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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서영 Nov 11. 2017

01. 스물여섯, 암에 걸렸습니다.

비정기 에세이, 나의 암 투병기.

어느 일요일, 슬프게도 여느 때와 같은 아픔이 나를 찾아왔다. 

한 달에 한 번씩, 혹은 몇 달에 한 번씩 잊지도 않고 나를 찾아오는 바로 그 불청객과의 조우. 


생리통이었다. 


사실 그날은 정말 나가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아랫배가 묵직하고 허리가 뻐근한 것이, 십 년 가까이 함께 해온 존재가 찾아오리라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그래, 날씨도 좀 안 좋았어. 


하지만 그날은 좀 달랐다. 아니, 나빴다. 많이 좋지 않은 날이었다. 


나는 어기적 어기적 자리에서 일어나 경기도인으로써의 여정을 떠났다. 목적지는 홍대였고, 버스 안에서 화장을 하거나 트위터를 하는 평소와는 달리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여정 동안 죽은 듯이 잠만 잤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미 이때부터 몸은 안 좋았는데, 나는 그걸 애써 무시했다. 한 달에 한번 오는 주제에. 내 몸인 주제에, 내 말 좀 들어라.


홍대에 도착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펑 생리가 터져버렸다. 대충 휴지로 응급처치를 하고 연남동 근처의 편의점에서 생리대를 샀다. 어차피 늦은 거, 먹고 싶었던 아보카도 샐러드(...)를 사 먹고 토마토 생과일주스까지 한잔 입에 물고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사실 이미 약속에 많이 늦은 상황이었지만, 여러 명이 모이는 약속이었고 회비를 선입금하면 누구든지 참여 가능한 모임이었기에 중도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모임이 한 시간이 넘어갈 때 즈음,


어라, 이거 영 몸이 말을 안 들었다. 배가 좀 많이 아팠다. 아랫배에 손을 대보자 확연한 온도 차이가 느껴졌다. 나는 원래도 손이 차가운 사람인데, 배는 그것보다 더 차가웠다. 얼른 핫팩이라도 사서 붙여야겠는 걸. 나는 모임의 주최자인 친구에게 급하게 먼저 간다는 문자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모임 장소 옆의 편의점에 들러 핫팩을 샀다. 때는 이미 봄이 다가올 즈음이라 핫팩도 몇 개 없었다. 붙이는 핫팩을 얼른 집어 들었다. 바로 아랫칸에 놓인 타이레놀이 눈에 띄었지만, 집에 가서 먹자는 안일한 생각에 핫팩을 얼른 히트택 위에 붙였다. 이거면 됐겠지. 그제야 어기적 어기적 핸드폰을 확인하자, 남자친구에게 문자가 와있었다. 모임이 끝났다면 만나러 오겠다는 문자였다. 


남자친구에게 근처의 카페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했고, 나는 그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카페에 들어가 길치인 남자친구에게 좌표를 찍어 보내주었다. 이때만 해도 살만했는지, 나는 카페에 들어가서 빵 한 개와 카모마일 차를 시켜 2층에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맞아 빵 얘기도 해야지, 무려 하얀 빵이었다. 그 쫀득쫀득한 밀가루 빵. 천천히 빵을 씹으며 따뜻한 차를 마셨지만, 복통은 여전히 가실 줄을 몰랐다. 누군가 아랫배에 칼을 꽂아놓고 뒤흔드는 것만 같았다. 괜찮은 것 같다가도 죽을 듯이 아프고, 또 아무 느낌도 없다가 까무러칠만한 고통이 몰려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남자친구가 왔다.  5분 간격으로 찾아오는 진통 때문에 나는 조울증에 걸린 사람마냥 방금 전까지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하다 갑자기 자궁을 떼 버리고 싶다고 부득부득 이를 갈았다. 짐승 새끼처럼 하악 거리는 나에게 남자친구는 진통제를 사다 줄까, 핫팩을 사다 줄까 하며 이것저것 상냥하게 물었다. 내가 '이지엔! 이지엔 6! 효과가 빠른 연질캡슐!(간접광고가 아닙니다)'를 외치자, 남자친구는 일요일에 운영하는 약국을 핸드폰으로 찾더니 하나 발견했다며 냉큼 뛰어나갔다. 아랫배에 붙여둔 핫팩 때문인지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어째, 배가 아까보다 더 아팠다. 


남자친구가 돌아와 약을 내밀자, 나는 냉큼 두 알을 삼켰다. 평소에는 한알밖에 안 먹는 약이었지만 그날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약을 먹어도 배는 계속 아프기만 했다. 으으, 앓는 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식은땀은 나는데 발은 차가웠다. 남자친구는 잔뜩 찌푸린 내 얼굴을 보더니 얼굴에 핏기가 없다며, 어서 집에 가자며 나를 일으켰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 더 이상 한 발자국도 내딛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남자친구는 택시를 부르기 위해 주소를 물어보러 1층의 카운터로 향했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심한 구토기가 올라왔다. 아랫배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윗배였다. 아니, '위'였다. 그래 그럼 그렇지, 14년 동안 함께 해온 위통은 생리 때마다 심해졌다. 생리를 하는 일주일 동안은 항상 식욕이 한 달 중 정점을 찍었음에도 정작 위가 땡땡부어 소화를 시킬 수가 없었다. 먹은 게 없으니 내려가는 것도 없고, 그런 상황에 더럽게 소화 안 되는 생야채와 더럽게 소화 안 되는 빵을 위에 쏟아 넣었으니, 위가 당해낼 재간이 있나. 결국 나는 짐을 수습할 새도 없이 핸드폰만 손에 쥔 체로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뛰었다. 


허연 변기 뚜껑을 부여잡고, 몰려오는 구토기를 그대로 쏟아내려 했다. 하지만 본능이 먼저 그것을 거부했다. 내가 위가 안 좋은 이유 중 하나인 위산과다 때문이었는데, 나는 남들보다 위액이 배는 많이 나와서 짜장면을 먹고 나면 짜장국을 만드는 매직을 선보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토하면 분명 목이 아플 거고, 수십만 원을 들여 한 이빨도 소용이 없을 텐데. 아마 그때만 해도 아주 죽을 것 같지는 않았나 보다,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친 것을 보니. 


간신히 꿀럭꿀럭 구토기를 밀어 넣고 변기에 앉으니, 귀가 윙윙 울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랫배에서 신호가 왔다. 이게 자궁 때문인지, 장 때문인지 판단이 안 서 일단 스타킹을 내리기 위해 일어섰다. 그러자 눈앞이 핑했다. 온 사방이 빙글빙글 돌았다. 겨우 변기에 주저앉자, 아랫배에서 우르릉쾅쾅 소리를 내며 안에 있는 것이 모두 쏟아져 나왔다. 쏟아내기만 했으면 다행이었겠지만, 그야말로 장이 뜯겨나가는 듣한 고통이었다. 아악. 아아악. 이를 악물고 소리 지르고 싶은 것을 참았다. 수천 개의 바늘이 꽂힌 장을 사슬로 묶어 뜯어내는 것 같았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온몸의 핏기가 싹 가셨다. 손가락과 발가락 끝으로 온몸의 액체라는 액체는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어, 다리 사이에 머리를 박은 체로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

"-응 서영아"


수화기 너머와 화장실 밖에서 남자친구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남자친구가 밖에 있었다. 내가 화장실 안에서 푸드덕푸드덕 비둘기 날아가는 소리를 내고 있던걸 모두 들었을 생각을 하니 문명인으로써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지만, 그런 기분이 든 것은 정말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정말 말 그대로 뒤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전화를 끊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다리가 풀려서 일어날 수가 없으니 제발 나 좀 데려가 달라고 말했다. 남자친구는 알았으니 일단 나오라고, 아니 문이라도 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얇은 칸 너머에는 내 신체기관이 쏟아낸 잔해들이 역력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변기 안에만 있다는 것일까.


여하튼,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남자친구에게 이런 추태까지 보일 수는 없다. (솔직히, 사실 이것보다 더한 추태도 이미 보였다.) 간신히 뒤처리를 하고 정말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온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그날 똑똑히 깨달았을 만큼 온 힘을 다해 팬티와 스타킹과 속바지를 한 번에 끌어올렸다. 


다시 변기에 털퍼덕 주저앉아, 후하, 후하 숨을 고르렀다. 손이 덜덜 제멋대로 떨렸다. 아니, 온몸이 떨렸다. 귓구멍에 스펀지라도 박힌 것처럼 모든 소리가 흡수되어 귀가 먹먹했다. 심장은 벌렁거리는데 혈압이 팍팍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눈앞에 흰 점들이 떠다녔다. 나는 정말, 마지막 남아있던 힘을 모두 끌어모아 있는 힘껏 일어났다. 정면의 벽에 어깨를 세게 부딪혔다. 하지만 그 아픔 따위는 느낄 수가 없었다. 온몸의 신경이 몽땅 아랫배로 몰려있었다. 가까스로 어깨로 몸을 지탱하고, 화장실 문을 열었다. 남자 친구가 소리를 듣고 문 바로 앞까지 와있었다. 


간신히 남자 친구의 품에 안겼지만, 내 다리는 약해질 대로 약해져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꺾였다. 스르륵 그의 품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넘어질 뻔 한 것을, 남자친구가 재빨리 붙잡았다. 그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경광등을 킨 것처럼 번쩍번쩍 빛과 함께 눈앞이 팽글팽글 돌더니 깜깜해졌다. 소리가 가까워졌다 멀어졌다를 반복하더니 이내 옛날 브라운관 티비가 꺼지는 듯한 픽-소리를 내며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몇 초가 지났는지, 몇 분이 지났는지도 모를 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그 잠깐 사이에 꿈도 꾸었다. 그러다 플래시를 킨 것 같은 밝은 불빛과 함께 정신이 들었다. 남자친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친구는 택시, 택시를 불렀다며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남자친구의 어깨를 꽉 붙잡고, 덜그럭거리는 턱 사이로 가까스로 세단 어를 내뱉었다.


"오빠... 나 구급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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