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글쓰기로, 돌돌글

무당벌레를 위한 225mm는 없다

by 소유

다시 글쓰기를 결심하고 선택한 것은 새로운 작업실도, 새 노트북도 아닌 글쓰기 모임이였다.

그렇게 모임에 데이고도 정신을 못 차렸는지.

‘나 같은 베짱이는 혼자 쓰라면 절대 꾸준히 못쓰지’ 하며 찾은 게 모임이라는 배수진이다. 나는 메타 인지가 높은 베짱이니 말이다.

모임에 슬쩍 한 발 담그고 그 누구와도 사적인 이야기 없이 숙제의 루틴만 찾고 나면, 가볍게 두 발을 빼겠다고 무거운 모종의 결심을 했다.




동네 인근에서 찾은 모임은 3년 전에 운영이 끝났고, 자주 가는 동네에서 하는 모임은 참석 조건이 너무 까다롭다. 그래도 마음먹으면 자주 갈 수 있는 동네에서 하는 모임은 주말이거나 내가 절대 불가능한 시간이며, 나랑 안 어울리는 젊은 동네에서 하는 모임은 시간대도 주제도 괜찮았으나 이미 인원 모집이 끝났다. 마침 의욕이 올랐을 때 탄력 못 받으면 또 지지부진해질 것이 뻔하다. 종종대는 마음으로 마지막 모임 “씀 에세이”에 혹시 대기는 가능하냐 질척거려 겨우 막차에 올라탔다.


막상 모임을 시작해보니 예상치 못한 난관이 있었다. 몇 년간 글과 사유를 끊은 나에게 2주에 1개의 글도 나름 큰 각오였는데 모임 공지에는 없었던 다른 글쓰기가 주 1회 추가되는 모임이였다.

그 이름은 ‘미니씀’

미니라고는 하지만 사람 마음이, 특히 주절대고 싶은 베짱이 마음으로는 쓰다보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살을 붙여 금새 ‘맥시씀’해진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미니씀의 주제는 정규 모임을 하고 글쓰기 뽕이 꽉 차오른 다음 날 불시에 공지되고, 그때부터 나는 뽕잎을 먹은 누에고치처럼 얼기설기 글을 짜본다.





< 미니씀, 신발장에서

각자의 신발장에 신발이 있을 겁니다. 어떤 신발을 신고, 어떤 기대가 신발에 씌워져 있으며, 신발을 고르는 기준, 신발이 내게 가져다준 것들, 선물 받은 신발, 나의 신발 브랜드 등, 당신의 신발을 적어주세요. >




엇비슷한 주제로 패션에 대한 미니씀을 적을 때 나는 내 사이즈에 대한 회환과 맞는 옷 고르기에 대한 노고를 담았다. 최근 확정 고도 비만인이 되어버린 나는 유럽 기준 44 사이즈만 입어야 하는 신체 88 사이즈 뚱땡이 라인의 슬픔이었다.

근데 내 신발 사이즈는 뭐였더라. 신발장을 털어보니

36.5부터 40까지 참으로 다양한 사이즈가 분포되어있다. 내 사이즈는 표준범위가 없이 들쑥날쑥하고, 특징이 없는 게 바로 특징이다.


발 사이즈를 쟤는 방법의 정석으로 사이즈를 재어 본 적이 있다. 발을 A4 용지에 대어 그리고, 그 그림 상 발의 세로 길이를 쟀을 때 내 정식 사이즈는 225mm이다.

길이 기준 35.5 혹은 36 사이즈.

하지만 여기서 나의 발 모양과 발 등 높이는 사이즈의 편차를 넓힌다.

살이 찔 대로 쪄서 눈에 딱 보일 정도로 비만이 되면 눈에 안 보이는 살도 당연히 쪄있다. 내장지방은 물론 귀와 코에도 살이 찌고, 발 등과 복숭아뼈 아래의 살도 두툼해진다.



그래서 옷만큼 신발도 최적의 구매가 힘들다.

가죽으로 자부심이 있는 브랜드, 에르메스의 켈리로퍼나 로얄로퍼를 꼭 사고 싶었는데 발 볼이 유난히 좁게 나오고 가죽이 짱짱해 사이즈가 영 나오지를 않았다. 신데렐라 언니처럼 발뒤꿈치를 잘라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쩔 수 없이 같은 디자인의 뒤가 뚫린 오즈뮬을 샀고 심지어 그 뮬도 겨우 37을 받아왔다.

역시 에르메스의 스테디, 이거 한 켤레 없는 아줌마는 없을 정도로 유명한 여름 슬리퍼 오란은 가죽이 유연해 그래도 도전해 봄 직했다. 오란은 그나마 38.5가 발에 쏙 들어갔으나 그 사이즈에 맞추느라 원치 않는 색을 샀다.


이번 시즌 시작 전에는 발 모양이 더 넉넉한 디자인의 여름 슬리퍼 시프레를 사려고 했다. 예상과 다르게 그건 오히려 오란보다 더 빳빳한 가죽과 아웃솔을 쓰고 있어 40을 신어 봐도 발의 발가락조차 들어가지 않았다.

담당자는 자기가 나보다 더 속상해하며 고심하다 같은 라인의 남성용 디자인으로 41사이즈를 가져왔는데 그것도 들어가지 않아 사지 못했다.


신었다 벗었다 난리를 치는 동안 핏기를 잃은 내 두툼한 네모 발이 참 가련했다. 물론 생김새는 가련함보다 투박스러움에 더 가까우나 제 주인을 찾지 못해 머쓱한 모습이 안쓰럽고 서글프다.




“살 빠지면 발 사이즈도 줄어드나요?”


네이버에는 나 같은 뚱돼지들의 질문이 꽤 있다.

지식인들의 답은 반반이다. “당연하죠. 살 빠지면 반지 사이즈도 바뀌고 신발 사이즈도 바껴요.”라는 희망의 인이 있는가 하면 “성장기에는 가능한데 성인은 불가능해요. 이미 살이 찌면서 모양도 변하고 겉 가죽?은 남아있어서 사이즈는 같아요.”라는 절망의 인도 있다.

누구의 말도 일리는 있어 내가 인간지표가 되어 직접 경험해봐야 알 것 같다.

다이어트가 제발 가능해야 성공해야 실험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텐데..


안 그래도 지난달에 신발장 번호 **번에 운동화 회원님 거 맞냐고 PT샵에서 연락이 왔다. 앞으로 안 올거면 신발장 비우겠다는 무언의 압박으로 들렸다. (아마 맞을 것이다.) “5월부터는 진짜 운동갈 수 있어요!”라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5월이 되자마자 거짓말처럼 무릎이 시리고 아파서 아직도 못 가고 있다.

위고비를 처방받으려고 간 병원에서는 위고비 말고 먹는 약부터 먹어보라고 회유했고, 막상 처방받은 약은 위고비보다는 저렴해서 대충 놔뒀더니 차에서 잃어버려 먹지를 못하고 있다. 식욕 억제제보다 치매 예방약이 먼저인 지경이다.





너 살 빼겠다며, 이게 살 빼겠다는 사람의 태도냐.

아냐 난 사람도 아냐, 벌레야.

베짱이고 누에일 뿐이야.

장수풍뎅이처럼 퉁퉁하게 개똥벌레처럼 외롭게 살래.

신발로 어떤 비단 글을 뽑아낼까 고심하다 결국 다이어트 호소 인의 굴욕의 타협으로 누추한 삼베 한 짝을 짜낸다.

와중에 ‘그래도 계속 쓰는 게 어디야’라는 자기 암시 같은 칭찬을 한 가닥 실처럼 끼워 넣어 본다.

내 비록 벌레지만 화려한 무당벌레처럼 때깔 좋게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으로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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