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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Jun 24. 2017

쉬고 싶을 때, 앉고 싶은 그 의자

의자 디자인에 부쩍 관심이 간다. 의자는 몸을 기대는 단순한 가구가 아니다. 침대와는 다른, 효율적인 휴식을 위한 가구다. 휴식을 위해 침대에 눕는다면, 그것은 잠깐의 휴식이 아니라 꿈나라로 향하는 실수로 이어질 확률이 다분하다. 학창 시절, 30분만 침대에 누웠다가 일어나서 공부하겠다고 말하곤 했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날 것을 말이다. 이러한 불상사를 방지하면서도, 잠시 앉아있기만 해도 긴 휴식을 취한 듯한 느낌을 주는 편안한 의자를 조만간 우리 집 거실에 들여놓겠다는 다짐이 위시 리스트에 추가되었다.


휴가지에서 집으로 가져오고 싶은 아이템은, 더 이상 그 지역의 기념품이 아니다. 묶고 있던 호텔의 베개나 침대 매트리스, 그리고 흔들의자 같은 휴식을 위한 아이템들이다.


‘쉼’이 그리운 나이가 되었나 보다. 


쉬고 싶다고 느끼고, 어떻게 쉬면 좋을지를 고민하고, 그렇게 쉼을 찾아 떠나지만 그래도 늘 쉼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노는 것이 쉼이라 생각했지만, 노는 것 역시 스케줄링이 필요한 시대이니 쉽지 않다. 먹거리, 볼거리, 숙소 정보들이 쏟아지는 상황 속에서 정보를 선별하는 것도 일이다. 차라리 옵션이 몇 가지 없었으면 좋겠다. 나중에서야 더 좋은 정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허탈감도 꽤나 크다. 그뿐이랴. 놀러 왔다는 인증도 해줘야 SNS가 풍성해지는 것 같다. 쉬러 왔는데 쉬고 싶다.


쉬고 싶은데 쉬는 방법을 모르겠고, 쉬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도 쉼을 공부한다. 


무엇을 하고 있을 때 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는지 생각해 보다가, 거실 바닥에 누워 빈둥빈둥 창 밖을 쳐다보고 있는 아이에게로 시선이 간다. 아이는 지금 쉬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어른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아이에게는 별도의 쉬는 시간이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게 ‘쉼’을 ‘힐링’과 동일하다고 여기는 이유는, 휴식 시간 속에서 내 감정에 공감을 얻고 싶고, 나를 이해해주고 아껴주는 사람이 있다는 확인을 통해 안심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아쉽게도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어렵거나, 그럴 수 있는 사람과 자주 만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된다면 특별한 ‘쉼’ 시간이 꼭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과의 만남이 바뀌기도 하고, 좋아하는 사람보다는 필요한 사람과의 만남이 잦아지면서 ‘쉼’ 시간은 관리가 필요한 시간이 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런 면에서 아이에게 별도의 쉬는 시간이 필요 없는 이유는, 자신의 감정을 공감해주고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이 언제나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속상한 일이 있더라도 바로 치유받을 수 있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고, 성장의 과정을 믿어주는 사람이 항상 옆에 있는데 굳이 ‘힐링’의 시간이 필요할 리 없다. 


그래서 어린 시절, 그저 할머니 무릎에 앉아서 창 밖을 쳐다보고, 엄마 다리를 베개 삼아 잠이 들었을 뿐인데도 편안해졌던 것 같다. 가족의‘품’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 안이 주는 포근함은 쉼 자체였다.


그 ‘느낌’ 없이 물리적인 휴식으로 ‘힐링’을 찾고 있기 때문에, 많은 비용을 쏟아붓고 필요 이상의 시간을 소비하고도 여전히 ‘쉼’에 대한 갈증이 남는 것은 아닐까.


더 이상 아이가 아닌 성인의 나이에, 이제 누구의 품에서, 누구의 무릎에서 휴식을 취해야 할까.


쉬고 싶을 때 앉아있을 수 있는 그곳은, 엄마의 무릎을 닮은 그런 의자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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