 스마트시티 기술을 사용하여 ‘권력이동(Power Shift)’같은 새로운 가치로 확장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거부한다.


하지만 스마트시티가 새로운 가치로 확장되지 못한 채 기술 중심 가치에 매몰될 경우 두 가지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첫째는 기술 환원주의의 함정이다. 기술이 당면하는 문제를 다시 기술로 해결한다는 기술환원론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기술은 속성상 계속 진화하기 때문에 현재 상태에서 최상의 기술(state of art)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낡아지고, 스마트시티는 늘 새로운 기술로 업데이트해야 하는 함정에 빠진다. 새로운 기술을 새로운 욕망으로 연결함으로써 기술로 문제를 일으키고 다시 그 기술로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환원 전략은 기술 낙관론자(기득권)가 사용하는 익숙한 수법이다.

둘째는 스마트시티가 불평등한 통치위계를 강화하는  수단이 된다는 점이다. 스마트시티의 핵심기술인 빅데이터, 도처에 있는 센서와 사물인터넷망, 생체인식기술 등을 결합하면 스마트시티는 도시관리를 넘어 시민을 효율적으로 통제하는 수단이 된다. 효율성과 편의성을 담보로 시민들은 자신에 관한 통제권한을 기존 통치체계에 넘겨준다. 시민 개인은 거대 권력과 암묵적 폭력이 가능한 기술 환경 앞에 나약하고 무기력하다. 광운대 도승연교수는 스마트시티의 이러한 통치수단화에 대하여 푸코가 그의 저서 <감시와 처벌>에서 지적한 대로 ‘스마트시티로 구현된 현대 도시는 새로운 형태의 거대한 판옵티콘(원형 감옥)’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제레미 밴덤과 그가 설계한 판옵티콘
판옵티콘 건축양식의 최초 설계자는 공리주의자로 알려진 제레미 벤덤( Jeremy Bentham)이다. 판옵티콘은 ‘소수의 관찰자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모든 피관찰자를 감시할 수 있는 기능의 건축’으로, 감시자가 있는 곳의 중앙부 원형공간이나 원형탑을 중심으로 감옥의 모든 방을 원형경계로 배치한다. 감시자의 위치에서는 모든 방의 모든 수감자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지만 수감자는 감시자가 자기를 보는지 안 보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감시자가 없어도 수감자는 감시를 받는 것으로 짐작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중세까지 전통적 처벌 방식이 신체형이었다면 근대에 와서는 형벌 자체가 완화되어 구금형으로 변화되었고 감옥은 사회개혁의 최전선이었다. 구금형을 채택한 것은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형벌의 목표를 범죄자의 ‘신체’에서 ‘정신’으로 전이하자는 일련의 요구때문이다. 판옵티콘은 비용 절감과 자기검열을 통해 관리를 강화할 수 있는 효율적인 감옥 구조였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스마트시티는 도시문제에 관한 기술적 효용가치를 넘어서 ‘문제화(thinking problematically)’를 통해 ‘이상적인 도시’를 만드는 수단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가치를 확장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즉, 스마트시티가 ‘텅 빈 목적지’를 향해 갈 것이 아니라, 시민권력을 확장하고 인간과 기술의 공존성에 입각한 솔루션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을 주문해야 한다. 이에 따라 스마트시티는 도시의 다양한 사회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거너넌스 체계(행정)를 만들고, 도시 구성원의 권리확보와 참여활동(권력)을 지원하는 스마트시티의 기술적 역할이 강조된다.


사실, 이러한 가치확장을 허용하는 것이 근현대 도시와 국가가 지향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경제적 효과를 가져 온다.  


근대 도시는 시민들을 평균(mean)값을 중심으로 도시 관리를 최적화하는데 집중했다. 산업혁명이 시작될 때 사람들의 생산성 편차가 심했다. 이러한 편차를 줄이기 위해 평균적 노동인력을 양성하는데 투자가 필요했다. 국가의 사회적 투자는 이러한 평균인력 양성에 지출되었다.  공립학교는 균질한 제품 생산성을 유지하는 평균 노동력을 위해 필요한 과목을 가르쳤다. 이러한 전통은 여전히 건재하며 현재 미국 공교육의 목적 역시 평균적인 인재양성이다. 이는 산업역군으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었다. 스마트시티는 시민 개별자를 지우고, 이러한 통계적 평균값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을 돕는다. 

2018년.  "국평오", 평균에 수렴하는 우매한 대중이란 의미의 밈(meme)이 유행하였다.
국평오는 "국민 평균은 수능 5등급"의 줄임말로, 곧 "대한민국 국민의 평균 지능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중앙값인 5등급을 받는 수준이며, 수능에서 5등급을 받을 정도면 매우 지능이 낮은 것이므로, 각종 사회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 역시 대중이 전반적으로 우매하기 때문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산업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으며 디지털 전환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산업만으로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에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오늘날 모든 도시는 급격한 도시화에 따른 환경의 복잡성으로 등장한 다양한 도시문제를 해결하는데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는 도시는 쇠퇴의 길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생산성 증대와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시민권력을 높여 시민과 도시를 공동 관리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편익을 높일 수 있는 길이다. 행동경제학적으로 넛징을 통해 사회적 참여와 시민력, 도시지능이 높아지면 사회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물론 극단적인 무임승차자도 있지만, 훈련받고 성숙한 시민력과 사회문화의 성숙도가 높아지면 무임승차자도 관용할 수 있는 범위안으로, 즉 통치되는 영역으로 수렴된다. 


최근 스마트시티가 통치성 위협과 기술 낙관론 너머로 스마트시티의 가치가 점점 확장되는 현상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즉 스마트시티는 이상적인 도시를 실현하는 도구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효율적인 도시 행정, 균형 잡힌 권력배분, 지속가능한 공간, 창발적인 혁신환경 등이 구현된 도시’를 위한 스마트시티의 쓰임새가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도시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도시문제를 구성원 스스로 해결하도록 돕는 것도 스마트시티의 역할로 인식된다.


스마트시티는 본원적으로 도시의 목적에 봉사하여야 한다. 도시의 목적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이에 관해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KAIA) 조대연 박사는 “인간(시민)이 선택할 자유가 점점 더 많아지는 공간과 통치, 소수가 아닌 공동체의 상호성숙을 촉진하는 공간, 아이와 노인이 만날 수 있는 공간, 약자를 위한 인내와 포용이 있는 공간”을 이야기 한다. 이는 호모사피엔스가 다른 종을 물리치고 지구사회를 지배하는 종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스마트시티는 이러한 통치체계의 변화와 공공선을 위한 이로운 경제모델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베를린시의 스마트시티 추진사례는 시사점이 크다.2015년 스마트시티 전략(Smart City Strategie Berlin)을 공포할 때만 하여도, 베를린은 다른 많은 도시들처럼 기술을 중심으로 도시가 직면하고 있는 생태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베를린은 이내 기술을 가진 기업과 개발 자금을 다루는 정부 사이에서 시민은 주도권을 전혀 확보하지 못하고, 시민의 행복을 위한 도시 구상에서 정작 의사결정 구조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2020년 베를린의 ‘다시 시작하는 스마트시티’ 포스터

이러한 바탕 위에서,  2020년 ‘다시 시작하는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기술’이 아닌 ‘사람’에 중점을 두었다. 새롭게 시작한 스마트시티 구상은 도시 공간 조성의 개념설정, 실험, 적용 등 모든 단계에서 시민의 참여가 핵심이다. 베를린시는 시민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다양한 인종과 연령, 서로 다른 교육 수준, 이주 경험의 유무 등다양한 배경을 가진 시민들을 무작위로 뽑아서 디지털 베를린 시의회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직접 각각의 프로젝트에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도록 온라인플랫폼 “mein.berlin”을 구축하고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구성하였다. 

가로수에 시민이 직접 물관리하는 “기스 덴 키쯔 Gieß den Kiez” 플랫폼

베를린시는 시민개입과 시민주도형 스마트시티를 구축하기 위해 <시티랩 베를린>이라는 운영기관을 설립하였다. 시티랩 베를린은  오픈 소스 데이터를 활용해 베를린 거리의 가로수에 시민들이 직접 효율적으로 물을 주는 플랫폼인 “기스 덴 키쯔 Gieß den Kiez”를 개발하고, 베를린시정부와 시민이 대화와 소통을 통해서 데이터를 수집하여 자전거관련 인프라를 건설하는 “픽스마이베를린 FixMyBerlin” 사업을 추진하는 등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권력을 행사는 다양한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실시하였다.   

베를린시정부와 시민이 소통하며 데이터수집과 자전거인프라를 구축하는 “픽스마이베를린 FixMyBerlin”프로젝트

스마트시티가 가야할 길은 명확하다. 스마트시티를 구현함에 있어 시민이 참여와 개입을 주도하는 권력을 이양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시민훈련에 투자해야 한다. 인간과 기술의 공존하는 도시 환경 구현을 위해 시민에 대한 투자 방향이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디지털 전환과 지식 접근성이 용이한 도시환경에서 똑똑해진 시민들 스스로 기술을 활용하여 도시가치를 확장하는 것을 도울 수 있어야 한다.


기술은 원점회귀가 불가능하다. 기술가치에 매몰되는 순간 스마트시티는 ‘텅 빈 목적지’를 향해 갈 공산이 크다. 가속도과 붙은 기술이 압도당하지 않으려면 시민들을 훈련하여 디지털 마인드를 높이고, 인간과 기술의 공존하는 ‘인간을 닮은 기술’개발에 집중해야 한다. 시민을 훈련하고 도시의 통치에 참여와 개입하게 하며, 권한을 이양하는 것은 가장 투자회수율이 높은 선택이다. 행정 권력이 모든 것일 책임진다면 우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사회적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Faust und Mephisto im Kerker:감옥에서 파우스트와 메피스토(Joseph Fay, 1825-1875)

스마트시티 기술을 이용해 완전하고 대등한 시민권력을 확보하거나 이상적인 도시 공동체 구현은 끝끝내 도달할 수 없는 미완의 섬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기술의 민주적 쓰임새와 인간과 기술이 공진화하며 도시문제를 해결하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치 않으면 스마트시티가 ‘텅 빈 목적지’를 향해 갈 공산이 크다. 파우스트의 말처럼, 인간인 이상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다. <完>  


■ 참고자료 

▸오민정, 심포이에시스적 스마트시티 창조를 위한 도시디자인,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2023

▸도승연, 푸코(Foucault)의 문제화방식으로 스마트시티를 사유하기, 공간과사회 2017년 제27권 1호

트럼프, 페북 사용자 5천만명 ‘심리정보’ 불법이용 의혹 (2018.3, 한겨레)

예술하는 인간·순환하는 기술, 〈순환성circularity〉 (서울대학교 문화예술원 심포지움, 2023.3)

"우리는 감시당하고 있다"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2020.2, 에듀진 인터넷 교육신문)

인터넷 민주주의-신화와 현실 (2009년 2월, 장호종, 마르크스 21)  

▸베를린 스마트시티 : https://smart-city-berlin.de/

▸시티랩 베를린 프로젝트 :  https://citylab-berlin.org/en/st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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