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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욱 Oct 11. 2019

내 인생의 판타지

길냥이들의 반란 (초단편)

  천장이 무너질 듯 흔들리더니 쥐 한 마리가 밥상에 떨어졌다. 언제부터인가 쥐들이 점점 불어났다. 하수구에도 창고에도 천장에도 쥐 떼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 나는 밥상을 뒹구는 쥐의 꼬리를 잡아 창문 밖으로 던졌다. 엄마가 숟가락을 내던지며 말했다.

  “이놈의 쥐들은 허구한 날 새끼를 치는구나.”

  엄마의 생각은 언제나 하나로 모아졌다.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행복하게 사는 것.

  “고양이 한 마리 키울까?” 

  “한 마리 가지곤 어림도 없다.” 

  “서울 가서 날쌘 놈으로 몇 마리 잡아올까?” 

  “쥐는 내가 잡을 테니 예쁜 색시나 구해와라.”

  “내가 능력이 돼야 말이지.”

  “못난 자식아 방구석에서 맨날 글만 쓰고 있으니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잖아.”

  “두고 봐, 이번 작품은 베스트셀러가 될 거야.”

  나는 엄마의 구박에도 밥을 끝까지 다 먹으면서 생각했다. 어떡하면 예쁜 색시를 얻을 수 있을까.

  다음날 아침 일찍 그동안 말려놓은 쥐 고기를 챙겨 집을 나섰다. 서울을 향해 발길을 재촉하다 발길을 돌려 마을 서낭당에 올랐다. 돌무더기 옆 칠성나무는 한 뿌리에 일곱 개의 나무기둥이 솟은 그야말로 신령스러운 존재였다. 나는 칠성나무 앞에 말린 쥐 고기를 늘어놓고 소원을 빌었다.

  “제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우렁찬 칠성 나무의 음성이 들렸다.

  “오늘은 겨우 쥐 고기를 가지고 온 거야?

  “쥐잡기가 얼마나 힘든 줄 아세요.”

  땅이 갈라지고 뿌리가 뽑히는 소리가 났다. 나는 달아나려다 그만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산 아래에서 포클레인이 산을 기어오르며 차례차례 나무들을 넘어뜨리고 있었다. 다 죽어가는 칠성 나무의 음성이 들렸다.  

  “네 소원이 뭐라고?” 

  “예쁜 색시를 내려주세요. 이 마을엔 할머니들뿐이에요.” 

  “암고양이를 데려와서 잘 보살피면 여자로 변할 것이다.” 

  “네가 고양이 잡으러 가는 줄 어떻게 아셨어요?”

  “내가 모르는 게 있을 것 같으냐.”

  “암고양이가 어떻게 사람이 된단 말이죠?”

  “암고양이에게 사람 간을 먹이면…….”

  칠성 나무가 이야기를 다 마치기도 전에 포클레인의 갈퀴가 땅을 긁어냈다. 나는 쓰러진 칠성 나무를 붙잡고 사람 간에 관해 물었지만 칠성 나무는 끝내 대답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말린 쥐 고기를 짊어지고 길을 떠났다. 철조망으로 빙 둘러싸인 마을을 빠져나오자 산을 깎아내리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잠시 멈춰 공사 현장을 둘러봤다. 잘린 나무가 나뒹굴고 흙탕물로 변한 시냇물이 점점 말라 가고 있었다. 


  서울에 도착하여 어느 뒷골목 담벼락 밑에 자리를 잡았다. 말린 쥐 고기를 꺼내 놓고 길냥이들을 기다렸다. 날이 저물자 말린 쥐 고기 냄새를 맡은 길냥이들이 다가와 눈치를 봤다. 대부분 어미를 잃은 새끼 고양이이거나 상처투성이 길냥이들이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시골에서 잡은 야생 쥐다. 맛 좀 보렴.”

  눈치를 보던 길냥이들이 말린 쥐를 먹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 가지 않을래? 우리 집엔 싱싱한 쥐가 아주 많아.”

  길냥이들은 말린 쥐를 먹으면서 귀를 쫑긋 세웠다. 말린 쥐 고기는 금세 바닥나고 배가 덜 찬 길냥이들은 입맛을 다셨다. 

  “우리 집에 가면 매일 싱싱한 쥐와 사료를 배불리 먹을 수 있어.”  

  길냥이들은 담장 위에 올라가 회의했다. 나는 담장 밑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겨울이 오고 있어. 너희들은 버려지기 전에 먹었던 사료와 따뜻한 잠자리가 그립지 않니?”

  “조용히 해. 우리 회의 중이잖아.”

  “얘들아, 우리 집에는 싱싱한 쥐와 사료 말고도 맛있는 것이 아주 많단다.” 

  길냥이들은 서로 눈치를 봤다. 

  “봄이 오면 너희들에게 싱싱한 간을 줄게.” 

  길냥이들이 머리를 갸우뚱거리며 간에 대해 소곤거렸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간 이야기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고민하는데 우리 마을의 전설이 떠올랐다.

  “옛날에 우리 마을에 썩은 고기만 먹던 여우가 한 마리 살았단다. 그 여우가 사람 간을 먹고 예쁜 여자가 되었어.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너희도 사람이 될 수 있어.”

  “사람이 돼서 뭐 하게. 우리는 사람을 믿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아.” 

  “너희들 중에 사람 간 먹어본 고양이 있니? 사람 간은 쥐 고기에 비할 바가 아니야.” 

  “쥐보다 맛있다는 사람 간의 맛이 궁금하긴 해.”   

  “내 간을 걸고 맹세하마. 너희를 배불리 먹여줄게.”

  나를 따라나선 길냥이들이 골목을 빠져나가는 동안 간을 먹으러 간다는 소문에 길냥이들이 계속 불어났다. 나는 길냥이들을 이끌고 집으로 가는 동안 고민에 빠졌다. 칠성 나무가 넘어가지만 않았어도 암고양이를 사람으로 만드는 방법을 제대로 들었을 텐데, 답답하기만 했다. 길냥이들을 이끌고 산을 넘고 강을 따라 계속 걷는데 길냥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울었다. 

  “얘들아, 조금만 더 가면 된단다.” 

  길냥이들은 더 이상은 배가 고파서 갈 수가 없다고 울었다.  

  “집에 가기 전엔 먹을 것이 없단다.”

  길냥이들은 하는 수 없이 나를 따라 물이 말라 바닥이 드러난 냇가를 건넜다. 잘라낸 나무가 가득한 공사 현장을 지나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길을 따라 올라갔다. 길냥이들을 이끌고 집에 도착하자 길냥이들의 울음소리에 놀란 엄마가 문을 열었다. 

  “반갑다 얘들아, 어서 우리 집에 있는 쥐를 몽땅 잡아먹으렴.”

  배가 고플 대로 고팠던 길냥이들은 날이 저무는지도 모르도 쥐를 잡아먹었다. 나는 먼 길을 오느라 지친 길냥이들을 창고에 몰아넣고 문을 걸었다. 

  “얘들아 이젠 뒷골목을 돌아다니지 않아도 된단다.”

  길냥이들은 비가 새는 창고에서 서로 달라붙어 추운 줄도 모르고 잠들었다. 서로의 체온 덕분에 창고가 따뜻한 집처럼 변했다. 길냥이들은 자면서 고맙다고 잠꼬대를 했다.


  길냥이들은 집 안과 마당에 살던 쥐를 다 잡아먹었다. 나는 문을 걸고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배가 고픈 길냥이들은 문을 긁으며 맛있는 사료를 달라고 울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엄마가 말했다.

  “저것들이 간땡이가 부었나 봐.”  

  “걱정하지 마. 다 생각이 있어.”

  나는 창문을 반쯤 열고 말했다.

  “얘들아, 뒷산에 올라가면 쥐보다 더 맛있는 것이 아주 많단다.”

  배고픈 길냥이들이 뒷산으로 올라갔다. 그곳엔 앞산을 깎아내리는 공사로 집을 잃은 동물들이 몰려와 배고픔과 추위에 떨고 있었다. 나는 매일 숨어서 길냥이들을 관찰하면서 기록했다. 제일 예쁘고 날쎈 길냥이를 선택하기 위해서였다. 길냥이들은 동물들이 불쌍했지만, 배가 고파서 어쩔 수 없었다. 쥐를 잡던 실력으로 처음엔 다람쥐를 잡아먹었다. 그다음엔 두세 마리씩 짝을 지어 토끼를 잡아먹었다. 이빨과 발톱이 날카로워진 길냥이들은 너구리를 잡아먹었다. 사냥 기술을 터득한 길냥이들은 떼를 지어 다니면서 멧돼지까지 잡아먹었다. 얼마 후엔 산에 살던 동물들이 전부 사라졌다. 

  뒷산에서 내려온 길냥이들은 문 앞으로 몰려와 먹을 것을 달라고 했다. 나는 못 들은 척 커튼을 치고 숨을 죽였다. 창문을 닫고 고기를 굽느라 집안에는 연기가 자욱했다. 엄마가 나에게 고기를 건네며 물었다. 

  “이제 어쩌면 좋으냐?”

  “걱정하지 마. 동물의 세계에선 암놈이 더 크고 강해. 배가 고프니 지기들끼리 잡아먹고 결국 암고양이 한 마리만 남을 거야.”

  나는 고기를 뜯어 먹으면서 엄마에게 암고양이가 여자로 변한다는 칠성 나무의 계시에 대해 말했다. 엄마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데. 암고양이가 사람 간을 먹여야 한다고 했어.”

  “사람 간을 어디서 구하게?”

  “그러니까 그게…….”

  “이놈아. 일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내가 왜 여기 들어와서 고생하는 줄 아느냐? 그게 다 너를 위해서다.”

  “걱정하지 마. 그동안 쥐의 간을 실컷 먹었으니 암고양이 한 마리만 남으면 저절로 여자로 변할지도 모르잖아.”

  “이 녀석아, 세상일이 그리 쉬우면 내가 여태껏 고생하고 살았겠냐.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해.” 

  “그만 좀 해. 나도 다 생각이 있어.” 

  창문을 열고 연기기 밖으로 나가게 부채질 했다. 나는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고 말했다.

  “좀 일찍 오지 그랬어. 다 먹어버렸는데 어쩌지?”

  나는 살점을 발라먹은 뼈다귀를 창밖으로 던졌다.

  “얘들아, 이제 우리 집엔 암고양이 한 마리만 필요하단다.” 

  나는 길냥이들을 둘러보고 창문을 닫으려는데 우두머리 길냥이가 외쳤다. 

  “집안에 커다란 쥐 두 마리가 살고 있다!”

  길냥이들이 모두 발톱을 세우고 문 앞으로 조금씩 다가갔다. 길냥이들의 빨간 눈빛이 어둠 속에서 점점 선명해졌다. 길냥이들은 모두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고 문에 달라붙었다. 문이 순식간에 뜯어졌다. 길냥이들이 집안으로 들이닥쳤다. 집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길냥이들은 날카로운 발톱으로 벽을 계속 긁어댔다. 엄마와 나는 길냥이들의 습격에 놀라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우두머리 고양이가 밖에서 외쳤다.

  “생각나, 네놈이 우리를 배불리 먹여주고 재워주고 간까지 내준다고 했어.” 

  나는 떨려서 아무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제 간을 먹어야겠다.” 

  “엄마, 저것들이 설마 나를 잡아먹진 않겠지?”

  “다 생각이 있다며.”

  길냥이들은 화장실 문을 긁어대다 힘에 부쳤는지 갑자기 조용해졌다. 내가 귀를 틀어막고  벌벌 떨기만 하자 엄마가 묘안을 짜냈다.

  “나는 여기 있을게, 네가 마을에 가서 먹을 것을 구해오겠다고 하고 사람들을 불러와라.”    “알겠어요. 암고양이 한 마리만 남기고 모조리 죽여 버려야겠어요.”  

  나는 화장실 문틈으로 얼굴을 내밀고 길냥이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그러지 말고 잠깐만 기다려. 내가 먹을 것을 구해다 줄게.”

  길냥이들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지금까지 속은 것도 원통한데 또 속을 것 같으냐. 네놈 간부터 먼저 씹어 먹어야겠다.”  

  나는 화장실 문을 닫고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이제 어떡해?”

  “그럼 정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겠구나.”

  엄마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는 엄마의 묘책을 듣고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난 못해. 그러다 저놈들이 진짜로 달려들면?”

  “다른 방법이 없지 않니.”  

  엄마가 등을 떠밀었다. 나는 화장실 문을 열고 무릎 꿇고 앉았다.

  “내가 쥐를 잡으려고 너희를 데려왔어. 엄마는 아무 잘못이 없으니 나를 잡아먹고 엄마를 살려다오.”

  그러자 엄마도 내 옆에 무릎 꿇고 말했다.

  “나는 살 만큼 살았으니 차라리 나를 잡아먹고 아들을 살려다오.”

  길냥이들은 뜻밖의 반응에 패가 갈렸다. 엄마를 인질로 잡고 나를 보내 먹을 것을 구해오도록 하지는 무리와 더는 속지 말고 엄마와 나를 다 잡아먹자는 무리가 팽팽히 맞섰다. 길냥이들은 굶주린 배를 안고 회의를 시작했다.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엄마와 나는 계속 화장실 바닥에 엎드려 빌고 또 빌었다. 잠시 후 우두머리 길냥이가 말했다.

  “좋다. 가서 먹을 것을 구해와. 그런데 자정 전에 돌아오지 않으면 엄마를 잡아먹을 거야.”

  나는 뛰어나가 마을을 돌아다녔으나 아무도 없었다. 이미 사람들은 모두 이주 보상금에 합의하고 떠난 뒤였다. 허물어진 집엔 빈 그릇만 굴러다녔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길냥이들에게 다시 사정하려고 집을 향해 달렸다. 숨이 차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나는 얼마 달리지 못하고 나무 밑에 앉아 생각했다. 잠시 후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일어나 천천히 걸었다. 잘라낸 나무가 가득한 공사 현장을 지나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길을 따라 올라갈 때는 이미 자정이 지나버렸다.

  집에 도착해 뒷담을 넘어 들어가 숨을 죽이고 집안을 살폈다. 발톱을 세운 길냥이들에게 둘러싸인 엄마는 넋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나는 담 밑에 주저앉아 고개를 떨어뜨리고 눈을 감았다. 길냥이들이 서로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악몽이 빨리 끝나길 바랐다. 날이 서서히 밝아 올 때까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아침 햇살이 눈부셨다. 집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용기를 내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길냥이의 털이 공기 중에 떠다니고 있었다. 바닥에는 길냥이들의 사체들이 처참하게 널려 있었다. 살아있는 길냥이는 없었다. 바닥에 발기발기 찢긴 엄마 옷이 보였다.  흥건한 피가 말라붙은 옷을 잡아당기는데 화장실에서 여자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가냘픈 목소리가 나를 부르는 듯했다. 천천히 화장실로 다다가 서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었다. 그곳엔 방금 목욕을 마치고 머리를 빗는 여자가 수건으로 몸을 가리고 있었다. 여자는 혀로 입술을 핥다가 나를 보고 미소 지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자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오오, 칠성 나무신이시여.”

  여자가 일어나는 순간 몸을 가렸던 수건이 미끄러져 내렸다. 여자는 날카로운 손톱을 세워 수건을 잡아보려 했지만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알몸이 드러난 여자는 가슴부터 발끝까지 윤기가 흐르는 털로 뒤덮여 있었다. 여자가 등을 곧추세우고 말했다. 

  “서로 간을 먹겠다고 덤비는 바람에 간이 모자랐어. 네 간이 필요해.”

  나는 몸이 뻣뻣하게 굳어 꼼짝할 수 없었다. 여자가 발톱을 세우고 뛰어오른 순간 정신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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