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엄지발가락이 둘째 발가락에 슬그머니 기대어갑니다. 네가 왜 나보다 크냐? 첫째는 나인데. 어떻게 해서든지 타고 올라갑니다. 드디어 올라앉기 일보직전입니다. 신발 신기가 너무 불편하고 아파서 정형외과에 갔더니, 발은 발대로 전문의가 따로 있다고 그쪽으로 가라고 안내해줍니다. 붓지도 않았는데 으레 X레이부터 찍고 오랍니다.
몇십 년 전 TV에서 방영했던 영화 <뿌리>에서 남자 노예들의 발목에 묶었던 체인과 같은 굵직한 쇠 발걸이를 내 발에 걸고 철거덕 고리를 잠급니다.
“서서히 조여 갈 것입니다. 아프셔도 있는 힘껏 참아보세요. X레이가 잘 나오려면 참으셔야 해요. 정 힘들면 소리를 지르세요.”
“잘 참아볼 테니 잘만 찍어주세요.”
차가운 쇠뭉치가 닿는 느낌과 통증, 그리고 잘 찍혀야 된다는 생각이 겹칩니다. ‘참아보자, 그런데 무슨 생각을 해야 참을 수 있지?’ 고심 끝에 한창 재롱부리는 손자를 떠올리며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배경은 일제강점기. 손자가 훌륭히 자라 독립투사가 되었습니다. 일본 경찰에 쫓기고 있어서 우리 집 안방 다락 구석에 손자를 숨겨두었습니다. 손자를 독립투사로 설정해놓고 발목이 조여올 때마다 “난 모른다, 어디 있는지 정말 난 모른다” 하면서 버티자고 결심했습니다.
무거운 쇠뭉치가 가뜩이나 아픈 발목을 조여왔습니다. 기계가 한 번 돌고, 또 돌고, 또 돌고 할 때마다 “난 모른다”를 머릿속에서 되뇌었습니다. 그러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아아, 우리 집 안방 다락에 있어요. 그만해요. 그만이요”라고 외칩니다.
“잘 참으시던데요….”
더 참아야 잘 나왔을 것이라는 얼굴빛입니다.
온몸에 기운이 쑥 빠져나갑니다. 나 살자고, 아니 정확히 늙고 쭈글쭈글한 발가락이 아프다고 손자를 배반했습니다. 나의 한계를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난 그런 사람… 크게 계획이나 세우지 말지. 집에 가면 반갑게 뛰어올 손자 얼굴 볼 생각하니 얼굴이 붉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