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소령! 오늘 달 뜨는 밤이다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희고 맑다 못해 푸르다 벽소한월(碧宵寒月)이다 그곳에 서서 달 풍경하나 몸에 들이니 벽소명월(碧霄明月)이다 누가 지리산 제4경이라 했던가 늙은 나무를 기둥 삼아 떠오르는 달은 천추의 한을 내뿜은 듯 차갑도록 시리고 푸르니 제1경이 아닐쏜가 말이다 시인이 아니어도 묵객이 아니어도 그곳에 서면 시인묵객이 된다 나도 그랬다.
그 벽소령의 주인이 되고자 했던 지리산 소금길 염두꾼들의 염원은 오늘도 저 달 속에 든 푸름에 물든 청이다
지리산 소금길 염두고도에서 나온 소금 이야기는 지리산 백성들이 가진 생활 정체성이다
지리산이 내어준 것들에 사람의 이야기를 들인 것은 상속되었고 생활문화가 되었으니 그렇다
지리산 소금길 염두고도에 소금나무 이야기가 있다
소금나무라고 부르는 붉나무가 그것이다 가을에 잎이 붉어지니 사람들은 눈에 든 대로 붉나무라고 불렀다 조금 유식한 말로는 오배자나무라고도 한다.
그 나무의 조상이 옻나무과이니 잎과 꽃 모양이 옻나무와 비슷하다 이름과는 다르게 산속 척박하고 양지바른 넓은 바위 뜰이나 들판에서 잘 자라는 것을 보면 사람에게 쓰임새가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나무다
무더위가 한창이면 꽃이 피고 누구나처럼 가을이면 둥근 열매가 노랗고도 붉은 갈색으로 달린다
옛날 어른들은 피부병을 다스리거나 다리 풍통에 좋은 약재로 많이 썼다고 하나 대표적인 쓰임은 열매껍질의 흰 가루가 내는 간수로 두부를 만든 것이었다 소금이 없어도 두부를 만들게 해 주었던 나무다
그 소금나무의 오래된 이야기는 이렇다
콩과 소금을 지고 지리산 벽소령을 넘나들던 가야 기문국 염두꾼중에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아막 총각이 있었다
연로하신 홀어머니를 두고 소금을 가지러 떠나는 아막 총각은 어머니가 항상 걱정이었다 더구나 어머니는 두부를 만들어 살아가고 있었으니 몸을 써야 하는 콩을 다루는 힘든 일이 더 큰 걱정이었다
어머니는 외아들이 더 걱정이었다 벽소령 호랑이에게 잡혀 먹힌 염두꾼들이 한 두 명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벽소령 날씨는 변덕스럽기 짝이 없어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로 많은 염두꾼들이 계곡에 빠져 죽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이웃에 허다했으니 어머니의 아들 걱정은 눈 대는 곳마다 아들이 보이는 환상이 되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소금길을 떠나면 곧바로 집 뒤꼍 늙은 감나무 밑에 상을 차리고 조상신에게 아들의 무탈을 빌었다
아들이 떠난 지 이틀이 지났다 아들이 소금 지게를 지고 염두꾼들과 함께 집에 나타날 시간이 되었으나 소식이 오리무중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염두꾼 일행을 찾아 나섰다 벽소령 아래 음정까지에도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더 올라가니 산사태가 난 자리에 소금 지게가 널브러져 있을 뿐 염두꾼들은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산사태에 매몰된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대성통곡을 하며 매몰된 염두꾼들의 영혼을 빈 지게에 모시고 아막 골 집으로 돌아왔다
총각의 어머니는 아막 총각의 영혼을 지고 온 지게를 뒤꼍 감나무 옆에 두고 아들의 영혼 장례를 치렀다
홀 아들을 잃은 할머니는 생계가 나날의 고통이 되었다 당장 두부를 만들 간수 소금이 없으니 말이다 할머니는 이웃 소금장수 집에 가서 품을 팔아 품값으로 소금 간수를 가져다 두부를 만들며 살았다
어느 날 가을이 되어 조왕신에게 제를 올리려 집 뒤꼍 감나무로 갔더니 감나무 옆에 붉은 잎을 가진 나무가 한그루 생겨나 있었다 그 나무에 열린 열매를 입에 넣어보니 짠맛이 났다 할머니는 그 나무 열매를 따서 물에 풀어 두부를 만들어 보았다 아주 맛있는 두부가 되었고 할머니의 생계는 걱정을 덜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 나무가 벽소령에서 죽은 아들 아막 총각의 영혼이 다시 태어나 할머니에게 효자노릇을 한 것이라며 그 나무를 소금나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