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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리 Oct 12. 2021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하기 싫은 일도 해야지.

NGO 입사부터 퇴사까지 2년


  NGO를 꿈꾸던 여대생은 졸업 후 4년 뒤에야 문턱을 겨우 밟습니다. 바로 입사할 실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남들 다 있는 토익 점수도 하나 없었죠. 사회복지학과는 실습은 하지만 논문도 영어점수도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저 때는 그랬어요. 아무튼, 수능 5등급에서 멈춰버린 영어실력에는 심폐소생술이 필요했습니다. 고로 돈을 벌어야 했지요. 흔한 취준생이 그렇듯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노동을 했습니다. 어린이집 누리 보조 교사, 학원 보조, 약국 캐셔를 전전했죠. 이력서 쓰는 일이 밥 먹는 일보다 잦아지던 어느 날 전화가 한 통 옵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입사하게 되었죠. 나름 큰 기관이라 부모님이 뿌듯해하셨고요.


사회복지사로 일한다고 하면 보통 반응은 두 가지입니다. “좋은 일 하네” 와 “먹고살 수 있겠니?” 지요. 네. 먹고는 삽니다. 2018년 당시 세후 176만 원을 받았습니다. 퇴근 후에 혼자 마라샹궈를 사 먹기도 했습니다. 주택청약도 이때 시작했고요.

 

 꿈꾸던 일이 아니어서 항상 우울했을까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죠(혹시 음이 느껴지시나요?). 1순위였던 일이 아니어도 24시간 내내 불행하지는 않았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매분 매 초마다 행복하지는 않은 것처럼요.


 고작 1년의 경험이지만 사회복지사라는 다섯 글자에 포함되는 노동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택시에 탈 수도 없는 커다랗고 무거운 짐을 혼자 옮겨야 해던 적도 있었죠. 비 오는 날 우산도 없이 신촌 거리를 걷던 여자가 바로 저예요. 주말 수당이나 야근수당이요? 당연히 없지요 그럼 보람은 있었냐고요? 한참 예민했던 클라이언트들은 “선생님. 애들이 선생님 다 싫어하는 거 알아요?” 라며 카운터를 날리기도 했습니다. 하필이면 제가 자주 지나가는 장소에서 담배 피우는 모습을 못 본 척하느라 애쓰기도 했고요.


매일 저녁  울면서 현관문에 들어서는 딸에게 아빠는 나름의 위로를 건네셨죠.


“벤처 기업은 더 힘들어. 너 말고 더 힘든 사람 많다.”


평소에는 말 한마디도 없는 과묵의 끝판왕이셔서 나름 위로겠거니 했습니다.


“벤처 기업 사람들은 퇴근이 없더라. 그래도 너는 집에 와서 저녁은 먹잖냐”

“그래도 정규직이 돼야지”

“조금만 더 다녀봐.”


아빠가 하는 말은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2명이  몫을 1명이 하니 당연히 회사는 저를 좋아했고,  버텼다면 정규직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2호선 지하철 유리창에 이마를 박고 눈물만 줄줄 흘리는 저에게는 들려도 들리지 않는 소리였지만요.


“아빠. 그 사람들은 나보다 돈 많이 벌잖아. 나 힘들어 죽겠는데 위로 좀 해주면 안 돼?”


참다못해 서러움을 터트린 날, 화를 낼 줄 알았던 아빠는 말이 없었습니다.  

대화는 끝났지만 원인 모를 통증이 시작되었습니다. 밤마다 팔이 아파서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몸이 내지르는 비명은 2박 3일로 캠프를 갔던 날 정점을 찍었습니다.


학생들을 인솔하고 가는 차 안에서 갑자기 턱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만 겨우 턱을 벌릴 수 있었습니다.

난생처음 겪는 통증에 무서워서 어쩔 줄을 몰랐죠. 같이 갔던 간호사 선생님에게 달려갔더니


“스트레스 많이 받았나 봐, 캠프 끝나면 병원에 가봐요.”라고 말하시더군요.


당시 캠프에 함께 갔던 본부에서는 무채색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저 역시 할 말을 잃었습니다. 안 열리는 입에 밥을 몇 스푼 욱여넣고는 쉬는 시간에 집에 전화를 걸었어요, 엄마는 분노로, 아빠는 마지못해 그만두라고 하셨어요. 다행히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일정을 소화하던 중에 턱은 조금씩 열렸습니다. 마음은 깡깡 얼어붙었지만요. 퇴사를 결심할 그 당시 계약 만료까지는 7개월가량이 남았습니다. 남들은 2-3년 일해야 경력으로 친다는데, 인정은 못 받아도 퇴직금은 받아야겠더라고요. 어찌어찌 1년짜리 경력증명서와 퇴직금을 받고 나니 원점이었습니다. 모아둔 돈을 까먹으면서 취업준비를 했어요. 돈을 더 적게 벌어도 좋으니 몸이 덜 힘들고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 간절히 바랬고요.



 6개월 뒤, 마침내 꿈은 이루어졌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정리입니다.


1. 어린이집 누리 보조

 돈 ★★★☆☆ 가치★★★☆☆ 재미 ★★★★☆

근무시간: 월~금 AM10~PM5

업무 1. 차량 지도 2. 청소 3. 식사지도 4. 1~3을 제외한 모든 잡다한 일

- 아가들이 너무 귀여워서 아직도 기억에 남음. 그만둔 이유는 사회복지사 1급을 응시하기 위해서 + 엄마가 되어보지 않고 어린이집 교사를 하기에 개인적으로 힘들어서(개인적인 의견입니다)


2. 학원

 돈 ★★★☆☆ 가치★☆☆☆☆ 재미 ★☆☆☆☆

근무시간 월~금  PM1~PM9(불규칙)

 업무 1. 국어, 수학, 과학, 사회 문제집 풀이 피드백  2. 청소



3. 약국 아르바이트

돈 ★★★☆☆ 가치★★★☆☆ 재미 ★★★☆☆

근무시간 AM9~PM6(월, 금/불규칙)  

업무 1. 캐셔 2. 청소

- 약사 선생님이 좋아서 취준 전까지 가장 편하게 다녔던 곳. 약국에 생각보다 진상이 많다. 물론 약사 선생님이 베푼 친절과 간식이 더 남는다.


4. 사회복지사

돈 ★★★★☆ 가치★★★★. 5   재미 ★★★★☆

근무시간 AM9 ~ PM6 + a

 1. 회계 및 행정 2. 사례관리

-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고 보람 있었고 길었던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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