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꼭 써 보고 싶었던 부모님을 위한 글]
어릴 때 나는, 우리 집 안에 숨겨진 비밀 금고가 있는 줄만 알았다. 그래서 내가 깊은 잠에 드는 밤이 오면 어머니 혹은 아버지가 서로 번갈아 가며, 한 사람은 내가 잘 자고 있는지 망을 보고 다른 한 사람은 비밀 금고를 다녀오는 줄만 알았다. 그래서 모른 체 해 줘야지 하는 황당한 독백을 하곤 했다. 이제 와서는 부끄럽지만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허구한 날 어머니는 돈 없으니 아껴 쓰라는 잔소리가 심하셨지만 어느 순간 내가 용돈을 다 쓰면 새 용돈을 주셨고, 매달 영어, 피아노 등 다양한 학원을 다닐 수 있게 하셨고, 또 어느 순간 그 당시 아무나 갈 수 없었던 미국에도 유학 생활을 이어가게 하셨고, 다녀와서는 입시 학원비가 다달이 계산되어 있었기에 우리 집에 비밀 금고가 존재한다는 나의 의심은 확신이 되어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어느새 군대를 전역하고 부모님의 둥지를 벗어나 나의 사회를 꾸려가기 시작한 지금,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집에 숨겨진 비밀 금고 따위는 존재하지 않다는 것. 금고의 정체는 사실 은행이었다. 그리고 나의 유학, 대학 등록금, 자취방 보증금과 같은 큰 비용은 부모님의 연애시절부터 모아 두었던 목돈으로 충당했던 것이었다. 나는 알고 있다. 부모님에게 그 목돈은 단순한 돈이 아닌 것을. 그들이 젊었을 적의 꿈, 그리고 그 꿈을 위해 건강과 젊음, 시련과 고난 그리고 주름살들을 포기하고 받아내며 힘들게 교환한 실물가치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철없던 나는 그 고귀한 가치를 존재하지도 않는 비밀 금고 따위로 가볍게 치부하며 원래 나의 것인 양 꿀꺽꿀꺽 삼켰다.
존재하지도, 보이지도 않는 비밀 금고를 만들었던 어린 나의 심리는 아마 불안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부족함 하나 없이 자랐음에도 엄마, 아빠처럼 살기 싫다고 투정 부리던 어린 나를 되돌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행복한데, 더 행복하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의 행복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싶었을 것이고 어머니 아버지의 나를 위한 노력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서 내가 갚을 빛 또한 없기를 바랐던, 철없는 아이의 이기주의였던 것이다. 키가 커졌다고, 눈높이가 높아졌다고 많은 것을 보는 것은 아닌가 보다. 나는 지성인이되어서도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을 부정한 철없는 아이였던 것이다.
나는 무엇일까. 부모님의 꿈을 반찬 삼아 먹으며 성장한 지금의 나는 무엇일까. 부모님이 젊었을 적의 꿈은 내가 아니었을 것이다. 먼 미래를 생각하며 사실 만큼 계획적이시지 않다. 은퇴 후의 행복한 미래, 더 행복할 수 있었던 청춘, 덜 힘들어도 되었을 사회생활과 가장으로서의 책임…… 아마 이 중 하나 아니면 전부일 것이다. 매력적인 저 가치들을 포기하고 지금의 나의 모습을 보며 흡족해하는, 부모님의 모습에서 나는 알 수 있었다. 우리 집의 숨겨진 비밀 금고는 ‘나’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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