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바람이 이따금씩 시샘하듯 불어 벚꽃 잎이 떨어질까 봐 조마조마해집니다. 초록빛 중에서도 가장 선명한 꽃받침에 살짝 얹힌 꽃잎, 꽃봉오리, 자연의 계산법에 따라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피어났습니다. 나하고의 인연일까요. 가끔 불어와 꽃잎을 날리게 하는 것도 내 머리카락을 내 뺨을 스쳐가는 것도 나하고의 만남입니다. 이 가냘픈 꽃들, 작은 나뭇잎들이 가을이라는 시간 앞에 꼼짝 못하고 다 날아가면 봄이란 이름 앞에 다시 새로운 꽃과 잎이 생겨나겠지요.
걷기 싫어하는 나를 달래고 위협하며 운동을 나섰습니다. 운동이 끝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동네 슈퍼마켓 안에 있는 옷 수선집에서 수선한 옷을 찾고 김밥 세 줄을 사면 되겠다 싶어서 돈 만 원을 이리저리 꼭 접어서 주머니에 잘 넣었습니다. 좀전까지 읽은 책을 생각하며 걷자니 공상에 망상에 왕복 3.2킬로미터를 걸었습니다. 바람은 아까보다 자주 강하게 붑니다. 다리도 아프고 머릿속도 멍해져서 서둘러 김밥집으로 향했습니다.
문을 밀고 들어간 김밥집은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서인지 썰렁했습니다. 계산대 옆에 알루미늄 호일에 쌓인 김밥 세 줄이 나를 기다린 듯 포개져 있길래 메뉴판에 여러 종류의 김밥이 쓰여 있지만 남은 것 팔아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이 김밥 얼마예요?” 했습니다. 주인은 천팔백 원이라고 합니다. “세 줄 다 주세요” 하고는 만 원짜리를 내밀었습니다. 동전 섞인 잔돈을 내주기에 그냥 주머니에 쑤셔넣고 슈퍼 안에 있는 옷 수선집으로 향했습니다. 다 됐냐는 소리에 수선집 아저씨는 종이봉투를 내밀며 사천 원이라고 합니다.
주머니에서 남은 돈을 꺼냈더니 천 원짜리 두 개하고 오백 원짜리 하나, 그리고 백 원짜리 세 개입니다. “어머, 돈이 모자라네요.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나올 때 만 원짜리 갖고 나와 김밥 세 줄 사고 거슬렀는데…” 당황해서 허둥거리니 수선집 아저씨는 잘못 계산해왔다면서 다음에 주라고 합니다.
“아니에요. 김밥집에 다시 가볼게요. 어찌 됐는지 알아보고 올게요” 하며 다시 되걸음을 했습니다. 내 머리를 때리고 싶었습니다. 거스름돈을 확인 안 하고 건네준 물건 그냥 들고 나오고, 특히 물건 살 때의 무심함에 화가 납니다. “주머니에 만 원만 있었으니까 계산이 틀린 것을 알았지, 만약 지갑에서 꺼냈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거야” 이렇게 질책하면서 김밥집을 들어서니 “어서 오세요” 합니다. “좀 아까 다녀간 사람인데 계산이 잘못된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생각에 가슴이 쿵쾅거립니다. “미안합니다. 세 줄인데 네 줄 값을 받았군요” 내 주머니에서 다 꺼내놓은 돈을 보고 주인아줌마는 다시 돈을 거슬러줍니다. 나를 믿어줌에 감사하며 또 세어보지도 않고 그냥 주머니에 쑤셔넣었습니다. “덕분에 운동 많이 했네요. 안녕히 계세요” 하며 다시 수선집으로 갔습니다.
“아저씨, 받아왔어요” 하고 주머니 안에 돈을 다 꺼내놓았습니다. “사모님, 사천 육백 원이네요. 육백 원 덜 받으셨네요” “네? 천팔백 원짜리 김밥 세 줄 사고 나머지 돈이라고 해서 다 갖고 왔는데요?” 재봉틀 앞에서 눈을 껌벅이며 계산하던 아저씨는 육백 원이 모자란다고 합니다. “그럼 또 가야겠네요” 어떤 계산을 했는지 내 난처한 얼굴을 본 아저씨는 내가 덜 받을 테니까 그냥 집으로 가랍니다. “아니에요. 아저씨가 왜 손해를 보세요. 계산 못한 내 탓이지” 그런 승강이를 하면서 내 모자람에 진저리를 치며 돌아서는데 옆집 건어물 아줌마가 인사를 하면서 강냉이 한 봉지를 맛보라면서 내밉니다. “다 귀찮아요. 만 원짜리 하나 갖고도 돈 계산을 못 하니!”, “무슨 이야기인데요?” 둘러보니 미제 물건집 아줌마, 떡볶이 아줌마가 심심하던 차에 흥미 있다는 얼굴로 서 있습니다. 어색하고 부끄러운 얼굴로 어쩔 수 없이 김밥집 이야기를 했습니다. 건어물 아줌마가 계산기를 턱 집어들더니 척척 계산하더니 “맞는데요?” 합니다. 맞다는 말에 후련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수선집 아저씨는 김밥을 천육백 원으로 계산해준 모양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고 가는 인정을, 베풂을 계산에 넣지 않고 살고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