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살인 16. (효라빠 장편소설)
담당 근무자가 징벌방에는 특별한 경우 아니면 볼펜이나 편지지가 들어가지 않으니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최태식이 바로 따지기 시작했다.
"부장님 왜 안됩니까?"
"본인은 자해를 해서 징벌 집행 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넣어 줄 수 없습니다."
"내가 법원과 검찰청에 소송서류를 작성하는 것도 안됩니까? 이건 수용자의 인권 탄압 아닙니까? 법에 그렇게 나와 있습니까?"
최태식이 소송서류를 작성해야 하는데 못하게 한다며 인권 탄압을 운운하며 직원에게 압박을 가했다.
이주형의 연가로 대신 근무 들어온 직원은 입장이 난처해졌다. 최태식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소송서류 작성을 위해서는 필기구와 종이를 넣어주게 되어 있었다.
"그럼 본인의 볼펜은 안되고 관에서 지급하는 것으로 넣어 주겠습니다."
"그건 왜 그럽니까?"
"자해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 알았으니까 알아서 하시고 빨리 볼펜이나 넣어 주세요"
최태식이 짜증 나는 투로 담당 근무자에게 소리를 질렀다.
근무자는 최태식이 어떤 수용자인지 알기 때문에 싸우기 싫었다.
'교도관 새끼들은 꼭 성질을 내야 말을 들어주고만, 한 두 번도 아니고 이러니까 내가 자해를 하지. 아 씨발 짜증 나'
분이 덜 풀렸는지 주먹으로 벽을 치며 혼잣말을 했다.
근무자의 지시를 받은 사동도우미가 볼펜과 양면지를 가져다주었다. 마루 바닥에 엎드린 최태식이 종이에 무언가 적기 시작했다. 그의 표정에는 비굴한 웃음이 가득 차 있었다.
며칠의 시간이 지났다. 김대현의 사망사건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가족들이 대현의 죽음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가족들에게도 짐이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사고만 치고 다녔고 성인이 되서도 조직생활을 하면서 빈 둥 거리며 살아갔었다. 거기서 끝났으면 다행이었다. 연로하신 부모님에게 돈이 필요하다고 폭력을 행사할 정도로 안하무인이었다. 외부담당 근무자는 김대현의 죽음에 오히려 가족들이 안도하는 눈빛이었다는 말도 했다.
교도소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치고 쉽게 해결되는 이유였다.
성균의 사무실로 최태식이 있는 사동 담당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형은 연가 중이라 아직 출근하지 않고 있었다.
[김 주임님. 지금 통화가능하세요?]
[네. 말씀하세요]
[저~ 김대현 사망과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가족들과 원만하게 합의가 됐다고 들었는데요? ]
[김대현 가족들과의 문제가 아니라서요.]
[가족들과의 문제가 아니라니 무슨 말씀이세요?]
[최태식 있잖습니까. 이 사동에 있는 장기수.]
[네. 알고 있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최태식을 모를 수가 없죠]
[최태식이 검찰과 인권위, 신문사에 고발장과 탄원서를 제출한다고 저한테 보고문과 함께 제출했습니다]
[탄원서요? 무슨 탄원서요?]
[전화로 말씀드리기 그러니까 사무실에 들러 보여드리겠습니다. 내용이 아주 가관입니다.]
[알겠습니다.]
대직 근무를 들어온 3동 하층 담당이 기동순찰팀 사무실을 찾아왔다.
"주임님 여기 고발장과 탄원서입니다. 내용은 같습니다. 하나만 읽어 보셔도 될 겁니다."
"네."
성균은 담당근무자가 전해주는 봉투를 받아 들었다. 수신인이 대검찰청으로 되어 있었다.
[존경하는 검찰총장님께. 불의를 저지른 교도관을 고발하여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합니다.
저는 목안 교도소에 수용 중인 1004번 최태식 수용자입니다.
제가 검찰총장님께 이렇게 고발장을 제출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20##년 ##월 ##일 피해자인 김대현과 같은 방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대현이 소란을 피우자 담당 근무자가 지원 요청을 해 기동순찰팀이 출동했습니다.
기동순찰팀이 도착하자 김대현은 흥분을 가라앉혔습니다. 하지만 김성균 주임을 포함한 4명의 대원들은 막무가내로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군화를 신고 있고 손에는 삼단봉과 방패, 가스총까지 들려 있었습니다. 동료 수용자 김대현이 위압적인 모습에 놀라 잘못했다고 말했어도 막무가내로 그들은 그를 넘어트렸습니다. 그러더니 무자비하게 발로 밟고 주먹으로 구타하기 시작했습니다. 폭력에 김대현은 비명을 지르며 봐달라고 빌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김대현의 정신이 가물가물 해질 때까지 폭행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기에 불쌍할 정도였습니다. 폭행에 못 이겨 정신을 잃자 양팔을 꺾어 수갑을 채웠습니다. 김대현은 천정을 향해 누워있고 김성균주임은 군홧발로 가슴을 짓이겼습니다. 헐떡 거리는 숨소리가 매우 크게 들렸습니다. 제가 봤을 땐 폭행으로 호흡을 못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곤 목에 사슬이 걸린 개가 끌려가듯 질질 끌려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뒤로 방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른 방으로 전방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우연히 사동 도우미들 대화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같은 방의 동료 수용자였던 김대현이 사망했다는 말이었습니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정리가 됐는지 모르겠지만 김대현은 김성균을 포함한 4명의 교도관들의 폭행에 의해 사망한 것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고발장을 제출하는 이유는 불의를 저지른 교도관들에게 법의 심판을 받게 하고자 함입니다.
법 앞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범죄자들을 관리하는 교도관은 더욱더 법적 공정함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들이 교도소에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죄짓고 들어온 수용자도 같은 사람이고 그들도 인권이 있습니다.
교도관들의 폭력에 사망한 동료 수용자의 진실이 밝혀져 망자의 명예가 회복되고, 아울러 수용자의 인권이 존중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이 편지를 검찰, 인권위원회, 신문사에 제보할 것입니다.
만약 검찰에서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같은 법무부 소속이라 제 식구 감싸기라고 판단하고 신문사에 적극적으로 제보할 것입니다.
검찰총장님께서 불의에 대항해 정의를 바로 세워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편지 봉투에는 빨간색으로 [고발장 제중]이라고 쓰여 있었다.
속에든 양면지에 손글씨로 또박또박 써진 글을 읽은 성균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와~ 내가 욕을 안 하려고 했는데 이 새끼는 사람 새끼가 아니다. 자신이 어떤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들어와 있는지 아는 사람이 '불의' 운운하며 이런 글을 쓸 수 있나!'
대직 근무자 앞에서 혼잣말을 하는 성균의 얼굴은 어이가 없어 말도 안 나온다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옆에 앉아있는 후배가 물었다.
"선배님. 무슨 내용인데 그러세요?"
"인욱아.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뭐가요?"
"1004번 최태식 알지?"
"네."
"그 자식이 검찰청에 나를 고발한다고 고발장을 썼는데 내용이 아주 가관이다. 정말 어이가 없다."
"무슨 내용인데요?"
"나와 우리 팀원들을 고발한데 김대현을 살해했다고. 그것도 그거지만 불의 운운하며 쓴 내용이 정말 당황스럽다. 자신은 초등학생을 감금과 강간해서 교도소에 들어와 죗값을 치르고 있으면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게."
"읽어봐도 될까요?"
"그래."
성균이 후배에게 종이를 건넸며 대직 근무자에게 말했다.
"부장님 최태식이 이걸 검찰에 보낼 거면 봉인을 해서 바로 보냈을 텐데, 입구를 풀로 붙이지도 않고 겉봉투에는 [고발장 제중]이라고 빨간색으로 써 논거 보면 뭔가 이상 하지 않나요?"
"그렇죠? 저도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 같아요."
그도 성균의 말에 동의했다.
"우리에게 일부러 이걸 보라고 하는 거 같은데요. 혹시 서신을 주면서 무슨 말은 없었습니까?"
"특별한 말은 없었습니다."
"우리한테 무슨 요구사항이 있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봉인도 하지 않고 이렇게 하지 않죠. 분명히 차후에 말을 할 거 같습니다."
"네."
대직 근무자도 성균의 말이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음 주면 이주형 부장이 출근하죠?"
"네. 다음 주에 출근합니다."
"그럼 이주형 부장과 함께 처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서신은 제가 가지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교대시간이 끝나서 사동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혹시 최태식이 무슨 말을 하거나, 요구사항이 있다고 하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성균은 대직근무자와 말을 마치고 의자에 앉았다. 역시 인간쓰레기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다음 주 화요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