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사소한 발자국
이 제목은 책이 아니라 영화로 먼저 접했었다. 영화의 포스터가 꽤나 기억에 남았던 모양이었다. 킬리안 머피의 얼굴에서 보이는 세월이 만든 주름에서, 오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달까. 제목을 읽었을 때는, <퍼펙트 데이즈>나 <아무도 모른다> 같이 울림이 있는 일본 영화들이 생각이 났다. 해당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원작 소설이 있다길래 기대하며 구매했다.
아일랜드 남동부, 추운 겨울. '빌 펄롱'은 야적장에서 석탄·목재상으로 일하며 아내인 '아일린'과 함께 딸 다섯 명을 키우며 살아간다. '펄롱'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 채 '미시즈 윌슨'의 가정부인 어머니 아래에서 자랐다. 어릴 때 놀림을 많이 받고 갑자기 어머니가 죽으면서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내지만, '미시즈 윌슨'의 따뜻한 손길 아래서 어엿한 어른이 되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 긴 연휴 때문에 주문이 많이 들어오는 야적장. '펄롱'은 마을에서 기초 교육 및 직업 여학교 그리고 세탁소도 겸업하고 있는 수녀원에 배달을 간다. 맞이하는 이가 아무도 없어 무심코 들어간 수녀원 안에서 만난 것은 신발도 없이 "검은 양말에 끔찍한 회색 원피스"를 입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들. 나가게 해달라는 아이들은 수녀 한 명이 들어오자 급하게 바닥에 엎드려 빨래를 한다.
예전부터 들려오던 수녀원에 대한 의미심장한 소문들. 그저 소문들이지만 어린 여자아이들을 본 '펄롱'은 그 뒤로 마음속에 짐을 안고 살아간다. 그러다 배달 때문에 다시 수녀원에 방문하게 되는데...
대학교 1학년 2학기 때 전공 수업으로 '영미문학읽기'라는 과목을 들었었다. 그때 오스카 와일드,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제임스 조이스 각각의 희곡, 시, 그리고 소설에 대해서 배웠었다. 세 명 모두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작가 클레어 키건과 같이 아일랜드 사람이다. 영미문학읽기라는 과목에서 영국이나 미국이 아닌 아일랜드의 작가들을 배웠던 이유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당시 과목을 가르치던 교수님께서 아일랜드에 특별한 애정이 있어 보이긴 했는데 그것 때문인지, 아니면 문학의 모더니즘을 알아보자는 학습 목표 아래에서, 아일랜드가 영국의 지배를 받은 역사적 사실에서 비롯된 고유한 특성을 가졌기 때문인지는 확실하진 않다. 하지만 덕분에 책을 피자마자 등장한 아일랜드의 언급에, 번역투를 좋아하지 않아 외국 소설을 잘 읽지 않는 나에게 향수를 느끼게 해주었다. 특히 더블린이라는 익숙한 지명의 등장은 외국 소설과 나 사이에 있는 벽을 어느 정도 허물어준 것 같았다. 동시에 그때 배웠던 작품들도 기억이 나는 듯하기도 했고.
1996년. 꽤나 최근까지 이어진 여성과 아이들을 향한 착취. 그 얘기를 담은 책이다. 고발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과 척을 지지 않으면서, 동시에 자신 그리고 가족의 손해는 보지 않는 선까지의 선(善). 단어 자체도 모순인 '이기적인 이타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사소한 행동으로 선을 한 발자국 넘은 주인공의 이야기. '빌 펄롱'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책의 초반 '펄롱'의 눈으로 아일랜드의 당시 현실을 서술한 장면이 있다.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펄롱은 알았다. 멀리 가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돌아다녔고 시내에서, 시 외곽에서 운 없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실업수당을 받으려는 사람들 줄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고 전기 요금을 내지 못해 창고보다도 추운 집에서 지내며 외투를 입고 자는 사람도 있었다. (...) 한번은 세인트멀린스에 사는 남자가 차를 얻어 타고 시내로 요금을 내러 왔는데, 그 사람 말이 지프를 팔아야 했다고, 빚을 생각하면, 은행에서 압류가 들어올 걸 생각하면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어느 이른 아침 펄롱은 사제관 뒤쪽에서 어린 남자아이가 고양이 밥그릇에 담긴 우유를 마시는 걸 봤다.
해당 챕터의 마지막 문단.
혹독한 시기였지만 그럴수록 펄롱은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이 잘 커서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여학교인 세인트마거릿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도록 뒷바라지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살기 어려운 때는 어느 나라에나 있다. 경제가 불황이어서 사람들이 거리에 내몰리는 현실. 그 사이에서 자기 가족 정도는 부족하지 않게 살 수 있는 '펄롱'은 가끔 어려운 아이들에게 용돈을 쥐여주곤 하지만, 그 선을 넘지는 못하고 조용히 집 문을 닫는다.
어느 날 저녁. '아일린'과 딸들과 함께 케이크를 만드는 '펄롱'. 그러다 갑자기 심란해진다.
펄롱은 자기 빵을 까맣게 태워버리고는 잘 지켜보지 않고 불에 너무 가까이 갖다 댄 자기 탓이라며 그냥 먹었는데, 갑자기 무언가가 목구멍에서 울컥 치밀었다. 마치 이런 밤이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결말을 위한 암시였을까. '미시즈 윌슨'의 집에서 살았던 과거를 생각하며 어머니를 떠올렸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며 '펄롱'은 마음을 다잡는다. 아이들을 재우고 '아일린'과 나눈 대화.
"아무튼 우리는 괜찮지?"
"재정적으로 말이야? 올해는 괜찮지 않았어? 지금도 매주 신용조합에 적금 넣고 있어. 내년에는 대출을 받아서 겨울 되기 전에 앞쪽 창문을 새로 해야 해. 외풍 때문에 아주 지긋지긋해."
"내가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나도 모르겠어." 펄롱이 한숨을 쉬었다. "그냥 오늘 밤 좀 피곤한가 봐. 신경 쓰지마."
이어지는 '펄롱'의 내면에 대한 서술.
이게 다 무엇 때문일까? 펄롱은 생각했다. 일 그리고 끝없는 걱정. 캄캄할 때 일어나서 작업장으로 출근해 날마다 하루 종일 배달하고 캄캄할 때 집에 돌아와서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다가 어둠 속에서 잠에서 깨어 똑같은 것을 또다시 마주하는 것. 아무것도 달라지지도 바뀌지도 새로워지지도 않는 걸까? 요즘 펄롱은 뭐가 중요한 걸까, 아일린과 딸들 말고 또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삶에 대한 걱정.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질문이 아니라, 자신이 이 삶을 왜 살아가고 있는지, 그러니까 왜 이런 일들을 견뎌내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끝없이 바쁜 일 때문에 힘들다거나, 혹은 그 일들 때문에 가족들에게 소홀했다거나 그런 것들에서 비롯된 걱정을 '펄롱'은 하고 있지 않다. 삶의 고난을 버티면서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니, 중요한 무엇이 빠져있는 것 같다는 허무함. 남편으로서, 그리고 아빠로서의 자신이 쌓아온 성취들 그 뒤에, '사람'의 이름으로 '펄롱'이 만들어온 업적의 빈자리가 너무나도 허전하다는 느낌. 잘 살아왔는지에 대한 회의감에서 비롯된 걱정.
수녀원에서 안쓰러운 차림으로 빨래를 하던 아이들을 본 그날 밤. 그 얘기를 '아일린'에게 한다. '아일린'의 대답.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 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
(...)
"그렇지만 우리가 가진 것 잘 지키고 사람들하고 척지지 않고 부지런히 살면 우리 딸들이 그 애들이 겪는 일들을 겪을 일은 없어. 거기 있는 애들은 세상에 돌봐줄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그런 거야. 그 애들 부모는 애들을 멋대로 풀어놨다가, 문제가 생기니까 모른 척 등을 돌려버렸겠지. 자식이 있는 사람이 그렇게 무심해서는 안 되는 건데."
"하지만 만약 우리 애가 그중 하나라면?" 펄롱이 말했다.
"내 말이 바로 그거야." 아일린이 다시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
실제로 책에서 마지막 대사는 강조 표시가 되어 있다. 이 전까지 한 번도 쓰이지 않았고, 끝까지 쓰이지 않은 강조 표시가.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라는 대사가 꽤나 크게 다가왔다. 나의 입장을 타인의 불행에 대입하지 않는 것. 그게 선을 만든다. 근데 맞잖아 우리 애들이 아닌 게, 그러니까 타인의 불행이 나의 불행이 아닌 게.
조금은 울적해진다. 스쳐 지나가는 뉴스 기사로, SNS로 접한 타인의 불행에 애써 공감한답시고 애도하면서,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며 자기 합리화를 한 알량했던 나의 모습에.
크리스마스가 며칠 안 남은 날 아침. '펄롱'은 한 번 더 수녀원으로 배달을 간다. 그날 석탄 광에서 하룻밤 이상을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여자아이를 발견한다. 데리고 가야 하나 아님, 수녀원에 말해야 하나 고민하는 '펄롱'은 끝내 수녀원의 초인종을 누른다. 대답을 잘 하지 않던 여자아이가 말을 꺼낸다.
"내 아기 어떤지 물어봐 주시겠어요?"
그리고 열린 수녀원의 문과 둘을 반기는 수녀원장의 모습. 그녀는 여자아이를 살피며 '펄롱'을 안에 들인다.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둘의 대화. 깨끗하게 묘사된 방은 오히려 더 위화감이 들게 한다. 여러 대화를 하고 현관문을 나서는 '펄롱'. 시간이 지나 그날 밤, 그는 아침에 있던 일을 떠올린다.
펄롱을 괴롭힌 것은 아이가 석탄 광에 갇혀있었다는 것도, 수녀원장의 태도도 아니었다. 펄롱이 거기에 있는 동안 그 아이가 받은 취급을 보고만 있었고 그 애의 아기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 수녀원장이 준 돈을 받았고 텅 빈 식탁에 앉은 아이를 작은 카디건 아래에서 젖이 새서 블라우스에 얼룩이 지는 채로 내버려 두고 나와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 일을 마친 '펄롱'은 올해의 일도 다 끝났고, 당장 해야 할 일도 없는 상황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마을을 돌아다닌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일린'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줄 구두를 찾으러 간다. 구두를 찾고 난 뒤, 그는 집으로 가는 언덕길이 아닌 다른 길로 나아간다.
왜 편안하고 안전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아일린은 벌써 자정미사 준비를 하면서 펄롱이 어디 있을까 생각하고 있을 거였다. 그러나 펄롱의 하루는 지금 무언가 다른 것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두 번째 간 수녀원에서 만났던 여자아이, '세라'를 다시 석탄 광에서 구한다. 그리고 자신과 함께 집에 가자며 외투를 건넨다. 외투를 건네면서도, 아이와 함께 거리를 걸으면서도 '펄롱'의 내면은 뒤죽박죽이다. 그러다 '펄롱'은 생각한다.
두 사람은 계속 걸었고 펄롱이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을 더 마주쳤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 그래도 변변찮은 삶에서 펄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갓난 딸들을 처음 품에 안고 우렁차고 고집스러운 울음을 들었을 때조차도.
책의 마지막 문단에서.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는 걸 펄롱은 알았다. 벌써 저 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생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나는 저런 최악의 일들을 얼마나 무시했을까.
'펄롱'의 한 발이 보이지 않는 그 선을 넘어가고 있다.
고등학교 때였나. 비가 오고 있었고, 학교를 갔다 왔는지 아니면 방학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외출 후에 집을 향하고 있었다. 비가 얼마나 오고 있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해서 이른 오후였음에도 어둑했고, 그 어두움이 구름이 가진 수증기의 무게를 나타내는 듯하여 걸음조차도 무거워지는 기분이었다. 동시에 앞으로 본격적으로 비가 내릴 거라고 말하는 듯했다.
어릴 때부터 한 동네에 꾸준히 살아서, 집 밖을 나서면 아는 체는 하지 않더라도 익숙한 얼굴들을 만날 때가 종종 있었다. 그중에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해서 눈에 밟히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다. 폐지를 줍는 할머니.
바로 앞, 왼쪽으로 나있는 골목으로 빠진 뒤. 시야의 저 끝, 그곳에 있는 모퉁이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집이 있었다. 골목으로 들어가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앞서 걸어가는 그 할머니를 봤다. 그다지 추운 날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털모자를 쓰고 계셨고 우산은 쓰고 있지 않으셨다. 어김없이 리어카를 끌고 계셨으며 리어카 안에는 비에 젖어 얼룩덜룩한 폐지들이 쌓여 있었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최초의 기억 이래로 쭉 할머니랑 같이 살아왔기에 생긴 비슷한 대상에 대한 괜한 연민이었을까. 아니면 상대가 누구였든 비를 맞고 있는 자를 향한 측은함 때문이었을까. 그게 무엇이었든 어느새 그 할머니 옆으로 가 맞춰 걸으며 우산을 씌워 드리고 있었다. 오늘 하루 종일 비가 온대요. 그 말과 함께 앞으로 비가 더 올지 모르니까 얼른 들어가시라고 말했던 것 같다. 무슨 말을 덧붙이셨었나. 잘 모르겠는데 나의 말에 사투리로 돌아온 답변 하나만 기억이 난다. "지 살라믄." 힘이 없는 듯 끝을 흐린 대답.
할머니는 모퉁이에서 나의 집과 반대쪽으로 나있는 길로 걸어가셨다. 그 대답을 들은 당시 나의 심정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한참을 모퉁이에 서서 걸어가는 할머니의 작고 굽은 등을 보았고, 하늘을 가득 채운 먹구름의 무게보다 무거운 어떤 것이 나를 짓누르는 듯했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쩌려고 우산을 씌워 드렸을까. 계속 따라다니면서 비를 막아드릴 것도 아니면서. 갑자기 우산을 들고 있는 손이 부끄러워졌다. 그날이 있고 난 후부터였을까. 시간적 순서로는 맞는데 연속적인 사건인지는 확실하진 않지만, 기억하기로는 그날 이후로 그 할머니를 보지 못했다.
이 책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사람으로 살기 위해, 그러니까 일생을 돌아봤을 때 중요한 무엇인가가 빠져있다고 느끼지 않기 위해서는 남들을 도와라,라며 훈계하는 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내가 책을 읽고 위에 쓴 개인적인 경험이 생각났고 그리고 그 내용을 이 글에 쓴 것도, 나는 이런 사소한 배려를 했으니까 내가 애써 무시했던 나를 지나간 "최악의 일"들에 대해 면죄부를 달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경험을 상기시킴을 통해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았던 또 다른 일들을 나 자신에게 고백하는 것.
"사소한"이라는 단어가 아마 책에서 딱 한 번. 결말부에 등장한다.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그저 사소한 일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소하지만 전혀 사소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이야기. 어쩌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사소한 일.
'펄롱'이 처음 수녀원으로 배달을 가서 빨래를 하던 여자와 어린아이들을 보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수녀원에서 도망쳐 나온 날. 집으로 가는 길에, 엉뚱하게 가고 있음을 깨닫고 우회전에 우회전을 거듭하다가 어느 한 노인을 만난다.
펄롱은 차를 세우고 노인에게 인사를 했다.
"이 길로 가면 어디가 나오는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이 길?" 노인은 낫으로 땅을 짚고 손잡이에 기댄 채 펄롱을 빤히 보았다.
"이 길로 어디든 자네가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다네."
어디든 갈 수 있다. 만약 한 발자국, 그 길로 나아갈 용기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