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외할머니의 시 한편.
인생 한 토막
손정순
구십세에 펜을 든이
청춘은 어데 가고
꼬부랑 할미꽃만 되었구나
언제가 청춘은 오는고
슬프다 인생 한 토막
가소롭다 가는 인생
오랜만에 외할머니 집을 방문했다.
초등학교 시절, 방학 때면 어김없이 개구리 잡으면서 놀던 그곳이다.
변함없는 그곳에는
이제 인생이 얼마 남지 않은 누가 봐도 늙고 늙은 할머니 한분이 계신다.
90 인생을 사셔서 정말 살만큼 사셨던 분인데도 그리워하는 게 시에 역력히 드러난다.
그것은 분명히 젊음에 대한 마음.
아니, 마음은 늙지 않기에 자신은 청춘이라고 여기지만
몸은 이미 녹슬 데로 녹슬었고 이제는 마지막 남은 인생을 겨우 버티는 정도로 지탱하고 있는 몸뚱이에 환멸을 느끼신 것일까.
자신을 꼬부랑 할미꽃으로 표현하셨다.
분명 마음만큼은 어느 젊은이 못지않은 청춘이실 텐데 말이다.
가는 세월을 막을 수 없는 인생의 한계 앞에서
90을 사신 외할머니는
한마디로 인생을 이렇게 정의하셨다.
슬프다 인생 한 토막
자식들 대부분이 엄청난 성공은 아닐지라도,
나름대로의 중산층의 삶을 영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슬프다고 표현한 외할머니의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자식들이 잘 살아가는 건 외할머니에게 분명 좋은 일이지만,
그건 자식이지 자신의 인생이 아니라는 깨달음이었을까?
결국 인생은 혼자이고
죽음 앞에선 인생은 스스로가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깨달으신 걸까?
살아보지 않아서 뭐라고 말할 순 없지만,
분명 90 인생을 살아보니 기쁜 날 보다 슬픈 날이 많았음을 간접적으로 보게 된다.
우리 인생에 슬픔이 많다는 사실이 그렇게 슬픈 일은 아니라는 깨달음도 얻게 된다.
살아보니,
인생은 슬픈 일이 많더라.
그러니,
지금 좀 슬프더라도 그게 그렇게 슬픈 일은 아닐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