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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완 May 25. 2020

순간의 속임수

2020. 5. 24

 사람이었던 사람과 여자 셋이 함께 산다.


 열흘 전에 여자 셋은 먼지 낀 골방에 부적 조각 붙은 벽을 바라보며 앞으로 지내게 될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사람인 줄 알았던 사람이었던 사람이 이제는 무엇도 아니게 되었음을 느꼈다. 사람이었던 사람은 열흘 동안 눈치를 봤고 필요하지 않은 호의를 먼저 베풀었다. 우리는 많이 상처 입었다. 누군가는 정신과를 다니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팔뚝에 칼을 꽂을지 말 지를 훨씬 더 선명하고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했고 누군가는 나머지 둘 앞에서 힘든 내색을 보여서는 안 됐다.

 사람이었던 사람은 자신의 손목을 매어두었던 수갑의 불공정성에 대해 호소했지만 날아간 의자와 깨져 흩뿌려진 컵 조각들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았다. 여자가 한 명 실신했는데도 지레 겁먹고 경찰이며 구급차를 부른, 일을 키운 주범들이라 매도당했다. 그것들은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것들이라 했다. 또 자신을 돌보는 여자가 한 명도 없었음에 기함했고 ‘가족’을 위해 자신이 얼마큼 희생했는가에 대해 자세히 말해주었다.


 나는 어제 또 술을 먹고 여자를 상처 입히는 사람이었던 사람에게 빈대처럼 붙어 마음에도 없는 알량한 빈말들과 사랑을 보여주었고 그것이 나의 부족한 완력과 경제력에서 기인했음이 한없이 슬프고 수치스럽다.


여자들을 지키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럴 수가 없고 앞으로도 그럴 수 없을 것이다. 13시부터 22시까지 술을 먹고 언어폭력을 쉬지 않은 사람이었던 사람에게 가졌던 연민조차 속임수였다는 걸 깨달았다. 열흘이라는 순간들 앞에.


 잘 살고 싶었는데 잘 살지 못하는 것들이 주변에 많아서 나는 이제 자신이 없다.

 만일 사람이었던 사람의 말이 정신을 흐리게 하더라도 기억하기 위해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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