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부께, 나연 올림.

그곳에서는 아프지 않고 편히 쉬시길

by 킴나

자주 만나지 않아도 마음이 쓰이는 사람이 있다. 특히나 자주 만나지 못하는 가족이라도 왠지 애정이 가는 사람이 있다. 나는 매우 계산적이고 팍팍한 사람이라서 아마 그건 그들이 나에게 주는 애정과 관심에 비례했던 것 같다. 그리고 큰고모와 고모부는 내게 무조건적인 애정을 주셨던 분들이다.


고모는 내가 큰 사람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셨고, 고모부와는 대화를 나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전해듣는 말들로 그리고 희미하게 띠었던 미소로 나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 고모네 연락을 자주 드리거나 자주 찾아뵌 것은 아니다. 그저 마음 속으로 좋아했을 뿐이다. 루게릭병이라는, 희귀병의 대명사같은 병을 투병하셨던 고모부는 한국 시간으로 어제 저녁 세상을 떠나셨다.



고모부는 내 첫 기억 속에서도 몸이 불편하셨다. 할머니와 함께 미국여행을 하셨다는 사진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내 기억 속에서는 언제나 누워계셨다. 하지만 고모부는 총명하신 분이었다. 10년이 넘는 세월 투병으로 움직이지 못하시면서도 눈꺼풀로, 눈동자의 움직임으로 의사를 표현하셨고 상태가 아주 악화되기 이전에는 희귀병 지원, 복지에 대한 라디오 사연을 보내신 적도 있다. 고모부의 침대를 둘러싸고 가족들이 이야기를 나눌 때면 당신은 괜찮으니 마루에서 앉아 이야기를 하라고 말하시던, 눈동자로 말을 전하시던 분이다.


그리고 고모부는 좋은 분이셨다. 기도에 삽관을 하고 호스로 영양분을 주입받아야 했지만 후각은 살아있었기에 고모부는 집에서 나는 모든 음식 냄새를 맡으실 수 있었고, 고모는 매번 음식 준비에서 너무 냄새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셨다고 했다. 음식 냄새를 맡을 수는 있지만 먹지 못함은 무척 고통스러울 것이기에. 매번 조심하다가 한 번 깜빡하고 문을 닫지 않은 적이 있었는데, 고모부는 고모에게 더이상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냄새를 맡지 못하신다고. 차마 묻지 못하셨으리라. 냄새가 나는지, 나지 않는지. 이야기를 듣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


긴 기간 이어져온 투병은 주위 사람을 지치게하기 마련이지만 큰고모는 누워계신 고모부에게 많이 의존하시는 것 같다고, 엄마가 말해준 적이 있다. 간병인과의 크고 작은 마찰, 생활의 제약 따위는 부차적이었을 뿐이다. 고모부의 상황이 많이 나빠지셔서 이번 주에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연락을 제대로 보지 않아서 고모부가 돌아가신지 3시간 뒤 수업 중에 부고 소식을 전해들었다. 눈물이 주륵주륵 흘렀다. 누가 보고 이상하게 생각할까 잠깐 안경을 벗고 몇 차례 눈물을 닦은 뒤 나는 수업으로 돌아갔고 모든 일상을 일정대로 소화했다. 우산을 준비하지 못해 비를 맞으며 뛰었으며 음악도 듣고 요리도 하고, 웃고 떠들었다. 어쩜 세상은 이렇게 똑같은지, 삶은 얼마나 허무한지 잠시 생각했지만 잠깐 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그냥 평소처럼 잠들고 싶지 않았다. 고모부의 부고 소식은 내가 들었던 어떤 부고보다도 더 뜨겁게 다가왔다. 왜인지는 모른다. 그리 자주 본 것도, 함께한 추억이 많지도 않은데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너무 가슴이 아프다. 코끝이 시리고 눈이 저릿하다. 나는 그래서 이렇게 보잘것 없는 글로 고모부를 추억한다. 창을 켜두고 한참을 썼다 지우고 울기를 반복하다 이렇게 조금씩 고모부를 그린다.


나는 모태신앙을 버렸으며 사후세계에 대해 의문을 품은 사람이지만 오늘만큼은 죽음 뒤의 세상이 존재하기를 그리고 지금보다 훨씬 찬란하기를 소망한다. 꾸준히 교회에 다니셨으니 좋은 곳에 가셨을거라 믿는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답답한 삶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셨기를 기도한다.


한국에 있었다면 나도 장례식장에 가서 마지막 인사를 전했을텐데. 사실 장례식장에 가는 것도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이미 그 사람은 떠나고 없는데 왜 모여서 인사를 한답시고 빈소에 가는걸까. 참 오만한 생각이었지. 미처 인사를 전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곳에서 사진에 대고 고인에게 마지막 예의를 다하고 할 말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일텐데 말이다. 직접 전하지 못하는 말을 여기 남긴다. 고모부께 나의 마음이 닿기를 바라면서.




고모부께.
바보같이 저는 고모부의 성함도 알지 못하네요. 타국에 있어서 빈소에도 가지 못하는 못난 조카를 용서해주시길 바라요. 저와 고모부는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어본 적이 없지만 저는 고모부를 항상 대단한 분이라 생각해왔어요. 긴 시간 큰고모와 언니들에게 원동력이 되어주셨으니까요. 가끔 제 안부를 궁금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세상에서 오랜 시간 고생 많으셨어요. 건강하셨을 때를 기억할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걸.. 그렇죠? 언니들을 보면 알 수 있어요. 고모부는 분명 좋은 분이셨겠구나. 고모부가 계신 그 곳은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이길 빌어요. 그 곳에서 평안하시길. 감사했습니다. 편히 쉬세요.

2017년 11월 쌀쌀한 겨울의 입구 암스테르담에서
나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