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기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비난, 비판, 비평.
이걸 좋아하게 된 건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보기에서 시작된 걸까? 문득 ‘그냥 바라보기’는 안되는 걸까? 안 되는 건지 못된 건지.
어느 날 친구와의 대화에서 친구의 말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친절한 말투로 포장한 채 반박하는 내용을 뱉는 나를 발견했다. 물론 친구가 비난적인 이야기를 하였지만, 그냥 들을 수도 있던 것을 비판적으로 대응해야 했나?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면 깔끔한 것인데 말이다.
이건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非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말하길, “한자 부수의 하나. ‘靠’, ‘靡’ 따위에 쓰인 ‘非’를 이른다.”라고 한다.
靠는 기댈고로 기대다라는 의미이며, 靡는 쓰러질 미, 갈마라고 한다.
기댈고는 뜻을 나타내는 아닐비(非 어긋나다, 아니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告(고)가 합해진 것이라 한다. 아닐비와 고할고가 합해져 나온 것이 기댄다라는 의미라니, 고하지 아니한다해서 기댄다일까.
쓰러질 미, 갈마는 뜻을 나타내는 아닐비(非 어긋나다, 아니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麻(마)가 합(合)하여 이루어지는 글자다. 쓰러지고, 갈아내고, 흩어진다 등 여러 의미를 가진 한자인데 부정적인 의미를 갖긴 하지만 요즘에서 보면 흩어진다 정도는 낭만을 가진 것 같지 않나 생각한다.
아무튼 단어 파헤치기는 여기까지 하고, 비(非)를 살펴보게 된 계기는 모두가 ‘아닌 것’에만 초점을 두고 생각하지 않나?라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어릴 적 비판적으로 생각하기, 비판적으로 관찰하기를 배우고 대학에서는 비판적으로 글쓰기를 배웠다. 물론 비판적 사고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회구성원으로서 필수덕목이다. 만천하에 퍼져있는 거짓뉴스와 허위광고들, 심지어 이제는 AI까지 살펴보고, 의심하는 것이 일상이다. 이렇게 세상을 바라보지 않으면 도태되거나 속기 십상이니까.
하지만 아쉬운 건 이것이 미디어 매체를 통한 것만이 아니라 사람 간의 대화 자체에도 적용되고 있는 것 같다. 상대가 하는 말, 행동, 태도를 모두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어느새 평가하고 있는 것.
이런 관점이 삭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나와 다르고, 때로 틀릴지라도 ‘그냥 그렇구나.’로 바라볼 수 있지 않는가?
타인에 대한 관용이란 것이 없어진 사회 속에 살고 있는 듯하다.
관용은 이해에서 비롯된다 생각한다. 이해를 하기 위해선 역사, 과학과 같은 인문학이 필요하다. 내가 아니기 때문에 상대의 배경을 알고, 그 배경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으며, 또 그 배경은 어느 역사적 맥락에서 시대상을 바라볼 것인지 등.
이것이 아니라면 수용을 통해 이해하는 것. 이해의 본질이 아닐 수도 있지만 오히려 수용함으로써 완전한 이해일 수도 있다.
이해가 이렇게 어려운 것이라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때로는 ‘그냥’ 바라보는 건 어떨까. 조금은 멀지도, 오히려 그 자체를 관찰하기에 가까울지도 모르는 빈 상태에서 관망해 보는 것도 좋은 시도일 것이다. 나와 타인을 현재에 있는 자체로 두면서 흘러가는 모양새를 잡지 않을 때 자연스럽게 남아있을 것 부유하며 떠나가는 알맹이들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