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형태

19년 11월에 칠한 필름

by Hyou


유년시절부터 시장이나 대형마트를 좋아했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좋아했던 것은 대형마트도, 큰 재래시장도 아닌, 아파트 단지 내에 열리는 요일장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그 시장을 할머니의 손을 잡고 걸으면, 마치 놀이공원이 집 앞으로 다가온 것만 같아서 잔뜩 부푼 마음을 안고 그곳을 누볐다. 군것질을 하며, 어쩌다 한 번씩 할 수 있었던 뽑기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작은 바이킹은 어린 내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 내에 시장이 열리면 주민들은 주차도 어려워지고, 여러모로 힘든 점도 많다는 것을 아는 사람으로 자라났지만 그럼에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과거에 비해 너무나 작아져버린 시장을 걷고는 한다. 반찬거리로 즉석에서 튀겨낸 따끈한 돈가스나 달콤한 찹쌀도넛 등 주로 먹거리지만 나름의 방법으로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꾸준히 쌓아가고 있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과거의 기억들은 튼튼한 골격이 되어 현재를 만들어낸다. 이처럼 내게 유년시절은 오래된 필름 사진처럼 희뿌예 선명한 색채는 남아있지 않지만, 그 형체만은 분명하게 남아있다. 나의 작은 동네를 벗어나지 않은 채, 처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살아왔기에 항상 보는 풍경들은 너무나도 천천히 변해왔고, 익숙해 질대로 익숙해진 거리를 바라보는 눈높이는 달라졌으며, 그 변화를 새삼 느끼니 평소 보지 못한 채 지나가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11월에 칠해 낸 나의 필름처럼, 늘 보는 것들이 너무나 소중해서 하나하나 새로움에 눈이 부셨다.





해가 짧아질 때면 왠지 모르게 시큰했고, 어쩌다 한번 열리는 야시장에서 친구들과 저녁 늦게까지 노는 것이 크나큰 즐거움이었던 그때, 놀이터가 너무나 넓었던 나의 유년은 금 간 벽화처럼 온전하지는 못하지만 아직도 어여쁜 그림으로 덮어져 있다. 언젠가는 그 위에 새로운 색들이 덧칠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오늘도 어린아이처럼 설렘과 약간의 두려움을 안은 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