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못한 날씨 또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후쿠오카 여행 그 둘째 날이 밝았다. 언제나 여행 이튿날은 내 집 앞마당 같이 마음이 편하다. 처음에 그 낯설게만 느껴지던 도시의 풍경도 언제 그랬냐는 듯 익숙하게 다가왔다. 일본이라서 유독 그런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9시 30분에 기상해서 부랴부랴 씻고 오늘의 일정을 소화하려고 했는데, 문득 어제 갔던 온천이라고 소개했던 그 목욕탕에서 깨끗하게 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치 여기가 한국인 것 마냥 잠옷 차림(뉴발란스 나시티와 반바지) 그대로 다시금 배낭을 메고서 유노하나 온천으로 걸었다.
온천은 어제와 다를 게 없었다. 다만 어제는 남자들은 2층을 이용하라고 했는데 오늘은 1층을 이용하라고 했다. 구조상의 약간의 변화만 있을 뿐 1층과 2층은 별다른 차이는 없었다.(1층이 조금 더 넓은 것 같다) 한 한 시간가량 온천욕을 가장한 목욕을 하면서 오늘 소화해야 될 일정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 어제는 너무 많이 걸었던 것 같으니 오늘은 대중교통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자!'라고 다짐했다.
옷을 갈아입고 배낭을 정리했다. 후쿠오카 투어리스트 교통패스도 10/8일 날짜 스크래치를 긁고 지갑도 한번 점검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현금이 별로 없는 게 아닌가. 내가 어제 그렇게 돈을 많이 썼던가? 아무래도 쓸데없는데 돈을 좀 쓴 것 같긴 한데.. 그래서 오늘 일정은 현금은 최대한 적게 사용하고 카드를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일본은 카드 사용이 잘 안된다고 해서 일부러 아멕스, 비자, 중국 유니온 카드 모두 다 챙겨갔기 때문에 마음이 든든했고 또 캐널시티에 환전 ATM기가 있다는 소식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큰 걱정이 없었다. 지갑에 한화 45,000원 밖에 없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리고 날씨는 참으로 습했다. 많이 걸으면 땀냄새가 심하게 날 것 같은 날씨. 비가 한바탕 내릴 것 같은 날씨였다.
이튿날의 첫 번째 목적지는 전날 너무 늦게 도착한 후쿠오카 성터였다. 유노하나 온천에서 조금만 걸어 내려가면 되었기에 걸어갔다. (불과 몇 분 전까지 대중교통 이용하자고 생각했었는데) 도로 곳곳에는 한글 표지판이 눈에 많이 보였다. 우리나라도 지하철 탈 때 보면 일본어로 방송도 나오곤 하는데 일본어로 된 표지판은 잘 못 본 것 같은데 이곳 후쿠오카에서 한글 표지판은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스타벅스나 맥도널드 같은 글로벌 브랜드가 보이면 한국 브랜드도 아닌데 왜 그렇게 반갑게 느껴지는 것인지. 친밀감마저 들었다. 사실 이번 여행의 모토 같은 건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걸어 다니면서 이번 여행의 모토도 생각해 보았다. 바로 "Walk and See". 걷고 보고, 걷고 보고이다. 실제로 난 걷고 보고 걷고 보고만 계속했으니 내가 생각했지만 참으로 잘 지었다라고 내심 흐뭇했다.
걷다 보니 책에서 보는 오호리 공원이 나왔다. 그런데 앗 비가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편의점에서 산 647엔 우산이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빗방울이 굵어졌다. 이날 구마모토현 동부의 아소산이 분화했다고 하는데 그런 영향 때문인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지만 비가 굉장히 많이 내려, 오호리 공원 바로 옆에 여행책에서 보았던 그 스타벅스에 들어가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12시 정도 되는 시간이었는데도 사람이 많았다. 중간중간 테이블에서는 한국사람들끼리 대화하는 소리도 들리고, 영어도 들리고 사람들이 많은 그런 만원 스타벅스였다. 우리나라처럼 테이블마다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여기에 그런 건 없어서 다소 아쉬움이 들었다. 있었다면 해외 전기 스틸러 역할을 충실히 했을 텐데 말이다.
스타벅스를 나와 이 비를 뚫고 오히리코헨 지하철로 발걸음을 옮겼다. 옮긴 내 발걸음은 정말 불쾌한 느낌 한가득이었다. 신발을 벗는 순간 악취가 가득할 것 같아 차마 벗지 못했다. 신발이 비를 너무 많이 맞았다. 오호리 코헨에서 두정거장 더 지하철을 타서 니시진역에 내렸다. 내가 그래도 전공이 역산데 이 지역의 박물관은 한번 봐야 되지 않겠어? 하는 생각으로 후쿠오카 박물관을 방문할 목적이었다. 니시진역에서 박물관까지 가는 것이 문제였는데 아직도 그치지 않고 더 심하게 내리는 비 때문에 선뜻 이동하기가 겁이 났다. 이와 중에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는데 하나같이 우비 같은걸 뒤집어쓰고 자전거를 타는 것이 아닌가. 정작 신발이랑 양말은 다 젖을 텐데 왜 그렇게까지 해서 자전거를 타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한두 사람이 아니라 머리와 몸은 보호하고 발은 내버려 두는 그런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꽤 많았다. 그래도 이동하면서 한 가지 유익하게 다가왔던 점은 비까지 오고, 구글 지도도 봐야 하고 하는 정신없는 상황에 횡당보도를 마주하게 되면 언제 파란불이 바뀔지 몰라 놓칠 수도 있는데 일본에서는 "씨잉 씨잉~ 쓰잉쓰잉" 이런 이상 소리가 나오기 때문에 신호 바뀐 것을 대번에 알아볼 수 있어서 좋았다.
후쿠오카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그 웅장한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만약 내가 맑고 화창한 날 이 곳에 왔다면 더 좋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일본의 3대 박물관이라고 하면 도쿄, 교토, 나라 박물관이라고 하는데 교토 국립박물관의 경우는 작년 오사카 여행에서 오사카 박물관과 함께 다녀왔는데, 솔직히 큰 감흥은 없었다. 건물에서 느껴지는 신선함도 별로 없었는데 이곳 후쿠오카 박물관은 시립박물관인데도 그 웅장함에 한번 놀라고 상대적으로 우리 부산 시립박물관이 조금 초라해 보이는 건 아닌가 하는 상대적인 비교도 하였다. 좌우지간 외형적으로는 웅장했고 한번 들어가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게끔 만드는 그런 건물이었다.
박물관 건물은 웅장하였으나 실제 내부는 사실 글세요..라는 말이 나오게 한다. 아니 막상 볼 게 없다고 하는 게 맞겠다. 건물이 1층과 2층으로만 이루어져 있고 상설전시구간도 너무 작았다. 교토 국립박물관과 마찬가지로 이곳 후쿠오카 시립박물관도 어떤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무언가가 없었다. 아니면 내가 이런류의 유물들을 너무 많은 것을 봐서 그런 걸까? 하지만 백제의 화려함도, 조선의 소박함도 찾을 수 없는 그런 공간이었다. 하물며 부산 시립박물관만 해도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부산의 역사를 모두 열거하고 있는데 반해 여기는 그런 것도 없다. 다만 좋았던 점은 오사카 박물관에서도 있었는데 이곳 후쿠오카 박물관에서도 발견한 것! 바로 아이들을 위해 재미있게 구성된 박물관 교육 공간이었다. 직접 돌도끼 이런 것도 만져볼 수 있게 하고,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로 재미있게 설명해 놓고 있는 것이 일본어를 못하는 내가 봐도 그렇게 보였다. 그렇다 정작 유물은 별 볼 일 없었지만 박물관이 지겨운 공간이 아니라는 소프트웨어는 잘 갖추어져진듯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건물밖에 바로 흡연구역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는 게 제일 마음에 들었달까..
후쿠오카 시립박물관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후쿠오카 타워가 있었기 때문에 내친김에 기왕 다 젖은 신발 더 젖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뻔할 것이다. 부산 용두산타워에서 느꼈던 '아 높네, 아 다 보이네'와 같은 혹은 서울 남산타워에서 느꼈던 '아 케이블카 XX 안 오네' 라던가.
사실 부산의 용두산 타워와 비교하는 좀 그렇고.. 용두산 타워가 너무 관광적으로 잘 갖추지 못했단 의미다. 서울의 남산타워랑 비교하자면 굳이 다른 건 없는 것 같다. 여기도 이쁜 아가씨가 엘리베이터를 잡아주고 안내해준다. 다만 이곳은 방문객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진을 DSLR로 찍어주더라. (그 사진이 어디에 게재되는진 모르겠지만) 그리고 일종의 작은 변화들을 주는 듯했다. 얼마 앞으로 다가온 할로윈 테마에 맞게 타워 꼭대기에는 조금이나마 할로윈 분위기를 연출해 놓고 있었다. 망원경에는 니콘 마크가 있었는데 우리고 망원경 그냥 갖다 놓지 말고 우리 기업, 우리 브랜드들도 홍보 좀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그러기에는 세계적인 광학 기업이 없긴 하지만..) 후쿠오카 타워에서 바라보는 모모치 해변, 그리고 힐튼호텔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후쿠오카 야후 돔. 내 다음 목적지가 바로 저곳이다 야후 돔! 바로 일본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홈구장이다.
사실 야후 돔에서의 일정은 내부는 어떻게 되어있고, 거기 안에 야구박물관이 있다고 해서 그곳도 한번 보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가는 그 시간 그 타이밍에 소프트뱅크 경기가 막 끝났을 때였나 보다. 구장에서 사람들이 인해전술로 밀고 나왔다. 여기서 부터는 좌측통행이고 우측통행이고 뭐고 없었다. 확실히 사람들이 많으니까 무단횡단하는 사람도 많았다. 흡사 우리도 롯데 야구경기 끝나고 사직구장 근처 버스, 지하철 할 거 없이 사람들 가득한 분위기가 같았다. 그래도 이와중에 빵빵거리는 차는 없었다. 진짜로.
이 인해전술을 보고서 어떻게 구장에 들어가겠는가 나는 멀리서 야후 돔 사진만 찍고 지하철 역으로 향해야만 했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그 순간도 결코 쉽지 않았는데 다행히 살아남았다. 오늘은 대중교통 열심히 이용하자고 해놓고서는 또 걷고 있는 상황이다. 갑자기 배가 너무 고팠다. 숙소 근처 지하철에 내려 어제 들렸던 시장에서 뭐라도 먹어야겠다 싶어 다시 방문했다. 어떤 친절한 남성이 호객행위를 하는 우동집으로 들어갔는데 정말 살아생전에 이렇게 강렬한 마늘맛은 처음이었다. 다 먹지 못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씨.. 일본어 좀 공부할걸' 여행이 끝나가는 이 순간에 드는 또 똑같은 독백 '아! 일본어 공부할걸'이었다.
이날의 우동을 끝으로 나는 더 일본음식을 손에 대지 않았다. 먹지 않는다는 것은 더 즐기지 않는 말과도 같다. 이틀 동안의 여행으로 참으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했다. 이제 그 생각이 어떤 식으로 내 몸속에서 세포작용을 해서 앞으로 내 인생에 어떤 도전적인 에너지를 생성해 줄지는 모를 일이다. 분명한 것은 이번 여행으로 자꾸 몸을 어디론가 움직여라라고 누군가가 외치는 것 같다. '너는 가만히 있지 말고 움직여야 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정말 매력적인 나라 일본. 내년에는 정말 일본어를 공부해서 도쿄를 여행하고 말테다. 기초 일본어 책까지 샀다! 기다려라 2017년 도쿄! 2박 3일간의 후쿠오카 여행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