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씻으면 어때서!?
지구야, 숨 좀 돌리고 있니?
코로나로 지구가 숨 좀 돌리려나. 집콕 한지도 1년이다. 외출을 하지 않으니, 씻을 일도, 화장할 일도, 옷을 갈아입을 일도 없다. 전에도 난 씻고 멋을 내는데 부지런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심각할 정도다. 아침에 세수도 안한다. 머리도 안감는다. 샤워도 안한다. 이렇게 며칠을 지낸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기절초풍할 노릇이다.
우리집 막내는 이런 나도 좋아한다. 날마다 껴안고 뽀뽀도 한다. 그러나 그 애조차 기절하는 날이 있다. 문제는 막내가 나보다 머리통 하나 더 크다는 것이다.
"아~~~악! 내앰새! 머리 감은 지 얼마나 됐어?"
나는 대답하기 힘들다.
"3,4일? 5일?"
그날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씻는 날이다.
난 이런 내가 싫지 않다. 나처럼 친환경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 나와보라고 해! 자기도취도 유분수다. 그리고 원시인들을 떠올린다. 그에 비해 난 지극히 문명인이다. 시골에서의 어린시절을 떠올려도 여전히 난 문명인이다.
옛날 우리집 울타리 뒤편에는 동네 우물과 목욕탕이 나란히 있었다. 그 목욕탕은 겨울용이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우묵한 큰 통이 있어 애들 서너 명은 족히 들어가고도 남는다. 우리들은 의기투합하여 날을 잡고 불을 때서 목욕물을 데운다. 우리는 그렇게 겨울철 목욕을 했다. 딱 한번!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몸 이곳저곳 까맣게 딱지가 생긴다. 때가 쌓인 흔적이다.
20대 청춘을 돌아봐도 여전히 난 문명인이다. 8,90년대에 걸쳐 10년 동안 서울에서 살았다. 남의 집 문간방을 빌려 전전한 세월이다. 겨울에 집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지금처럼 서울에 아파트가 많지 않았던 때다. 대부분 사람들은 목욕 바구니를 들고 동네 목욕탕에 갔다.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두 번! 불과 3,40년 전 일이다. 그때의 목욕탕이 변신해 지금의 찜질방인 거다.
그런데 지금은? 결혼 후 8년여 일본에서 살다 한국에 돌아와 보니, 한국의 변화는 깜짝 놀랄만한 것이었다. 시골 구석까지 아파트가 생뚱맞게 서있는 게 아닌가. 시골 사람도 원하면 언제라도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00년 전후로 그렇게 되지 않았나 싶다. 물질적 토대가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어간다고 했던가. 이제는 날마다 씻는 것이 문명인의 의식이 되었다. 씻지 않으면 밖에 나가기가 꺼려진단다. 친구에게 날마다 씻지 않는다고 했더니 기겁을 한 적이 있다.
날마다 씻는 문화, 우리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물론 나는 예외지만. 큰 애는 씻지 않고 밖에 나가면 큰 민폐라도 되듯, 새벽에 나가는 날도 1시간 일찍 일어나 꼭 샤워를 했다. 고3 때도 그랬다. 날마다 씻지 않아도 된다. 냄새나지 않는다. 향기롭다. 별 얘기를 다해봤지만, 그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이틀 연속 안씻는 날도 있다.
이런 변화를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누구를 위해 날마다 그렇게 잠을 줄여가며 씻고 화장을 했던고. 누구를 위해 그렇게 에너지와 시간과 마음을 썼던고. 남의 시선 때문에 낭비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거기다 그 많은 사람들의 날마다 씻는 행위가 얼마나 지구를 힘들게 했을까.
다행이다. 코로나 전후 이렇게 변한 것이 우리집 뿐만이랴. 정도 차이는 있어도 외출이 잦아든 만큼, 샤워실의 물소리도 잦아들었으리라. 그동안 우리를 부양하느라 허리가 휘어졌던 지구도 이 참에 허리를 펴고 숨을 돌릴 것을 생각하니, 코로나 시국도 견딜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