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살인 21. (효라빠 장편소설)
주형은 도형을 간신히 집으로 데리고 왔다. 현관문을 열고 깜짝 놀랐다. 오랜만에 와본 형의 집은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니었다. 은혜와 같이 살 때 형수님이 없어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포근했던 집은 온통 쓰레기 투성이에 바닥에는 빈 술병만 나뒹굴었다. 싱크대에는 먹고 남은 배달음식들이 쌓여있고, 냉장고에는 몇 개 안 되는 반찬들이 썩어가고 있었다. 형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형! 형 마음은 이해되지만 이렇게 살면 안 돼"
"......"
주형이 답답하다는 듯 도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소파에 앉아 천장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던 도형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내 말 들려?"
"말해"
"형이 힘든 줄 아는데 이제 정신 좀 차리자"
"미친 새끼"
도형의 입에서 순간 욕이 튀어나왔다.
"흥분하지 말고."
"너는 이해할 줄 알았는데, 너도 내 마음을 모르는구나."
"그런 말이 아니야. 형을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나를 생각한다고?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데?"
소파에 기대어 멍하게 천장만 올려보고 있던 도형이 몸을 돌려 주형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언제 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 형이 한번 둘러봐. 이게 사람 사는 집이야?"
주형도 형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데? 그전처럼 깔끔하게 정리해 놓고 우리 은혜가 죽은 게 아무 일 아니었다는 듯 살아가면 잘 사는 거니? 그게 맞는 거야?"
도형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형! 내 말 뜻은 그게 아니라 정상적인 생활은 해야 되지 않겠냐는 거야. 이렇게 막 산다고 하늘에 있는 은혜가 잘한다고 할거 같아? 내가 만약 은혜라면 아빠가 이렇게 사는 걸 바라지 않을 거야"
"미친 소리 하지 마. 그건 네가 내 입장이 아니라서 그러는 거야. 지금 범인도 잡지 못하고 몇 달이 흘렀는데 아무 일 없었던 사람처럼 살 수 있겠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나는 그렇게 못하니까. 나는 더 이상 살아야 할 의미가 없다. 엉엉엉"
흥분해서 말을 이어가던 도형이 눈물을 터트렸다. 주형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형이 형수님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가 은혜 때문이었기에 도형의 말에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깊은 한 숨만 쉴 뿐이었다.
'아! 아! 이 개새끼 죽여 버릴 거야. 우리 은혜 이렇게 만든 새끼 내가 죽여 버릴 거야!'
미친 듯이 울던 도형이 욕을 하며 비명을 질렀다. 꽉 쥔 주먹으로 미친 듯이 소파를 두드렸다. 매퀘한 먼지 냄새가 났다. 주변에 있는 것은 잡히는 대로 집어던졌다. 리모컨, 쿠션, 굴러다니던 광고지들이 거실 이곳저곳으로 날아갔다. 소파에서 몸이 굴러 떨어지자 거실 바닥을 정신없이 때렸다.
'하느님, 제발 가르쳐 주세요. 당신은 다 알고 있잖아요. 우리 은혜를 이렇게 만든 놈이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제발 부탁합니다. 제발! 제발! 죽이지 않을 거면 내 앞에라도 나타나게 해 주세요. 제가 복수하겠습니다. 하느님 제발!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다. 은혜엄마를 데려가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왜 우리 은혜까지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당신은 신이니까 알 수 있을 거 아닙니까? 그 이유라도 말해주세요. 엉엉엉'
도형의 온몸이 뒤틀리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과 핏줄이 터져 버린 두 눈은 미친사람처럼 보였다. 눈물과 콧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주형은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몰랐다.
형의 미친듯한 처절한 통곡을 올곳이 들을 수밖에 없었다. 멍하니 서서 눈물만 삼키고 있었다. 그렇게 신이라도 원망하는 게 형의 가슴속 한이 조금이라도 사라질 거 같았다. 계속 소리를 지르던 도형은 제 풀에 지쳤는지 은혜만 외치며 거실 바닥에 널부러 졌다.
"주형아! 주형아!"
"응. 말해"
"나 이제 어떻게 사니? 어떻게 살면 좋겠니? 제발 가르쳐 주라. 흑흑흑"
도형이 흐느끼며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주형이 바닥에 누워있는 도형의 얼굴을 감싸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주형도 도형을 안고 흐느낄 뿐이었다.
"미안해 형. 내가 도와줄 게 없네. 진짜 미안해. 아까 형사님이 그러는데 수사팀을 더 늘려서 검거하려고 노력하고 있데. 그러니 금방 잡힐 거야. 조금만 기다려보자."
"그런다고 무슨 소용이 있는데? 우리 은혜가 그렇게 비참하게 가버렸는데"
"......"
주형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도형을 더 앉았다. 은혜가 그렇게 돼버리고 수없이 들은 말이지만 항상 대답을 하지 못했다. 시간은 어느덧 저녁이 되어있었다.
"주형아 이제 집에 가봐. 가서 애들도 챙기고 해야지. 너도 언제까지 내 옆에서 있을 수 있겠냐. 술좀 깬 거 같으니까 가봐. 미안하다 형이 이런 못난 모습만 보여서"
정신을 차린 도형이 주형에게 힘없이 말했다.
"내가 국밥이라도 한 그릇 포장해 올게 잠깐 기다리고 있어."
마냥 있을 수 없었던 주형이 저녁이라도 먹이고 가려고 말했다.
"아니야. 괜찮아. 배달시켜서 먹을게. 빨리 가서 제수씨랑 애들하고 저녁 먹어. 나는 알아서 할게. 밥생각도 없고 일단 한숨 자야겠어."
"그래? 그럼 자고 일어나서 꼭 뭐라도 시켜 먹어. 내일 출근도 해야 하잖아."
"알았어. 빨리 가봐"
형을 혼자 두고 가는 게 마음 놓이지 않았지만 집에 가서 해야 할 일이 있어 어쩔 수 없었다.
주형은 야근을 끝내고 하루종일 시달려서 인지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입맛이 없었지만 와이프 성화에 못 이겨 할 수 없이 저녁을 먹고 자리에 누웠다. 멍한 정신에 이게 꿈인지 현실이 구분이 되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다. 깊은 잠에 빠져들어 영원히 깨어나지 않았으면 싶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너무 피곤해 바로 잠이 들지 않아 고통스럽게 버티다 가까스로 잠이 들었는데 핸드폰 벨이 울렸다.
'아~ 이 씨~'
짜증 나는 듯 입에서 거친 말이 나오며 스마트 폰을 집어 들었다. 발신자에는 목안경찰서 박호경장이었다. 시간을 보니 밤 11시가 돼 가고 있었다. 이 시간에 경찰에서 전화가 올리가 없는데, 통화 버튼을 누르는 짧은 순간에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목안경찰서 박호경장입니다]
[네. 형사님. 그런데 이 시간에 무슨 일이세요?]
[...... 저]
박호가 말을 바로 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말하세요]
잠을 못 자 피곤한 주형은 짜증이 올라왔다.
[그게.....]
[말하라니까요. 늦은 시간에 전화해서 뭐 하시는 거예요?]
예민해 있던 주형이 박호에게 소리를 질렀다.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혀... 형... 형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주형이 아무 말이 없었다. 머리가 멍해졌다.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뭐라고요? 다시 말해 보세요]
[형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형이 죽었다고요?]
[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요? 낮에 형이랑 계속 같이 있었는데, 형사님도 봤잖아요. 형이 소란 피워서 경찰서에서 데리고 온 것을]
주형이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
[그게. 형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살고 계시던 아파트 뒤편 나무에 목을 걸고 자살했습니다. 지나가던 주민이 경찰에 신고해 신원 확인했습니다.]
[......]
주형의 다리 힘이 풀렸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여보. 형이 자살했데..."
24시간 넘게 잠도 못 자 멍한 상태로 정신이 없던 주형이 가냘프게 그의 부인에게 말을 했다.
"뭐라고요?"
옆에 누워있던 아내가 자세히 듣지 못했는지 다시 물었다.
"형이 죽었데..."
그의 입에서는 똑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