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야, 네가 대학교에서 나랑 가장 많이 붙어 다녔잖아. 넌 그럼 그때부터 계속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어?"
"응"
"아.. 또 나만 아무 생각 없었네 그냥"
대학교 졸업을 하고 2년이 지난 뒤에야 첫 직장에 들어갔다. 개인 사정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었다. 가진 자격증, 어학 점수는 없었고 학점도 좋지 않았지만 나의 기준은 다른 동기들처럼 높았다. 나를 원하는 회사와 내가 원하는 회사의 갭 차이는 어마무시했다. (지금 돌아보면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먼저 연락이 온 회사는 도대체 뭐 하는 회사였는지 궁금하기는 하다.)
남들이 학교를 다니며 준비했던 스펙을 졸업 후에야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부족한 상태이다 보니 합격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건 당연한 것이었고 수십 번 탈락만 맛보며 나의 기준은 점점 낮아져 갔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며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였고 결국 나는 아무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일 년의 마지막 날인 12/31일에 태어났기 때문일까? 어릴 때부터 나는 항상 모든 것이 느렸다.
성장이 느려 항상 앞자리에 앉았고,
스타크래프트에 뒤늦게 빠져 고3 내내 게임만 했
하다 수능도 말아먹었다.
학점에 관심이 생긴 것도 2학년까지 이미 망친 뒤였고, 졸업을 하고 나서야 취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성에 대한 관심도, 미래에 대한 고민도 주식도 코인도. 매사에 나는 항상 느릴 뿐이었다.
"나는 왜 맨날 느릴까. 좀 억울한 부분도 있어. 누가 알려준 적이 없는데 어떻게 다 스스로 찾아서 하고 아는 거지? 난 왜 이 모양일까"
항상 뒤처지는 거 같은 속상한 마음에 자책을 했다.
그리고 그런 날 보며 친구가 웃었다.
"야 새삼스럽게 이제 와서 뭘. 대신 너는 하려는 거 다 주변 사람들이 경험해 봤으니 물어보면 되겠네"
맞는 말이다.
어차피 최초는 될 수 없을 테니 남들의 경험을 이용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맞네. 천잰데?"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뭐 느리게 사는 사람도 있어야 이 바쁜 세상에 빠른 사람이 빛나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