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싶은 것만 보는 우리

by Raphael

"원하는 결론을 위해 증거를 조사할 때, 우리는 '이걸 믿을 수 있을까?'라고 자문합니다. 하지만 입맛에 맞지 않는 결론에 대해서는 '이걸 믿어야 할까?'라고 자문합니다." 심리학자 Thomas Gilovich의 이 문장은 확증 편향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습니다. 행동과학에서 배운 가장 불편한 진실 중 하나는 우리가 생각보다 훨씬 더 편향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똑똑할수록 그 편향이 더 교묘해진다는 것입니다.

듣고 싶은 말만 듣는 팀장

마케팅팀장 현우는 새로운 브랜드 전략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는 "젊은 층을 타겟으로 한 SNS 중심 마케팅"이 정답이라고 확신합니다. 팀 회의에서 이 방향을 발표하자 팀원들의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팀원 A가 말했습니다. "팀장님, 최근 조사에서 우리 핵심 고객층이 40대 이상이라는 결과가 나왔는데요. SNS보다는 전통 매체가 더 효과적일 수 있지 않을까요?" 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지만, 속으로는 이미 반박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조사는 샘플 크기가 작았어. 그리고 트렌드는 변하고 있으니까."

팀원 B가 말했습니다. "저는 팀장님 의견에 동의해요. 경쟁사도 SNS에 집중하고 있고, 미래를 생각하면 젊은 층 공략이 맞는 것 같아요." 현우의 눈이 반짝였습니다. "맞아요. 좋은 포인트예요. 경쟁사 사례를 더 조사해볼까요?"

회의가 끝난 후, 현우는 팀원 B에게 경쟁사 SNS 마케팅 성공 사례를 조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팀원 A가 제시한 고객층 데이터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보자"며 넘어갔습니다. 한 달 후, 현우의 책상에는 SNS 마케팅 성공 사례 보고서가 쌓여 있었지만, 실패 사례나 전통 매체의 효과에 대한 자료는 없었습니다.

이것이 선택적 노출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의견을 지지하는 정보에 끌리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의식적으로 외면합니다. 한 고전 연구에서 흡연자들은 흡연과 폐암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메시지가 포함된 녹음에서 노이즈를 제거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듣고 싶은 말을 더 열심히 듣는 것입니다.

현우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정보를 무시한 게 아닙니다. 다만 그의 뇌가 자동으로 필터링을 한 것입니다.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좋은 포인트"로,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나중에 다시 보자"로 분류했습니다.

6개월 후, SNS 캠페인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젊은 층의 반응은 좋았지만, 정작 구매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핵심 고객층인 40대 이상은 캠페인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현우는 뒤늦게 팀원 A의 데이터를 다시 꺼내봤습니다. 처음부터 이 데이터를 진지하게 검토했다면 결과가 달랐을 것입니다.

반대 의견이 오히려 확신을 강화할 때

전략기획팀의 수진은 신규 사업 진출에 대해 강한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동남아 시장 진출이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팀 내 토론에서 동료 민호가 반대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민호는 데이터를 보여줬습니다. "수진 씨, 이 분석을 보세요. 동남아 시장에 진출한 우리 업계 기업 10곳 중 7곳이 3년 내 철수했어요. 성공 확률이 30%밖에 안 돼요." 수진은 데이터를 훑어봤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반박 논리가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그 기업들은 준비가 부족했던 거예요. 우리는 다르죠. 그리고 실패한 기업들의 공통점을 보면 현지화가 부족했는데, 우리는 현지 파트너가 있잖아요." 수진은 오히려 더 확신에 차서 말했습니다. 민호의 반대 의견이 그녀의 입장을 강화시킨 것입니다.

이것이 동기화된 추론입니다. 1970년대 연구에서 사형 제도에 대해 찬성하는 학생과 반대하는 학생들에게 상반된 연구 결과를 보여줬습니다. 놀랍게도 양쪽 모두 자신의 기존 입장을 더 강하게 지지하게 되었습니다. 찬성파는 찬성 연구를 더 신뢰하고 반대 연구의 방법론을 비판했고, 반대파는 정반대로 반응했습니다.

수진에게도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민호의 데이터는 객관적으로 우려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진의 뇌는 그 데이터를 "믿어야 할까?"라는 프레임으로 처리했습니다. 반면 동남아 성공 사례는 "믿을 수 있을까?"라는 훨씬 관대한 프레임으로 처리했습니다. 같은 수준의 증거인데 다른 기준을 적용한 것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이 과정에서 수진이 자신의 논리력을 총동원했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똑똑합니다. MBA 출신에 분석력이 뛰어납니다. 하지만 그 능력이 민호의 주장을 반박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대신, 기존 신념을 방어하는 데 지능이 동원된 것입니다.

숫자도 믿고 싶은 대로 본다

재무팀장 재훈은 두 가지 투자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투자안 A는 그가 처음 제안한 것이고, 투자안 B는 다른 팀에서 제안한 것입니다. 둘 다 데이터가 있습니다.

투자안 A의 예상 ROI는 15%이고, 투자안 B의 예상 ROI는 18%입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B가 더 나아 보입니다. 하지만 재훈은 다르게 해석했습니다. "B의 18%는 너무 낙관적인 가정에 기반하고 있어요. 현실적으로 조정하면 12% 정도일 거예요. 반면 A의 15%는 보수적으로 계산한 거라 실제로는 더 높을 수 있어요."

재훈의 해석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가정을 다르게 하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가 A에는 관대한 가정을, B에는 엄격한 가정을 적용했다는 것입니다.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은 것입니다.

덴마크에서 233명의 지방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이 현상을 잘 보여줍니다. 공립학교를 지지하는 정치인과 사립학교를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성과 데이터를 보여줬습니다. 공립학교 지지자들은 공립학교 성과가 높다는 데이터를 92%의 정확도로 해석했지만, 사립학교 성과가 높다는 데이터는 56%만 정확하게 해석했습니다. 숫자를 보는 능력 자체가 신념에 의해 왜곡된 것입니다.

재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숫자를 못 읽는 게 아닙니다. 다만 자신이 제안한 A에 대해서는 "이 숫자를 믿을 수 있을까?"라고 물었고, 다른 팀의 B에 대해서는 "이 숫자를 믿어야 할까?"라고 물었습니다. 질문이 다르면 답도 달라집니다.

똑똑할수록 더 위험하다

가장 불편한 진실은 지능이 높을수록 확증 편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더 취약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똑똑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신념을 방어하는 논리를 더 잘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컨설팅 회사의 파트너 지은은 업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복잡한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하고, 설득력 있는 논리를 구축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팀원들은 알고 있습니다. 지은이 한번 방향을 정하면, 그 방향을 바꾸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한 프로젝트에서 팀원이 지은의 분석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지은은 10분 만에 그 지적을 반박하는 논리를 세웠습니다. 팀원의 지적이 틀렸다는 것을 데이터로 증명했습니다. 하지만 프로젝트가 끝난 후 돌아보니, 팀원의 지적이 맞았습니다. 지은은 자신의 지능을 사용해 틀린 결론을 방어한 것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지능이 높은 사람들은 반대 의견을 더 잘 인지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수용하는 대신, 더 정교하게 반박합니다. 그들의 뇌는 "이 반론을 어떻게 무력화할까?"라는 질문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합니다. 지능이 높을수록 자기기만의 도구가 더 날카로워지는 것입니다.

거울을 보는 용기

확증 편향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인간 뇌의 기본 작동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인식하고 관리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현우는 실패 후 새로운 습관을 만들었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 의도적으로 반대 의견을 찾습니다. "내 결론이 틀렸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그 답을 찾는 데 시간을 투자합니다. 불편하지만, 필요한 과정입니다.

수진은 "악마의 대변인" 역할을 팀에 도입했습니다. 중요한 회의에서 누군가는 반드시 반대 입장을 대변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 과정이 더 나은 결정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팀 문화가 되었습니다.

재훈은 "같은 기준 적용하기" 원칙을 세웠습니다. 두 가지 옵션을 비교할 때, 똑같은 가정과 똑같은 기준으로 평가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옵션에 관대하고 싶은 유혹이 있을 때, 그것을 인식하고 저항합니다.

지은은 가장 어려운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자신의 지능을 신뢰하되, 그것이 편향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쉽게 반박할 수 있다면, 혹시 내가 듣고 싶은 결론을 위해 논리를 만들어낸 건 아닐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이 겸손의 시작입니다.

확증 편향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의 일부입니다. 그것을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인식하고, 질문하고, 의도적으로 반대편을 탐색하는 것. 그것이 편향된 존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믿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하지만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보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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