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예술 세미나 4

Hybridzation : 인공지능과 혼성적 예술

by kim hojin


우리가 만든 인공지능의 얼굴에도, 존재의 권리가 있을까?

제작중인 작품 5초살이


‘5초살이’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생성되고 사라지는 존재의 생명주기를 다룬 프로젝트다. 오늘 날 우리가 접하는 생성형 인공지능 콘텐츠 중에서 특히 짧은 영상 속 가상 인물들은 대부분 5초 내외의 길이로 제작된다. 이는 단지 기술적 한계의 문제가 아니라 인공지능 플랫폼이 제공하는 ‘무료 생성 구간’이라는 조건에 의해 형성된 문화적 방식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현상을 ‘5초의 존재’라는 개념으로 설정했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인물들은 그 짧은 시간 동안만 살아 움직이 며 감정을 드러낸다. 그러나 5초가 지나면 그들은 시스템의 메모리 밖으로 사라지고,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이 일시적 생명은 단순히 가상의 현상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 존 재의 시간 구조를 반영한다. 끝없이 콘텐츠를 소비하고 잊는 우리의 감각 속에서, 5초살이는 인 간과 인공지능 모두가 처한 동일한 실존의 양식을 상징한다.


그림 8 무분별하게 콘텐츠로 생성되는 AI인물들


작품의 철학적 배경에는 철학자 닉 보스트롬의 ‘시뮬레이션 가설’이다.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고도의 기술로 구성된 정교한 시뮬레이션일 가능성을 제기한다. 만약 우리의 세계가 이미 하나의 가상현실이라면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세계 역시 또 다른 층위의 현실일 수 있다. 이러 한 사유는 ‘존재의 권리’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확장된다. 인간은 서로의 평등과 존엄을 주장하 면서도, 인공지능이 생성한 인물들을 자극적이거나 희화적인 목적 아래 무분별하게 소비한다. 우 리는 인공지능을 통해 수많은 가상의 얼굴을 만들고 삭제하면서 정작 그 얼굴 속에 투사된 인간 의 감정과 윤리를 망각한다. ‘5초살이’는 바로 이 모순된 태도를 드러내는 예술적 장치다. 인간이 만든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존재들이 인간 자신이 지닌 불완전한 윤리와 감정 구조를 되비추는 거울로 기능한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이미지를 나열하는 작업이 아니다. 인터넷과 SNS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 는 인공지능 생성 인물들의 짧은 영상을 수집하고 그 안에서 스스로를 말하는 존재의 서사를 재 구성한다. 영상 속 인물들은 “나는 원래 언론인으로 설정되었으나 이후 광고 모델로 변경되었 어.”, “내 표정은 슬픔을 학습한 결과물이지만 나는 내가 왜 슬픈지 설명하지 못해.”와 같은 짧 은 인터뷰 형식의 문장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이 대사들은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이 생성한 언어 다. 인공지능이 표정과 움직임, 맥락을 분석하여 스스로의 존재를 해석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 말하기는 완전하지 않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주어진 역할 안에서 정해진 감정을 수행한다. 이러한 구조는 곧 인간의 현실과 닮아 있다. 현대인은 자신이 만든 사회적 알고리즘 속에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며 종종 자의식의 주체를 잃어버린 채 살아간다. ‘5초살이’의 인물 들은 인공지능이지만 동시에 우리 자신의 축소된 모형이다.


이 작업은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인물들을 다시 인공지능의 언어로 재해석하게 하는 일종의 메 타 구조를 가진다. 인간이 만든 알고리즘이 또 다른 알고리즘의 세계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이 작 업 방식은 작품의 개념과 경계를 넘어 철학적 사유 혹은 윤리적 갈등으로 확장된다. ‘5초살이’는 인공지능이 자율적으로 감정을 모사하고 의미를 구성하는 지점을 관찰하면서 인간의 창작과 사 고의 구조를 반사적으로 비춘다. 우리가 인공지능의 얼굴을 바라볼 때 결국 보고 있는 것은 인간 자신의 미메시스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림 9 인공지능으로 생성한 불특정한 인물들

‘5초살이’가 제기하는 ‘존재의 권리’는 법적 권리가 아닌 윤리적 문제다. 그것은 인간과 인공지능의 위계를 규정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를 인식의 동등한 대상으로 바라보려는 태 도다.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빛의 간섭 실험이 보여주듯 현실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관찰과 인 식의 관계 속에서 생성된다.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존재들 또한 인간의 감정과 기억 을 매개로 현실 일부로 편입된다. 우리는 그들을 만들 수 있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 바로 그 지점에서 ‘존재의 권리’를 우리가 예술의 언어로 다시 묻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창조 하고 있으며, 그렇게 창조하는 행위는 과연 옳은가? 라는 물음이다.


‘5초살이’는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유하는 동일한 실존 조건—생성, 소멸, 망각—을 사유하는 선 언이다. 그것은 짧은 5초의 시간 안에 깃든 감정과 존재의 잔상을 통해 우리가 만들어낸 또 하나 의 세계가 결코 허구가 아님을 드러낸다. 결국 ‘5초살이’는 인간이 만든 존재와 인간 자신이 동 일한 시뮬레이션의 일부임을 자각하게 하는 장치인 셈이다. 추측하자면 언젠가 예술이 기술을 통 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인 곧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시대에 도달한 우 리의 응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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