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만 나가면 웬 천지가 다 콩밭이었제. 가실이먼 마당에서 콩 도리깨질 허느라고 웬통 그런 난리가 없었어. 콩 타작이 끝나먼 집에서 메주 쑤고 먹고 남을 것만 쫴끔 냄겨놓고 가용에 보탤라고 콩자를 메고 버스를 타고 저 남원장, 함양장, 산청장까정 갔다가 팔았제. 저 구지내기 동네 들어가는 거그 삼거리 당산나무 있는디 거그에 두부맹글어 파는 집이 있었어. 조상 대대로 거그서 두부를 맹글었제. 맛있다고 멀리서도 많이 사러 왔샀어. 우리가 사는 곳이 콩이 많이 낭개로 오랫동안 두부맹근 솜씨덜이 집집마다 좋았당개로"
지난봄 내가 근무하는 작은 고을의 삶터에 화석된 사람들의 흔적을 모은 일이 있었다 지리산 소금길 염두고도였다 그 책에 들인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소금과 콩이었다 1500년 전 이곳 사람들의 이야기가 콩 문화에 많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 자료를 정리하다가 이 고을의 과거 통계에 눈길이 갔다 1960년대에 이 고을의 밭 400ha 중 300ha 정도가 콩밭이었다고 통계에 들어 있었다
"조상들이 잘해온 농사는 우리도 잘헌다고. 크면서 보고 배운 것이 머릿속에 콱 백혀있응개로 그러제. 땅은 척박허제 거름은 죄다 논에다 써야제 긍개로 밭에 심을 것이 옛날이나 그때나 콩밖에 뭣이 있었것어 조상 덜이 그것을 우리덜한테 가쳐준거시랑께"
지리산 첩첩산중 작은 고을에 사람이 들었다 고원 분지 깊은 천혜의 요새로 적을 방비하기에 좋은 지리적 여건이지만 식량 확보는 악조건이다 고랭지 기후적 환경과 척박한 땅이 그것의 이유다 그곳에 들었던 사람들의 생존을 상속시켜 주었던 유일한 재배 식량은 무엇이었을까?
논두렁 콩 밭두렁 콩이란 말이 있다 손가는 자투리땅이면 어디든지 콩을 심고 거둘 수 있어 왔다는 뜻이다 콩이 생장에 필수요소인 질소질 비료를 자체 고정시킬 수 있는 뿌리혹박테리아를 가지기 때문이다
척박한 땅에서 재배할 수 있는 콩은 식량이 될 수 있었고 거기에 소금은 콩 활용의 마중물이었다 그 소금을 찾아낸 곳은 지리산 125리 넘어 하동이었다 1500년 전의 생활이 근대까지 이곳 사람들의 농사문화였던 것이다
"내가 시집온개로 어른들이 고사상에다가 두부를 올리등마. 내가 살던 화순에서는 두부를 고사상에다 올리들 않거등. 시어머니한테 들응개로 옛날부터 여그서는 그랬대. 고것이 왜냐먼 두부는 물과 콩과 소금 그 세 가지 것이 합이 들어야 된 것이라서 그런디 물은 하느님이 내고, 콩은 땅님이 내고, 소금은 바다님이 낸 것이라서 두부는 그 세분에게 농사도 잘되게 해 주고 굶지 않고 후손들이 잘 살게 해 달라는 소원 제물이라서 고사상에다가 빼놓지 않고 올린것이랑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