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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Nov 02. 2018

시간은 바람이란다

그 어떤 상처라도 치유할 줄 아는 사람이 인생 고수다. 우리는 마음만 먹는다면 그런 고수가 될 수 있다. 바로 시간이라는 무기 덕분이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 잠시 출근했던 회사, 배신감이 들었던 사람,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사람조차 시간 앞에서는 점차 희미해져 간다. 깊은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딱지가 앉고 새살이 돋아난다. 

- 김나위 [내가 나를 위로할 때]


어린 시절에는 어서 빨리 어른이 되기를 고대하지만, 그 순간은 너무 천천히 온다. 기다리다 지칠 지경이지. 시간이 넘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어도, 죄책감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필요조차 없다. 시간은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영원히 이렇게 멈춰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시간은 미풍이다. 흘러가기는 흘러가지만, 정말 약하게 천천히 흘러간다. 다행이다. 덕분에 충분히 주어진 시간만큼, 차곡차곡 성장해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청춘이라는 시기에 접어들면, 시간의 속도가 조금씩 빨라진다. 시간이 나를 스쳐가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마음도 급해진다. 세상에 무엇이 있는 줄 몰라 시키는 일에만 집중하던 어린 시절에 비해, 세상을 알아 가고 부족한 것을 느끼고 채워야 할 것을 공부하며 매 순간 선택해야 하는 일들이 쌓여가는 청춘은 바쁘다. 느슨했던 어린 시절은 시간도 천천히 불었는데, 바빠진 청춘은 시간이 세게 분다. 사회는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 점점 늘어만 가는데, 다 충족시킬 시간이 없다. 내 시간을 뒤로 미뤄도 마찬가지다. 부담감을 놓아버리고 싶은데, 놓을 수가 없다. 자칫하다간, 나 자신까지 날아갈 것만 같기 때문이다. 꽉 붙잡아야 한다.


속상해서 울고 싶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는 이 시간은 나에게만 야박하게 구는 것 같다. 힘들지만 나에게 쏟아지는 책임감들 모두 제대로 이루어내고자 노력하는 마음을 봐서라도, 좀 천천히 지나가도 될 법 한데 말이다. 


그런데, 시간은 바람이란다.


바람은 흘러가게 놔두는 것이 맞다. 바람을 붙잡아놓을 수는 없잖니. 바람을 잡아놓으면, 더 이상 바람이 아니다. 움직여야 바람이니까. 그리고 고맙게도 시간이라는 바람은 우리의 상태를 봐가며 불었다. 작고 어렸을 때는, 넘어질까 약하게 불었다. 조금씩 커갈수록, 더 단단해지라고 바람의 세기를 높여간 것이다. 모가 난 곳은 둥글게 딱딱한 곳은 더 견고하게 바위를 단련시키듯, 그렇게 세월이라는 거대한 미션을 수행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 준단다.


빨리 흘러가는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야속하다고만 느꼈던 시간의 단점이 장점으로 뒤바뀌는 순간이다. 시간이라는 바람의 흐름에 따라, 보내버리고 싶은 것을 그대로 보내버릴 수 있으니까. 현재의 것은 좋든 싫든 회피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과거의 것이라면 과감히 버릴 수 있지 않을까. 과거의 기억을 계속 간직하기에는, 지금 채워 넣어야 할 마음의 장소가 부족하기도 하잖니. 게다가 힘들었던 과거는 기억하면 기억할수록 현재의 삶에까지 영향을 미친단다. 어두운 기운을 계속 끌고 갈 필요는 없다. 물건을 정리하듯, 마음도 자꾸 그렇게 정리해보자. 보내고 싶은 것은 그대로 흘려보내고, 남기고 싶은 것만 남기고 싶은 것만 남기렴. 


감사하다.

시간이라는 바람 덕분에,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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