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피아에 싣지 않은 조각글 1. 비효율적 노동에 관해

우리는 왜 ‘가짜 노동’을 하고 있는가?

by 김숲이

<뱀다리>


예전 서랍을 정리하다보니 비공개글로 해둔 것이 눈에 띄어 작은 글을 되살려보았습니다.


<인스피아>를 읽어보신 분이 계신다면 아시겠지만, 저는 보통 본문 하단에 <참고문헌>란을 따로 두어 본문에서 다룬 책에 대해 짤막한 글을 썼었습니다. 책에 대한 소개인 경우도 있었지만 대체로 본문에서도 각주에서도 못다한 이야기를 쓸데없이(?) 늘어놓는 해찰의 연장선 같은 느낌이었죠. 글자는 본문 글자가 18포인트라면 10포인트 정도로 매우 깨알같이 작았습니다. 그래서 너무 길게 쓸 경우엔 독자의 눈을 괴롭힐 우려가 있었기에 적당한 분량으로 끊곤 했죠.


22.png 인스피아의 참고문헌란


그러던 차에 과거 '가짜노동'에 대한 회차(아마도?) (편지 링크: https://stibee.com/api/v1.0/emails/share/o8AVImv4ad_WymKDQztCy_sZCbqWwyo)를 쓸 때 너무 찐텐이 들어가는 바람에 참고문헌 아래에 10포인트짜리 깨알글씨로 아래 이어지는 분량의 글을 붙였었고, 당시 초고를 봐주던 동기가 "미치셨습니까 휴먼? 당장 삭제하세요"라고 말하는 바람에 통으로 날렸던 글입니다.


아마 해당 레터를 썼던 시기가 2024년쯤, 즉 <일에 마음 없는 일>(2025)의 원고에 막 착수하기 시작했던 시기였을텐데 다시 곰곰 읽다보니 <일에 마음 없는 일>에 들어갔어야 할 저의 공분이 응축된 느낌이기도 하네요. (여기서 '들어갔어야 할'이라는 표현이 붙은 이유는, 실은 그 책을 쓸 때 언론계에 대한 이야기는 의도적으로 최대한 뺐기 때문입니다. 출판사의 요청은 아니고 제가 스스로 그렇게 했습니다.)


실은 이 주제로 다음 에세이 회차를 쓰려고 했었는데, 정작 에세이 회차를 쓰려고 앉으니 다른 재밌는 소재거리가 떠올라서 이 이야기는 결국 서랍에 들어가있었습니다.


그래도 새삼 꺼내본 이유는 제가 최근 비슷한 생각 속에서 맴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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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뺐던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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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이지만, 위의 블라블라는 일단 집어 치우고라도, 저는 분명 처음 서가에서 이 책을 순전히 제목을 보고 집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오늘 레터 각주 2)에서 인용한 대목은 꼭 '불쉿 잡'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어느 업계에서든 비슷한 고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디어업계 종사자이므로 일단 언론 쪽에 국한해서 말해보자면, 기레기라는 말이 많지만 실은 제가 보아온 주변의 대부분의 개별 기자들은 정말 의욕도 능력도 뛰어나고 ‘진짜 기사’를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런 기사는 대체로 돈이 되지 않고 '진짜 기사'를 쓰기 위한 시간을 내긴 어려우며, 이때 돈이 되는 기사(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은 개별 노동자에게 '불쉿 잡'으로 여겨지기 쉽습니다. 그리고 제게 있어 인스피아를 쓰는 일은 '진짜 노동'에 가까웠기 때문에 - 또한 저희 회사와 팀 분위기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고 그간 팀장들이 저를 전적으로 믿어주셨기에(저는 이 부분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1인 매체인데 단지 그립감을 가져가겠다는 이유로, 윗선을 위한 사전 아이템 보고-허가, 보고서, 데스킹, 너무 많은 회의, 최종보고 등의 '가짜 노동'이 틈틈이 많았다면 절대로 저는 이런 이상한 주제에 공력은 엄청 많이 들어가는 레터를 2년이나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만약 어떤 노동자가 가짜 노동을 전체 업무 10시간 가운데 틈틈이 총 2시간 해야 한다면, 그건 절대로 ‘2시간 낭비’가 아닙니다. 몰입은 흩어지고, 한번 방해받을 때마다 나의 일은 별 의미가 없고 언제든지 사소한 일로 침해받을 수 있구나...하는 절망감을 누적적으로 쌓는 경험입니다. 그러다 어쩌면 10시간 전체가 가짜 노동이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때문에 만약에 혁신이라는 단어를 10년 째 표지에 적힌 숫자만 바뀌는 <혁신 보고서>에만 써놀 생각이 아니라면 언론사 내부에도 ‘비교적’ 자유롭고 비효율적인 작은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오래 전부터 그렇게 믿어왔습니다. 적어도 표면상으로라도, ‘글’을 쓰는 회산데요!)


- 대체로 전력으로 몰입하여 즐겁게 일해왔습니다만, 만약 효율성이라든지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면 이런 레터를 기획하진 못했(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점에서 '진짜 효율적인 일만 세시간 하고 싹 쉬자'라고 하는 진보(일각)의 주장에도 꽤 회의적인 편입니다. 완전히 프레임에 갇힌 것처럼 보입니다. 애초에 어떤 게 효율적이고 어떤 게 비효율적인 걸까요? 10%도 이해하지 못할 절판된 낡은 책에 잽을 날리다가 두통에 시달리고, 결국 절망에 휩싸여 도서관 걸어가는 길에 코를 파고 싶어하다가 다음 회차 주제를 떠올리고, 산책 중인 강아지를 잔뜩 쓰다듬어주고, 마감 후 회사에서 김밥을 먹으며 다른팀 선배가 출연한 동영상을 보며 진심을 담은 피드백을 하다가(=놀리다가) 책상 위에 어수선하게 놓여있던 1998년에 나온 두꺼운 여성 잡지(IMF 이후 ‘요즘 젊은이들’의 이기적 연애 풍경)를 읽어보는 건 '효율적인' 일일까요? 기자는 비효율적인 책 대신 최신 보도자료와 2024트렌드분석(프리미엄,비쌈,혹은 비싸게 팔 수 있음), 정부 보고서만 보면 될까요? 일터에선 ‘수익 창출’에만 효율적으로 집중하고(즉 위의 저런 일들은 다 일터에선 완전 금지고) 이런 딴 짓들은 그냥 ‘아무런 저항이 없는 유토피아 같은 느낌이 드는, 여가 바구니’에 담으면 된다고요? 글쎄요...


제 작업은 원래도 비효율적이지만, 이번 회차를 쓰는 과정은 그야말로 비효율의 극치였습니다. 같은 책은 네번이나 읽었고, 본문에 메인으로 쓰지도 않은 이 책을 통독하는데 거의 삼일 밤을 '허비'해버렸고 이에 대한 서평도 아닌 이상한 글(?)을 이렇게까지 비효율적으로 길게 쓰고 있습니다.


<<이 끄적임을 적당히 세련되게 개인적인 생각을 좀 많이 ‘쳐내고’ 세이브 원고로 만들어서 3월 마지막주 에세이로 실어보내면 ‘딱’일텐데 말이죠. 하지만 그때가 되면 이미 지금 이 레터를 마감한 때의 텐션을 이끌어갈 수 없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저는 레터를 마감하고난 감정을 여기에 좀 길게 써두기로 했습니다. >>


여튼 제가 몸 담고 있는 업계 관련해서도 할 말이 너무 많은데 당근을 너무 세게 흔들다가 당근 혹은 본체가 날아가버릴 수 있기 때문에, 다음 기회를 기약하고 쓸데없이 자아가 비대해진 재미 적은 주절거림은 이쯤에서 접어두도록 합니다.(이쯤되면 '이 책'에 대한 이야기에서 너무 멀어진 것 같지만...솔직히 이런 얘기야말로 이 책을 읽은 저의 '독후감' 그 자체긴 합니다. 이번 회차는 정말로 저의 고민을 해찰하는 과정 그 자체였습니다. 아무래도 아래에 소개할 이번 신간을 쓰는 과정에서도 새삼스럽게 인스피아를 시작할 무렵의 저의 고민들을 계속 꺼내어 되새김질해보곤 하다보니 관련해서 이런저런 생각이 계속 튀어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어 당연히 이건 미디어 업계라든지 저만의 문제라고 볼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보니 예전에 도서관에서 게임업계의 사행성과 관련된 책(링크)을 꽤 흥미롭게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게임업계의 경우도 '진짜 게임'을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더라도 결국은 대강 유행하는 남의 것들을 (법적으로 아슬아슬하게 안 걸릴 수준으로) 도둑질에 가깝게 훔쳐다가 휘휘 섞어 도박성 요소만 많이 넣은 가짜 게임(?)이 '수익성'은 압도적으로 좋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회사에서 누군가의 ‘인생 게임’이 될만한 정말로 좋은 게임을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은 자신이 '불쉿 잡'에 종사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 연구자님이 어떤 업계에 계시든, 연구자님이 몸담은 곳에 대입해서 한번 생각해보셔도 좋겠습니다 - 여하튼 그러고보면 결과적으로 - 어쩌면 불쉿 잡은 특정 직업 자체에 귀속된 속성이라기보다는, 어떤 일에서든 무리하게 수익(not 효용)을 추구하는 과정, 효율의 틀로 잴 수 없는 것을 애써 숫자에 욱여넣는 데서 불거지는 불합리/왜곡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서 어떻게든 지속가능하게 줄을 타는 것까지도 자본주의 시대를 건너는 ‘콘텐츠 공급자(혹은 a.k.a 인적 자원)’의 역할일 것이긴 합니다만.


여하튼 이건 정말로 제가 써놓고도 역대급 뱀발이네요!


솔직히 이 글은 여러번 통째로 지웠다 붙였다 했지만, 제가 관련해 비슷한 고민을 오래 겪었고 그 시무룩함과 우울감, 답답함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혹시나 조금이라도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그런 분들께 먼지만큼이라도 위안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에 과감하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런 뱀발을 남겨둡니다. 우리는 너무나 슬플 정도로, 대부분의 경우 이런 시도들을 북돋기보다는 흰 눈으로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나는 가짜 노동을 참는데, 너 혼자 뭐가 잘났다고? 저는 그렇게 튕겨져 나간 사람들이 간혹 외로움에 영영 이상하게 변해버리기도 하는 것은 비단 그 사람의 탓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만약 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애초에 이런 수상한 뉴스레터의 수상한 부분까지 읽고 계신 분들을 향해서라면 꼭 조심스러운 가정형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만) 딱 한 마디만 응원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고민들을 하시면서도 (가끔은 좀 묘한 포즈로) 자신의 자리에서 멋지게 버티고 계신 것 자체가, 이미 정말 너무 잘 하고 계시는 것이라고요. 여러분 각자의 자리에서의 고민과 버텨냄을 멀리서나마 존경하고 진심으로 지지하는 사람이 반드시 한 명쯤은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만도 각박한 세월일지라도 -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만 더 재미나고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수상하고 비효율적인 일을 궁리하는 ‘바보같은 고집’이 꺾이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말은 제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맛없는 유행어를 쓰는 건 별로 안좋아하는 편이지만, 꺾인 채로 그냥 가도 되죠 뭐. 그런 작당을 부려놓을 만한 의지와 비좁은 ‘자기코너’, 그리고 재미만 있으면요.


이제 전 오랜만에 맥주 한 캔 따러 가야겠습니다. (참고로 첫 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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