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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욱 Mar 18. 2022

예술장르의 융합

문학과 미술이 만나는 과정

예술장르의 융합

 

한여름이었다. 냉장고에서 꺼낸 증류소주병 표면에 맺힌 물방울을 만져보았다. 알코올과 물의 끓는점의 차이를 이용하여 만든 고농도 증류소주의 땀 같아서 맛을 봤다. 가슴이 시원해졌다. 바로 병을 따서 원샷하고 말았다. 이번엔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에너지가 솟았다. 서로 다른 온도 차로 인해 발생하는 물의 응결은 진중한 소통 모델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다른 장르의 융합도 응결과 마찬가지다. 문학과 미술이 만나 일상에서 추억하고 충돌하고 어우러지는 융합은 물이 수증기가 되어 날아가고 다시 물로 응결하는 상태와 유사하다. 나에게 융합은 응결하여 더 새롭게 더 깊이 들어가는 작업 방법이다. 융합장르를 모색하면서 정체성을 확립하고 일상의 주체가 되고 싶다. 매일 다른 일상이 모여 삶이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매일 반복되지만 다시 반복되지 않는 일상의 미세한 차이를 포착하여 사유하기 위해 애를 쓴다. 

 

1. 문학과 미술을 융합하는 시도들 


독자에게 낯설게 다가가고 싶어 융합을 모색한다. 디자이너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다 소설가가 되고나니 자연스레 문학에 미술을 더하는 것에 관심이 갔다. 2014년 처음 서초구립반포도서관에서 문학과 미술의 융합 창작워크숍 <발칙한 상상력에 날개를 달자>를 기획해서 진행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짧은 소설과 드로잉으로 풀어내는 과정은 흥미 진지했지만 결과물은 기존 그림책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창작영역에 진입하는 사람들을 위해 프로그램을 단순화하여 2015년 고양시립한뫼도서관에서 <문학 읽고 일러스트그리기>를 2016년 풍동도서관에서 <독후 일러스트>라는 소설을 그림으로 그림을 소설로 재해석하는 창작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사람들과 고민했던 것은 소설에 등장하는 삽화가 조연개념에서 벗어나는 것. 즉 문학과 미술이 동등한 입장으로 융합하여 새로운 미학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문학과 미술의 융합 창작워크숍은 맥이 끊겼다. 한 가지도 잘하기 힘든데 두 가지를 동시에 하려니 어렵다는 것이었다. 잘하려고만 하지 말고 개성 있게 쓰고 개성 있게 그리는 얼핏 보면 자유분방한 못난이를 만들자고 했는데 사람들은 그게 더 어렵다고 했다. 문학과 미술의 융합 창작워크숍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못난이들끼리 만나 서로 깊이를 강요하기로 하고 문학과 미술의 융합 창작집을 기획했다. 


2017년 『핑크몬스터』는 ‘보는 소설 읽는 그림’를 표방한 문학과 미술의 융합 단편소설집이다. 


“누구나 손쉽게 예술과 접할 수 있는 요즘, 근사한 화가의 작품 앞에서 남모를 허탈함을 느껴 본 적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림과 짤막한 제목을 암호 풀이하듯 골똘히 바라보다 짐짓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설 때면 묘한 소외감마저 든다. 가까이 있지만 아직 친해지지 못해 서먹한 친구 같다.『핑크몬스터』는 그런 의미에서 참 반갑고 신선하다. 자신을 ‘미래의 피카소’라 부르는 화가 양경렬의 그림을 소설가 김주욱이 이야기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전문 용어 섞인 딱딱하고 어려운 해설이 아니다. 한 편의 그림과 한 편의 소설이 만나 새로운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서평가 이주현


서양화가 양경렬의 작품에는 인간의 이중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선택에 대한 질문이 강한 이미지로 표출하고 있었고 화면마다 이야기가 물씬 담겨 있어 그를 파트너로 섭외했다. 『핑크몬스터』는 그림을 재해석한 여섯 편의 단편과 한 편의 단편을 그림으로 재해석하여 연출했다.  그림이 글의 보조 수단이 되지 않았고 또, 글이 그림을 구구절절 설명하지도 않는다. 문학과 미술이 각자의 독립성을 그대로 지니는 한편 서로를 반사함으로써 독자에게 한층 깊이 있는 이해와 공감을 시도했다. 




2020년 『그림이 내게 와서 소설이 되었다』는 ‘소설가의 보는 이야기와 화가 열 두 명의 읽는 그림’이다.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한 젊은 화가 열 두 명의 작품세계와 삶을 짧은 소설로 함축하여 재해석하는 작업은 새로운 시도이다. 화가들의 삶과 작품세계를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 직접 작업현장에 찾아가 인터뷰하고 자료를 모아 화가의 삶에서 한 장면을 뽑아내고 작품 세계를 집약하여 허구의 이야기에 버무려 스마트소설로 만들었다. 문학과 미술이 만나 독자들에게 보는 이야기 읽는 그림으로 재미있게 다가가는 두 번째 시도였다. 또한 소설집을 통해 화가의 작품이 홍보 될 수 있도록 작품을 모티브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화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지면을 구성했다.   



『그림이 내게 와서 소설이 되었다』는 연재-출간-기획전까지 이어졌다. 계간 문학나무에 2019년 가을 호부터 2020년 여름 호까지 열 두 명의 화가들을 대상으로 연재했던 스마트소설 내용을 대폭 수정, 보완, 추가하여 단행본으로 출간했고 2020년 10월 9일부터 20일까지 갤러리 아트테인에서 열 두 명의 화가가 참여한 출간기념 기획전을 열었다. 



2. 문학과 미술의 융합 지원사업 프로젝트로 확장했다


마트시대의 독자에게 간결하지만 긴 여운을 주는 융합콘텐츠를 전달하고 싶었다. 독자는 일상을 포착한, 한 장면에 관한 단상을 읽고 공감하고 그것에 대한 드로잉을 보며 상상을 확장하고 그 의미와 현상을 함축한 짧은 이야기를 통해 사유하게 하여 공감을 끌어내고 싶었다. 일상에서 시대성과 의미를 담은 장면을 포착하고 그 장면을 단상으로 문제제기하고 그 다음 드로잉으로 장면과 의미를 시각화한 다음 짧은 이야기로 함축하는 4단계의 프로세스로 연출했다.                     

장편포착

단상 (에세이)

드로잉 (그림)

이야기 (소설)

2020년 은평문화재단 지역문화예술 활성화 지원사업 선정 <우리 동네 숨은 명소 발굴하기>를 기획 진행했다. 은평구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명소를 발굴하여 우리 동네의 매력을 확인했다. 


(은평문화재단/열린공간/자료실/결과자료집)


2021년 서울연구원 「서울 도시인문학」지원사업 공모 창작부문 선정 <마음으로 보는 그림 이야기> 서울의 일상에서 시대성과 의미를 담은 장면을 포착하여 서울의 단면을 낯설게 전달했다.


(2020 서울도시인문학 지원사업 공모전 결과물)



3.미술이 아닌 다른 장르를 넘보았다


202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주간 작가스테이지 선정 <단편소설의 메시지를 춤으로 이야기하다> 단편소설 감상 토크와 더불어 소설을 현대무용으로 재해석하는 융합 퍼포먼스공연. 현대무용가 모지민의 예술세계와 성장과정을 소재로 한 단편 <생선 썩은내가 나지 않는 항구>는 지구와 달사이의 거대한 만유인력이 작용하여 생선비린내가 나지 않는 항구를 은유하여 사람과 사람사이의 ‘아름다운 거리’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스테이지를 통해 문학을 현대무용으로 재해석한 퍼포먼스공연으로 독자에게 신선한 감동을 전달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suCPdS9gW4&t=1531s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주간 작가스테이지 유튜브)

 

책이 안 팔려 문학이 위기라고 한다

 

문학의 발버둥은 전자책, 오디오북 그리고 매체 변화를 시도하는 온라인 플랫폼 정도인 것 같다. 전통파들은 언어예술의 본질을 살려 흔들리지 말고 맥락을 이어가야 할 것이고 나 같은 개혁파는 타 장르와 융합하던지 AI와 결탁하던지 계속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런 범주에서 스마트소설의 부상은 희망적이다. 2020~2021년 황순원 스마트소설 공모전과 이병주 스마트소설 공모전 기획 담당자로 일했다. 최소한의 홍보만 했는데도 일 년 새 응모작이 두 배로 늘었다. 스마트소설은 펜데믹 시대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독자에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삶의 아이러니를 음미할 수 있는 10분의 미학을 바탕으로 새로운 독자층 발굴이 가능하다. 삶의 아주 짧은 순간, 절정을 포착하여 예리한 시선으로 절개하고 이야기의 필연성과 통일성을 부여하기에 요즘 온라인 플랫폼에 아주 잘 맞아 타 장르와의 융합해도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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