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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노명 Dec 31. 2023

       낯설이

                       어른들이 낯설이를 하면  

   한 집에 사는 가족들이 아니면 두려워하고 접촉을 거부하는 어린 아가들이 있다. 그 아가들의 몸짓을 ‘낯설이’ 또는 낯가림이라고 한다. 미국에는 어린애가 아니면서도 낯가림을 하고 피부가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종차별이라고 하는 성인들의 낯가림이다. 그 낯가림이 과도하게 표출되어 범죄행위로 이어진 사건들도 자주 뉴스에 오르내린다.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형성된 미국은 문화와 풍습도 다양하고 다채롭다. 영어가 공용어로 사용되지만 스페인어 사용자들도 20%에 달하고 그 외의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들의 대부분은 영어가 서툰 이민자들이다.

   최초의 아메리칸 American은 종교와 정치적 이념때문에 모국을 버리고 이주해 온 영국인들과 서부에 매장된 황금을 찾아 몰려든 유럽 각국의 개척자들로 알려져 있다. 동부에 발을 디딘 백인들은 원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생존법을 터득했고, 서부에 몰려든 개척자들은 신무기와 문명을 이용한 무력으로 생존 투쟁을 벌였다. 애당초 원주민들과 백인 이주자들은 적이 아닌 동지였지만, 문명과 과학과 야욕에 앞섰던 백인들은 원주민들의 영토와 삶을 탈취했다.

   농토를 개발하고 농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들여온 인력이 아프리카 원주민들이다. 그들은 인간이 아닌 개인 소유의 자산이나 가축으로 취급되어 가혹한 학대와 착취를 당했다. 금광채굴과 철도건설, 그리고 사탕수수 재배를 위한 노동력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서 공급되어 왔는데, 그네들에 대한 처우 역시 부당하고 가혹한 것이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그러한 역사에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기보다는 그러한 역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미국인들이 놀라울 정도로 많다는 게 미국의 현실이다. 미국 성인들의 21%가 문맹이며, 글을 아는 성인들도 50% 이상이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의 문해력이라는 통계이고 보면, 역사에 어둡고 둔감한 것은 당연한 현상일 수도 있다. 미국의 유난한 인종차별이 낮은 교육수준과 저소득에 기인한다는 얘기를 완강히 부인할 수 없는 이유다. 차별이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 세상을 모르는 어린아이의 낯가림 같은, 순진과 무지의 소치이기도 하니까.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창궐하면서 인종차별의 증세들도 두드러졌다. 그 바이러스가 중국의 어느 도시에서, 혐오식품을 섭취한 야만스러운 사람들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는 주장이 그 증세를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중국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아시안들이 바이러스 숙주로 취급당하는 어이없는 현상이 그 막강한 영향력의 정치인에 의해 생겨나기도 했다. 미국인을 처음 봤을 때, 모든 백인들은 내가 데이트를 하던 그 남자와 같이 생겼고 흑인들 개개인은 아예 구분조차 되지 않았던 것처럼 미국인들도 아시안들을 구분하지 못했다.  

   인간의 맹신과 맹종은 치명적인 병이다. 사람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행위는 팬데믹보다 더 심각한 전염병이다. 사이비 교주나 특정 정치인을 향한 추종자들의 맹신은 예방약도 없는 바이러스다. 추종자들의 눈과 귀를 마비시키는 그 바이러스는 우두머리가 아무리 사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음흉한 계책으로 세상을 어지럽혀도 거룩한 영웅행위로 여겨지게 한다. 죽은 지 수십년이 지났어도 소멸되지 않는 히틀러의 망령, 나치즘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모든 병은 허약한 자들을 먼저 희생시키듯이 사이비 교주나 사이비 영웅들에게 희생되는 것도 허약한 사람들이 먼저다. 지식과 상식이 빈곤하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일수록 쉽게 속고 깊숙하게 빠져든다. 대체로 그래 보인다는 얘기다.

   인종차별이라고 하면 백인들의 유색인들에 대한 횡포가 보편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있지만 인종과 문화가 다양한만큼 미국의 인종차별은 각양각색이다. 동양인들에 대한 흑인들의 차별도 그렇고 흑인과 라틴계에 대한 동양인들의 차별도 만만치가 않다. 그들을 노골적으로 경시하는 한국인들도 꽤 많이 보았다. 흑인들을 주 고객으로 하는 영업으로 생활을 영위하면서, 등 뒤에서는 그들을 모욕하는 동포들을 보면 참 민망하고 비열해 보인다.

   나는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가장 심하다는 남동부에 와서 정착했으며 애틀랜타 Atlanta에서 시험과 인터뷰를 치루고 미국시민권자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서북부의 깡촌에 들어와 살고 있다. 40번 째로 연방정부에 등록되었다는 늦깎이 주州 사우스 다코타 South Dakota, 면적은 남한의 다섯배나 되는데 인구는 백만명에도 미치지 못되는 헐렁한 주, 90%가 백인이고 8%가량이 다코타 원주민들인 이곳은 북부이지만 인종차별이 꽤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민들 25%가 65세 이상의 노년층으로 구성된 우리 동네는 당연히 극우들의 집합지다. 앞마당에 백인우월주의자를 상징하는 커다란 남부연합군 깃발이 펄럭이는 집도 있다. 누군가 경찰에 신고를 했다는데, 변함없이 당당하게 나부끼고 있다. 

   "저 가족들, 남부 어디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래."

   민망한 듯, 또는 변명이라도 하듯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인디언들 말고는 동네의 유일한 유색인인 내가 아무래도 걸리는 모양이었다. 

   "남부에서도 저런 깃발 펄럭이는 집 못봤어. 아마 저 사람들은 희귀종인 것 같으니까 잘 보호하자구."  

   나는 좀 과장되게 여유를 부리며 히죽거렸다. 

   그러나 남군깃발 대신 바이든을 공격하거나 트럼프를 찬양하는 현수막과 팻말들은 얼마든지 볼 수 있는 동네였다. '바이든 탄핵' '엿먹어라 바이든' '꺼져라 바이든' 등등의 글귀들이 허물어질 듯한 건물이나 음습한 길모퉁이에서 유령처럼 너풀거렸다. 극소수를 제외한 모든 주민들이 트럼프 지지자들이라서 그를 찬양하는 글귀들은 어디에나 도도하게 전시되었다. 건물벽과 거리와 차량들의 옆구리와 꽁무니에서 성조기와 함께 거들먹거리듯 너울거렸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생각없이 트럼프의 단점을 들추었다가 서늘한 냉기가 도는 분위기를 감지하고 나서는 정치에 관한 한 침묵을 고수하는게 좋겠다는 씁쓸한 교훈을 얻기도 했다.

   이러한 지역이다 보니 내가 심한 인종차별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지인들이 많다. 그러면 나는 내가 차별에 익숙한 사람이라서 괜찮다고 대답한다. 사실이다. 딸 부잣집의 늦둥이로 점지 된 덕분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푸대접을 받았다. 좋은 것은 뭐든지 외아들인 오빠의 몫이었고 관심과 사랑도 오빠가 독차지했다. 그러나 그 때의 내 고향은 그런 걸 당연시했다. 반상의 차별과 인종차별도 극심했지만 그러한 것들도 전혀 문제시되지 않았다. 때문에 내가 차별을 당한다는 사실조차 어린 나는 알지 못했다.

   “아이구 세상에, 저게 사람이냐 짐승이냐?”

   텔레비전에서 가끔 방영되는 외국영화의 배우들을 보면서 어른들은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다. 흑백영화 속의 서양인 배우들은 내 눈에도 외계인처럼 보일 때가 종종 있었다.  

   “내 고향의 어른들은 소피아 로렌이나 앤소니 퀸이 끔찍하게 못생긴 사람들이라고 했어. 그래서 나도 그들이 엄청난 못난이들인 줄 알았지 뭐야.”

   미국인 친구들에게 그런 얘기를 하면 대뜸 “오 마이 갓!” 이라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토록 멋진 소피아 로렌을 못 생겼다고 하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사고방식이나 성향을 틀린 것이라고 우기게 되는 모양이었다.

     삶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내가 보고 내가 느끼고 내가 정의하는 것, 그게 삶인 것 같다. 자기주장이 강할수록 삶에 대한 애착도 강한것 같다. 내 경우를 보면 그랬다. 나도 참 어지간히도 우기기 좋아하는 고집장이였는데, 삶의 결승점이 가까워 올수록 그 고집이 희석되는 것을 느낀다. 절대로! 라는 배짱과 오기보다는 좋은 게 좋은것이라는 순응과 양보가 슬몃슬몃 앞으로 나선다. 나이 먹을수록 심해지는 늙은이들의 옹고집은 필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의 몸짓일 것이다. 삶을 정리할 준비가 도무지 안된 때문일 것이다. 

    내가 인종차별에 덜 민감한 것도 어릴 때의 경험이 버무려진 나이의 무게 덕분인가 싶다. 철이 든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가끔 인종차별을 당한다는 느낌이 들어도 ‘우리나라는 외국인 차별 안하나 뭐….’ 그렇게 넘길 수가 있다. 정도가 심하다 싶은 누군가에게 대들어 동네를 발칵 뒤집다시피 고래고래 난리를 핀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웃으면서 잘 넘기고 있는 편이다. 내 의외의 격한 반격에 잘했다며 등 두드려 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런 난동은 한 번으로 끝낼 생각이다. 두번의 난동에 격려해 줄 사람은 있을 것 같지 않아서다.        

      인종차별은 낯선 이들에 대한 거부감이다. 철모르는 아가들의 낯가림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 낯가림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라 하겠다. 유감스럽게도 미국에는 낯가림을 극복하지 못하는 무지한 어른애들이 아주 많다. 그들 가운데는 우리 한국인들도 적지 않다. 부끄럽고 유감스러운 일이다. 철들면 죽는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나잇값은 하면서 살아야 오래 사는 보람이라는 게 있지 않을까?          



유유자적 동네를 순회하는 사슴 무리들. 우리 동네는 겨울 내내 크리스마스 풍경이다.
두댕이들이 합류하겠다고 아우성이다. 어서 문 열어 달라고 안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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