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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완 Mar 13. 2022

일요일의 인사

sun mar 13

비가 온다. 비 오는 날은 늘 좋아했다. 바람 부는 날도 좋다. 첫 해외여행으로 간 필리핀이 시종일관 그런 날씨였기 때문에(겨울철에 가서 그런가?) 발목을 휩쓸고 지나가는 낮은 바람이 부는 날은 추억에 잠기곤 했다.



생각할 거리가 많다는 건 지독한 저주다. 태어나서 한번도 생각을 쉰 적이 없지만 그게 적어도 나를 위한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별별 일을 다 겪고 편하게 혼자 있는 방에서 유유자적 일기를 쓰고 있는 자체가 어쩌면 상당히 운이 좋은 인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뭐 아무튼 간만에 일기를 쓰게 된 이유는 내 형편에 감사하고자 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그럼 왜였을까? 그냥 이런 이야기를 한번쯤은 보여줘야 해서, 가슴 속 쓰레기통을 주기적으로 비워줘야 해서 그렇다. 스물 초반에 비하면 허탈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심상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필요한 정보와 필요하지 않은 정보는 구분하여 분리배출해야 한다.



요즘 또 영상물에 빠져 산다. 넷플릭스에서 이런저런 힐링물을 검색하다 만족스러운 결과가 안 나오면 왓챠로 간다. 그러다가 다시 넷플릭스로 간다. 아 후배한테 디즈니 플러스 끼워달라고 해야 하는데. 거긴 뭐 특별한 작품이 또 있던가? 감수성 가뭄에 빠졌다.



한편으로는 늘상 이런 뜬구름 잡는 생각이나 하며 살고 있으니 인생에 진지하게 몰입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 싶기도 하고. 동년배에 비해 쓸데없는 생각은 깊으면서 정작 필요한 생각, 도움 되는 생각이 얕으니까 이렇게 물에 동동 뜬 것처럼 살아가는 모양이다. 사람들이 자꾸 내게 정신 차려 정신 차리라 하는데, 정신을 차리면 난 죽을 게 뻔하다. 아마 난 평생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고 이야말로 저주인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변명은 치우고 자기계발을 해야 할 때.

그렇다. 잘 살고 싶으면 해야 한다. 괴로운 일을.






시간이 흐르고 난 퉁명스러운 중학생 고등학생에서 우울증이 심각한 유학생, 현실 회피가 지독한 복학생, 결국에야 사고능력이 아예 쇠퇴해버리고 만 대학교 5학년생이 되었다. 교직이수란 필연적으로 초과학기를 지내게 되는지도. 어쨌건 전면에 솜이 달린 회색 맨투맨을 입고 샤브집에서 월남쌈을 말아먹던 내가 이제는 무리해서라도 시급을 받아가며 남에게 월남쌈을 말아줘야 할 입장이 되었다는 것이다(물론 샤브집에 취직하지는 않았다. 그냥 비유다.).



이 무슨 충격적인 전개인가?

나는 벌써 스물 여섯이 되었다.



어릴 때 죽는 것도 멋지다. 나는 울고 싶어졌다. 투명한 산하엽 같은 날개를 가진 유충에서 어딘지 초라하게 성장한 색이 짙은 벌레가 된 기분이다. 벌레라고는 해도 그렇게 비참한 느낌은 아니다. 몸이 단단하고, 엄지 손가락으로 누르면 쉽게 터진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26년 된 벌레. 귀엽다. 귀엽고, 당황스러울 만큼 오래 자랐다.



난 항상 내가 언제 죽게 될 지 궁금해했다. 스무살 전까지는 마치 0으로 마무리되는 나이가 장애물 경주의 장애물이나 스토리의 터닝포인트라도 되는 것처럼 스무살을 넘길 자신이 없다고 생각했고, 스무살이 넘어서는 적어도 스물 다섯 전까지는 죽을 줄, 아니면 최대한 봐줘서 마흔 살에 죽을 줄 알았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오래 살 모양이다. 우울증은 나아졌고 어느 정도 행복이 무엇인가를 깨달았다. 가족도 새로이 다시 사랑하게 됐다.



아직 내 스스로가 사랑스럽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언젠가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아무리 인생이 힘들고 돈 벌기 어렵고 건강이 안 좋다 해도 이제는 내 손으로 죽기가 어려울 것 같다.



왜냐면 살아보니 인생은 꽤 재밌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미안합니다 요절 클럽. 먼저 탈출합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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