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가면

by 새글

세월이 가면

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취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날시예감

가을은 외롭다. 지나간 모든 것들이 외롭고 그립다.

세월이 가면 어떤 것들은 잊히겠지만 여전히 가슴에 아로새겨져 파문처럼 깊이 남아있는 것은

사람이다. 잊겠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다. 아프지 않다는 말은 위장일 뿐이다.

가을엔 떨어지는 낙엽 한 장에 머리를 맞아도 아프다.

세월이 가도 그 세월 속의 기억들은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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