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시 코르차크의 아이들
막내딸 아이가 손에 시커먼 뭔가를 듬뿍 쥐고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 나에게 웃으면서 다가왔다.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가끔 인형놀이를 하면서 머리카락을 자르고 옷도 자르기도 했었는데..(그래 이런 행동도 어른이 보기엔 이상하다.)
인형놀이로 자른 머리카락으로 보기엔 양도 너무 많고 색깔도 우리 머리카락이랑 비슷하다.
순간 스쳐 지나가는 감정은 두 가지.
"아 다행이다. 그래도 다치지 않았구나!"
"야~~~~~! 머리카락을 자르면 어떡해!!!!!"
좋은 감정보다는 화난 감정이 이기는 경우가 9:1이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겨서 범죄의 현장인 안방에 들어선 광경
둘째 딸이 아마 이 놀이를 주도했을 것이고,
셋째 딸은 그 놀이에 즐겁게 동참했을 것이다.
이 놀이의 최대 피해자는 아빠.
정말 순식간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사고가 나지 않았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 침착하게 딸아이들의 행동을 피드백해주는 부모들이 얼마나 있을까? 나 역시 대부분의 부모들처럼 소리를 지르는 걸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야누시 코르차크의 아이들이란 책에 아이들이 실수하고 잘못한 일에 대한 좋은 글이 있다.
"잘못했어요"란 말을 들으려 하는 대신 어른의 따뜻함을 보여주세요.
한 아이가 무언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예를 들어 유리창을 깨뜨렸다고 해봅시다. 아이는 이미 잘못했다고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른이 야단을 치면 아이는 야단맞을 만한 이유가 있으면서도 뉘우치는 대신 대들거나 성난 표정을 지어 보이곤 합니다. 사실 아이한테는, 죄책감을 느낄 때가 어른의 따뜻함이 가장 간절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깨진 유리는 아이들 관점에서 보면 실패한 시도일 뿐입니다. 비록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것을 시도한 것일 수는 있지만요. 우리는 이때 깨진 유리뿐 아니라 실패해서 속상하고 화난 그 마음까지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야누시 코르차크의 아이들 <양철북, Page 25>
깨진 유리가 아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실패한 시도일 뿐이라는 이야기.
아이들은 의도적으로 나쁜 일을 하는 경우가 거의 드물다.
대부분 새로운 시도를 하고, 이 세상의 재미난 것들을 몸소 배우기 위한 행동들이 대부분이다.
우리 딸아이들의 행동도 충분히 그런 행동이었을 것이다.
이모가 헤어디자이너라서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머리를 자르거나 하는 일은 우리에게 좀 더 친숙하다.
아마 이모를 흉내 내고 싶었을까?
그러기에는 너무 과감한 행동이었기는 했다.
아마도 아빠의 화난 소리 지름에 우리 딸들은 처절하게 실패한 시도로 이 사건을 종료시켜야 하지 않았을까?
아이들이 놀면서 유리창을 깨는 정도의 강도 높고 위험한 놀이였지만,
이미 사건이 종료된 뒤에 이어진 나의 행동이 꼭 소리를 지르는 행위로 마무리를 했어야 했을까?
야누시 코르차크의 글이 내 마음을 울린다.
깨진 유리는 아이들 관점에서 보면 실패한 시도일 뿐입니다. 비록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것을 시도한 것일 수는 있지만요. 우리는 이때 깨진 유리뿐 아니라 실패해서 속상하고 화난 그 마음까지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