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제리 Oct 28. 2021

성격보다 입맛이 맞는 상사가 좋아.

NGO 입사부터 퇴사까지 2년



 점심시간을 기대하는 맛에 출근하는 걸 알면 부장님은 뭐라고 하실까? 식사할 때는 메뉴 선정만큼 누구와 함께인지가 중요합니다. 마주편에 앉은 상대가 맘에 들면 그다음으로는 입맛이 중요하지요. 식성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 건 은근히 어렵거든요. 바늘에 실을 한 번에 꽂는 일 만큼요. 그 어려운 일이 단 번에 이루어졌던 때가 있습니다. 신촌에서 근무했던 3년 전, 마주편 자리에 앉은 그녀는 저와 적당한 교집합이 있었습니다. 특히 빵순이라는 공통분모는 결코 작지 않지요. 아무리 바빠도 아침 회의 때는 토스트를 구웠습니다. 탕비실에 마침 토스트기도 있었고요. 둘 다 어리바리한 사회 초년생이라 엉덩이 붙일 틈 없이 바빴지만 점심시간만큼은 특별했습니다. 오늘의 점심이라는 주제로 하루 중 가장 열띈 토론을 했습니다. 오전 업무에 허덕이다 결정하지 못했을 때도 있었지만요. 그럴 때마다 한정된 시간 내에 최대의 만족을 얻기 위한 종종걸음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 회사에서 정해진 업무 식대인 7,000원을 훌쩍 넘기는 12,000원짜리 트리플 짜장면을 먹었던 기억은 지금까지도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지요. 


무려 트리플 오일이 들어가 있다.


 즐거운만큼 엥겔지수를 드높이던 그녀는 저보다 먼저 사무실을 떠났습니다. 9개월 이른,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이지요. 참고로 제가 다녔던 회사는 잡플래닛 1점으로, 6개월 차가 되었을 때는 선임이 없었습니다. 모두 퇴사를 했기 때문이지요. 아무튼 그 뒤로 사이드 메뉴까지 시켜 먹었지만 혼자 먹는 특식은 어쩐지 차가웠습니다. (각자 다른 직장을 다니게 된 뒤에도  종종 만나 식사를 했는데 ‘그때가 좋았지’의 8할은 먹는 추억이기도 하지요.)



  다음 직장에서는 사람만큼 메뉴 선정이 만만치 않다는 걸 배웠습니다. 언뜻 봐도 장신에 운동선수 같은 풍채로 인상 좋던 상사는 불현듯 다이어트를 선언했습니다. 직장에서 보기 힘든 인격자(!) 였는데 인격만큼이나 의지도 본받을 만했습니다. 저탄 고지, 한식 위주의 식단과 꾸준한 유산소 운동을 시작하더니 놀랍게도 3개월 만에 15kg 이상을 감량하셨습니다. 문제는... 늘 같이 다이어트 식단으로 먹어야 했다는 겁니다. 여름에서 겨울까지 한 메뉴만 먹은 적도 있습니다. 그분은 나처럼 매일 다른 음식을 먹고 싶은 까탈스러움이 없었습니다. 주야장천 건강한 식단을 먹었으니 함께 날씬해지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제 부피는 여전했습니다. 원치 않는 메뉴를 먹고 퇴근을 하면 마라샹궈를 먹었기 때문이지요...

1인 마라샹궈


 어느 날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이영자 씨가 상사가 한 메뉴만 고집해서 힘들다는 직장인의 사연에 답했습니다. 입맛이 안 맞다면 전부 안 맞는 거니까 퇴사하라고 말이에요. 에이. 그 정도라고? 하며 웃었는데, 6개월 뒤… 위 사연과 별 반 다르지 않은 일로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겨우 먹는 일로 퇴사를 하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역린이 하나쯤 있습니다. 저에게는 음식이었습니다. 어린이집에서 나를 제외한 모든 선생님이 전주 초코파이를 먹었을 때, 비정규직이라고 차별받는다고 느꼈습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행사 때 클라이언트가 오지 않아야만 남는 주먹밥을 먹을 수 있는데, 서러웠습니다. (열받는 건 수당 없이, 선택 없이 휴가로만 대체할 수 있는 추가 근무였습니다. 그래도 밥을 줘야 하는가 아닌가요?)


 연장선으로 선택권 없이 특정 음식만 줄기차게 먹는 건 재미가 없습니다. 목요일 점심에 언빌리버블 버거가 먹고 싶은데 왜 고민 없이 뼈해장국집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할까요? 점심시간은 휴게시간이라고 하는데 상사와 원치 않는 메뉴를 먹고 산책 권유까지 받는 건 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는 사회생활 부적응자가 말하는 유치한 발언이겠만 당사자에게는 굵은 궁서체로 쓰인 이야기입니다. 맞아요. 본인의 고통은 본인이 이해하면 되지요.




이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알았다.

 

위 그림은 첫 직장에서 알게 된 짤입니다. 초년생으로 서로가 멍부 아니면 멍게라고… 반면 상사는 똑부인 게 틀림없다고 속닥거렸습니다. 우리를 아주 잡아먹히고 조져지는걸 저 표를 보면 알 수 있다고 말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이야기는 저 표 안에 없습니다.


 포털사이트 검색에 고민을 물어볼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퇴사할 때 단톡방에 하는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요?” 라던가. ‘직장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제공해주는 식대를 아까워해요.’라는 아우성… 온라인 세상에서 특정 질문에 마음을 시원케 하는 답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답은 3차원 세상에서 찾아야 합니다. 일 잘하고 성격은 무난한, 밥맛이 통하는 상사를 만나고 싶습니다. 점심은 따로. 각자 일은 열심히면 나이스고요. 옵션을 붙여 보자면 퇴근 후에는 업무지시를 하지 않는 그런 상식도 있는… 쓰다 보니 신화 속 인물 같습니다. 저부터, 잘해보겠습니다.




 







이전 04화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하기 싫은 일도 해야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