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살인 23. (효라빠 장편 소설)
성균이 돌아가고 주형은 혼자 남았다. 네모난 담당실이 교도소 안의 감옥같이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와이프와 아이들이 이제는 어깨를 누르고 있었다. 교도관이라는 힘든 일을 가족 때문에 버티며 해왔지만 지금은 짊어지고 가야 할 멍에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사는 게 쉽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모든 게 재밌고 즐거웠는데 세상을 살아가면서 점점 웃을 일도 없어지고 괴로운 일만 생겼다. 자신이 버터야만 가족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상 쉽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았다. 어둡고 복잡한 동굴 속을 헤매고 있는 기분이었다.
'딩동~ 딩동~ 딩동~'
담당실의 인터폰이 울렸다. 교도소의 미지정 사동은 주형에게 잠깐의 여유도 주지 않았다. 힘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10번 방 인터폰 눌렀어요?]
[네. 부장님. 1800번 곽태성입니다. 죄송한데 잠깐 면담 좀 할 수 있을까요?]
[알았어. 나와]
출소 후 다시 들어와 징역을 살고 있는 곽태성이었다. 처음 징역형을 받아 수용생활을 할 때의 안타까움은 이제 느껴지지 않았다. 다음에 하자고 말하려다 입버릇처럼 나오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거기 앉아. 무슨 일인데 그래?"
플라스틱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다름 아니라 부장님에게 부탁 좀 드리고 싶어서 그러는데요"
"무슨 부탁?"
평상시의 따뜻한 목소리의 말투가 아니었다.
"저는 지금까지 부모님이 돌아가신 줄 알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보육원에서 자라면서 저를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고 부모님의 존재도 모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교도소에 들어오기 전 보육원에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저의 엄마라는 사람이 절 찾는다구요. 엄마가 살아계신다는 거에 놀랐지만, 저를 버렸다는 생각이 들어 만나기를 거부했습니다. 엄마 때문에 제 인생이 망가진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없었다면 저도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지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교도소에 들어와 보니 제가 잘못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모든 잘못은 제가 저질러 놓고 남 탓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자 엄마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고 보고 싶었습니다."
곽태성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잘못을 반성이라도 하듯 머리 숙여 말했다.
"그... 그래? 엄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곽태성이 떨리는 목소리로 엄마가 그립다고 하자 주형의 마음이 흔들렸다.
"네. 보육원에서 자랄 때 부모님이 찾아오는 애들은 더러 있었는데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보모님 모두 돌아가신 줄 알았습니다. 이제는 왜 보육원에 맡겼는지 이유도 들어보고 싶고 아버지의 존재도 물어보고 싶습니다."
"음... 하~"
둘만 있는 담당실에 주형의 깊은 호흡이 끊기자 고요해졌다. 뭔지 모르는 긴장감이 돌았다.
"내가 뭘 해줬으면 좋겠냐?"
적막을 깨트리며 주형이 말했다.
"엄마에게 제가 여기 있다고 연락 좀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
주형이 말이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주형은 형의 복수를 다짐하듯 김성균 주임과 말을 나눴다.
"부장님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곽태성이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알았으니까. 방에 들어가 있어."
"네. 알겠습니다. 무리한 부탁을 드려 죄송합니다."
무리한 부탁은 아니었다. 고충처리팀을 통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소송에 관련된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해결해 줘야 할 문제도 아니었다. 해주고 말고는 담당 근무자의 재량에 속하는 부분이었다. 순간 가슴속에서 짜증이 밀려왔다. 형과 은혜의 복수를 다심했는데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곽태성의 사연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자신이 싫었다.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 못하는 성격이라 마음의 상처도 많이 받았는데 어른이 돼서도 이렇게 살고 있는 자신이 바보 같았다.
'나는 왜 이럴까. 왜 마음이 독하지 못할까. 미쳐버리겠다. 그냥 안된다고 말 한마디만 하면 될 거를 왜 이렇게 약해 빠졌을까...'
주형이 혼잣말을 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 짜증 나. 짜증 나 미쳐 버리겠네.'
냉정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분을 풀지 못하고 있는데 복도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수십 명의 수용자들이 있는 사동의 담당실에 앉아 있으면 감방의 작은 소리도 예민하게 들렸다. 자기들끼리 싸우는 건 아닌가, 규율위반 행위를 저지르는 건 아닌가, 동료수용자를 폭행하거나 괴롭히는 건 아닌가 하고 신경이 그쪽으로 쏠렸다. 그렇다 보니 담당 근무자는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었다.
손끝하나 움직이기 싫었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무거운 몸을 일으켜 복도로 나갔다. 복도 끝에 검은색 제복을 입은 직원이 소리치는 게 보였다. 가까이 가니 기동순찰팀 김성균 주임이었다.
"방이 왜 이렇게 지저분합니까? 처방받은 약도 기간이 지났으면 반납해야지 왜 보관하고 있어요?"
성균이 최태식의 방문을 열고 하나하나 지적하고 있었다.
"주임님! 방은 내가 정리하려고 했고, 약은 먹으려다 깜빡한 거 아닙니까? 왜 사사건건 트집을 잡습니까?"
"수용자들이 규율에 맞춰 생활하도록 지시하는 게 내 일이라 그럽니다. 내가 하는 말이 듣기 싫었으면 교도소에 들어오지 말았어야지. 뭘 잘했다고 큰소리예요?"
"아니. 다른 직원들은 별말 안 하는데 주임님은 왜 모든 일에 잔소리입니까? 아씨 짜증 나네"
최태식이 성균의 지시에 꼬박꼬박 토를 달며 말했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문제 유발자에 자해 전문인 최태식과 역이기 싫어 사소한 것은 참견하지 않는 것을 이유 들어 성균의 말을 반박하고 있었다.
최태식이 자해를 해 몸에 장애가 생기고, 내부적으로는 징벌을 먹으면서 까지 규율 위반을 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었다. 문제수가 되면 일반 직원들이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하는 식으로 경미한 규율위반 같은 건 지적하지 않았다. 위에서도 적당히 봐주면서 사고 안 치고 조용히 살게 하는 게 수용 관리 잘하고 있다고 용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성균은 그렇지 못했다. 작은 규율 위반 행위가 쌓여 교도소 전체의 질서를 훼손한다고 믿었다. 그런 근무 방식이 훨씬 힘들었지만 자신의 스타일을 바꿀 순 없었다. 그건 업무 태만이고 자신의 초심을 잃는 거라 여겼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최태식 씨 교도소 왜 들어왔어요?"
"뭐라고요?"
"교도소 왜 들어왔냐고! 당신 독립운동하다 들어왔어? 아니면 시험 봐서 들어왔어? 아니잖아. 범죄 저질러 들어왔잖아. 그랬으면 규율 잘 지키고 생활해야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참나.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요? 또 징벌먹이게? 알아서 하세요. 내가 참고 있는지. 또 한 번 해봅시다."
최태식도 지지 않고 대들었다.
"또 한 번 해보자면 내가 쫄지 아나? 그래 한번 해보자"
성균도 같이 소리를 질렀다. 둘의 말싸움 소리가 사동에 울려 퍼졌다. 금방이라도 큰일이 벌어질 거 같았다.
"악~ 악~ 그만. 그만하라고!!!"
성균의 뒤에서 귀가 터질듯한 고함소리가 들렸다.
"언제까지 둘이 이렇게 싸울 거예요. 여기는 내 사동이니까 제발 그만 좀 하라고!"
주형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부르르 떨면서 외쳤다.
성균과 최태식은 주형의 화난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순하기만 하던 그가 그처럼 고함을 지르는 건 처음이었다.
"어... 그... 그래. 알았어. 네 사동인데 미안하다."
성균이 주형에게 사과했다.
"최태식 씨 빨리 방 정리 하세요"
"흠. 알았습니다."
주형의 흥분된 모습에 최태식도 아무 말 없이 성균의 말을 따랐다.
"가자, 가. 담당실로 들어가자"
성균이 씩씩거리는 주형의 어깨를 감싸며 몸을 돌려세웠다. 주형이 어떤 상태인지 알기에 자신 때문에 더 힘들어진 게 아닌가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주형은 터벅터벅 담당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성균은 주형에게 사과하고 그를 진정시켰다. 흥분을 가라앉히자 성균은 다른 사동으로 순찰을 가고 담당실에는 또 주형만 혼자 남았다.
'젠장, 엄마 보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 마음이 흔들리고, 이렇게 나약해 빠져서 복수는 어떻게 하냐...'
주형은 영혼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 버린 사람처럼 멍하니 앞만 주시하며 중얼거렸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