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생명체가 없는 무생물이라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수명이 있다. 중국 속담에, ‘비단은 500년의 생명력이 있고, 종이는 1000년을 견딜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하물며 사람이 살아가며 번성할 수 있는 ‘공간’의 수명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이성계가 조선 건국을 위해 한양을 결정하기 전인 1394년 무학대사를 만나 ‘십 리를 더 가라’는 말을 들었으니, 아마도 왕십리의 역사는 적어도 620년은 넘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왕십리에서 태어나고 성장할 때까지 살았었다. 집 앞 재래시장에서는 매일 상인들과 손님들의 흥정 소리, 생선과 야채 냄새들, 복잡하고 좁은 골목길의 느낌으로 가득했던 동네도, 세월이 지나면서 쉽게 허물어지고 빠르게 세워지는, 매일 멋들어지게 개발되는 모습, 또는 낡고 폐허가 된 채 세월을 머금고 있는 모습들을 보고 자랐다. 이러한 두 가지 대립한 상황, 즉 ‘old vs. new’는 나의 ‘관찰’과 ‘생각’을 비우기와 채우기, 허물기와 덧붙이기의 경계 안에서 천칭의 추처럼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였다.
충주 관아골로 들어섰을 때(공간 디자이너는 두리번거리는 직업병이 있다) 두리번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바다와 산이 있는 자연의 배경도, 물적 자원을 특별히 가지고 있지 않은 충주에서 ‘로컬’이라는 단어는 머릿속에 정확히 예상되기는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환경적 약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 또는 네트워크가 만들어내는 이슈가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장점, 그리고 도시에 비해 경쟁력 있는 부동산 가격도 다양한 청년들이 모여서 시작하기에는 충분한 장점이 있었으며, 그것을 알고 있는 스마트한 그들이었다. 숙박, 교육, 여행, 문화예술, 디자인, 외식, 제조 및 유통 등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과 전문분야들이 모여 협동조합을 시작으로 오랜 시간 단단한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열린 공간과 열린 마음으로 비워지고 있는 동네를 채움으로 가득하게 만들어 내었다. 관아골 사람들의 로컬 개념은 그냥 그 동네에서 낳고 자랐다는 의미의 로컬이 아닌, 역사성, 지역성, 이야기가 있었다.
충주 관아골
충주 관아골뉴욕에 있던 어느 날, 브루클린 로컬 시장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광장에 설치된 플리마켓으로 향했다. 광장에 도착도 하기 전 나는 이미 로컬 시장의 진짜를 접하기 시작했다. 브루클린 브라운스톤 건물 골목골목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각자 자신의 가정에 특화된 상품, 서비스, 또는 음식들 예를 들면, 모아 놓았던 레코드판, 사과 파이, 앞마당에서 키운 바질 등을 가지고 나와서 온 골목은 순식간에 시장이 되어 버렸다. 어느 한 가정집 앞, 5살과 6살의 자매가 가지고 나온 1달러짜리 얼음 넣은 레모네이드를 사 먹는 순간, 브루클린 동네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가 바로 로컬 네트워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Brooklyn Flea Market
브루클린 플리마켓에서 레모네이드 팔고 있는 꼬마 자매들
공간 디자이너로 작업하고 있는 나는, 공간의 ‘보존’과 ‘재사용’의 가치, 범위, 방향성에 대해 관찰하는 것, 그리고 ‘RE’라는 콘셉트를 발전시키고 이해하는데 강한 의지력을 가지고 있다. (‘RE’ : renewal, revival, remark, reveal, restore, reform 등). 도시 재생이라는 의미는 버려진, 쇠락한, 폐허 된 동네를 재개발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그런 공간도 분명히 누군가는 삶을 영위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니 변경과 변화가 목적이 아닌, 스토리 있는 진짜 ‘리얼 Real’이 충만할 때 우린 비로소 도시재생이라는 단어를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충주 관아골 로컬 크리에이터가 말씀하신 ‘시작은 생존이었으나, 지금은 재미와 삶이다.’라는 말이 귓가에 맴돈다. 몸은 작은 동네에 머무르고 있지만, 생각은 그 누구보다도 뚜렷한 신념, 가치관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야만 로컬의 진정성으로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재생과 젠트리피케이션은 동전의 앞 뒷면과 같을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 없듯이, 발전과 변화의 뒷면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려움도 발생할 수 있다. 많은 깨우침과 배움을 준 충주 관아골의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지속적인 선한 영향력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