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간 기행

지리산 염두고사(鹽豆告祀)이야기

by 김용근

지리산 소금길 염두고사(鹽豆告祀)이야기

지리산 아영면은 1500년 전 가야 기문국의 터전이다
두락, 월산, 청계 고분과 아막성이 그때로 이어지는 소통로이고 발굴된 유물이 흔적이다

나는 그때의 풍습이 아영면의 어르신들에게 어떤 것으로 상속되어 있는지 살펴보았다
풍습은 행위로 유전되고 존재하기 때문이다

26개 마을 중 네 개 마을의 할머니들에게서 그것이 보였다
정월에 지내는 장독 고사가 그것이었다
예전처럼은 아닐지라도 장독 위에 콩과 소금을 얹고 솔가지로 장독을 쓸어준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그러한 조왕 고사는 먼 조상에게서 왔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곳 지방이 콩과 소금으로 살아낸 나라와 백성이었고 그것의 실체가 두락과 지리산 소금길에 있기 때문이다

1500년 전 지리산 소금길이 열리던 날 사람들은 소금과 콩이 자신의 고향을 떠나 상대방의 터로 무탈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기원 고사를 지냈을 것이다 이른바 염두 고사다
하동의 소금과 아영의 콩이 지리산 벽소령을 넘어오고 갔던 시절 두 지역 사람들은 새해 첫날 염두고사를 지냈으리라
아영 가야 시절 그 고사의 제관은 진아시왕이었을 것이고 제단에 콩과 소금이 올려졌으리라는 생각은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한 나라와 백성의 터는 그때로부터 튼튼해졌고 지금 우리 곁에 붙은 두락, 아막성, 구지내기, 외지내기, 신지내기 같은 지명은 그 시대로 들고 나는 출입문이다

그때로부터 지리산 소금길에는 사람의 이야기가 살아왔다
먼 옛날 소금은 나라의 관리 자원이었고 전매품이었다
소금이 백약이라는 말이다
1500년 전 지리산 가야의 한 나라였을 기문국은 고원지대 깊은 요새에 들었다
나라를 방비하고 지켜내는 데에는 하늘이 내린 땅이었으나 백성들의 삶터로는 척박한 환경이었다
고랭지의 기후가 곡식을 풍요롭게 내어 주지 않고 거기에 백약이라는 소금마저 구해올 곳이 없던 곳이었으니 말이다

이 고을에 내려오는 속담이 그 역사의 속살이다

"소금 바가지는 안방 아랫목에 걸어두고 쌀 저울은 곡간 문 앞에 매달아 둔다"

귀하다는 쌀을 사고 파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쌀 저울도 쌀 곡간 앞에 매달아 놓고 사용하는데 소금 바가지는 누가 훔쳐가지 못하도록 안방에 두어 관리했다는 말이다

지리산 소금길 염두고도는 1500년 동안 세상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 이야기들은 후손들에게 상속된 것도 있고 화석 된 것도 있다
첩첩산중에 소금이 들어 수많은 음식이 생겨났고 성안에서 장기전으로 나라도 지켜낼 수 있었다
소금은 구원의 대상이었고 나라의 신앙적 존재였다

장독대 가운데에 놓인 독아지 뚜껑에 콩과 소금을 올리고 독아지 목에 두른 새끼줄에 메밀대, 콩대, 볏짚, 참깨대, 들깨대를 매달아 놓고 정월달에 고사를 올린 다음 삼월 삼짓 날 농사가 시작되면 그 재료들을 태워서 잿물을 만들고 장독대와 부엌 돼지우리와 칫간에 뿌려 해동과 함께 생겨난 해충과 병균을 퇴치해 냈다
장독에 둘러친 잿물 재료는 장독 뚜껑에 올려진 염두의 신령스러운 신물을 온갖 잡귀로부터 보호해 낸다는 당시 사람들의 생각이었고 지금도 그 흔적은 풍습으로 존재한다
그때로부터 내림되어온 할머니들의 장독고사 시원은 1500년 전 염두고사와 이음인 것이다

발굴과 연구는 학자, 자원의 활용은 우리 몫이다
예산낭비 없이 소득 내는 김장철 지리산 소금 축제 같은 역발상 활용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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