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현실은 식은 커피와 어질러진 식탁
주말에 호텔을 갈 순 없지만, 호텔 조식과 같은 분위기의 아침을 먹으면 행복감이 밀려온다.
호텔 조식을 흉내 낼 수 있는 아침 메뉴는 팬케익이나 토스트, 반숙의 계란과 커피 한잔이 있으면 거의 완벽하다.
아이 셋을 데리고도 이러한 아침메뉴는 가능한데 역시 수고가 많이 따른다.
수고하지 않고 대체할 수 있는 메뉴를 찾아보니 서브웨이가 있었다.
서브웨이 창업가인 프레드 두루카는 집안이 가난하여 17살 나이에 학비를 벌기 위해서 이 샌드위치 가게를 시작했다. 다른 패스트푸드와 달리 상대적으로 살이 덜 찌면서 건강에 유익한 샌드위치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개인적으로 패스트푸드를 좋아하지 않는데, 서브웨이만큼은 패스트푸드 같지 않은 패스트푸드여서 내 마음에 쏙 든다.
빵과 모든 메뉴들을 직접 선택할 수 있고, 그 선택되는 과정을 내 눈앞에서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 패스트푸드 같이 않은 매력을 준다.
그런데, 이 매력은 식구가 많아지고 선택이 다양해지면 오히려 독이 되는 사실을 오늘 아침에서야 깨달았다.
선택해야 하는 빵의 종류가 많아지고,
속에 들어가는 다양한 야채들, 소스들.
그리고 그 선택들을 정확히 전달받아서 주문해야 하는 주문자의 당황스러움.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주문대 앞에서 당황스러움을 애써 감춰야 하는 순간이었다.
기대했던 멋진 토요일 아침의 조식의 분위기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아르바이트생도 초보인듯하여 우리는 서로 당황스러운 순간들을 애써 모면하면서 겨우 주문을 끝냈다.
그래 내가 원했던 주문이 아니라
어찌어찌 주문을 끝낸 것이었다.
이미 아쉬워하기에는 너무 준비되지 못한 나였다.
그렇게 조금 속상한 마음을 가졌지만 아이들이 기뻐할 모습을 기대하면서 어렵게 주문한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아침 식탁에 내려놓았다.
아내와 나를 위한 커피도 한잔 내리고
이제 호텔 조식과 같은 분위기 있는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면서 우리의 토요일 아침은 시작되었다.
기대하면서 샌드위치를 입에 넣으려는 순간,
둘째가 맵다면서 불편함을 호소한다.
분명히 아르바이트생한테 매운 거 빼 달라고 했는데..
아이들을 위해서 주문한 샌드위치에 매운 할라피뇨가 들어간 것이다.
너무 많이 주문한 게 죄일까?
다시금 마음을 추슬러야 한다.
셋째도 매워하고 첫째도 매워한다.
어쩔 수 없지만 할라피뇨를 다시 다 제거한다.
그래 이제 분위기 있게 다시 토요일 아침을 즐길 수 있다.
입에 다시 샌드위치를 한입 머금으려는 순간,
셋째에게 주어진 샌드위치가 다 흐트러졌다.
그래 아무래도 너에게 이 샌드위치는 무리인 것 같다.
그래서 조금 먹기 좋게 잘라줬다.
그랬더니 둘째도, 첫째도 그렇게 해달란다.
그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고 나니 기분이 급격히 다운된다.
나의 분위기 있었던 토요일 아침 조식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일단 내가 먹을 샌드위치는 다시 식탁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셋째부터 챙겨준다.
첫째에겐 괜히 괘씸하다.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인데 샌드위치도 스스로 못 먹다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식탐이 가득한 내 욕망에 또 속이 상한다.
그렇게 욕망을 거슬러 아이들을 다 챙겨줬다.
이제 드디어 분위기 있게 토요일 아침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아..
근데 가장 중요한 커피가 식어버렸다.
이런.
결국
식은 커피와
어질러진 식탁 위에서
그래도 이렇게 먹을 수 있는 게 어디냐면서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주말 아침 분위기 있는 호텔 조식 같은 느낌을 기대했지만,
내 앞에 닥쳐진 건 어질러진 식탁과 식은 커피, 그리고 그 뒷정리를 해야 하는 의무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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