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간 기행

지리산 용궁 산수유꽃 이야기

by 김용근

문화대간 기행

감추어둔 황용 뿔이 꽃으로 변한 지리산 용궁 산수유 이야기

지리산에 봄이 왔다 노란색으로 말이다
만물이 기지개를 켜는 때 세상의 중심 그 황색을 지리산에 들인 것은 산수유 꽃이다

“날이 따땃허먼 발이 굼질굼질 거려서 방안에 못 있는 것이 사람살이여 근디 밭에 나가야제 허먼 벌써 다무락에 끼여 사는 산수유 꽃이 피어분당개 우리 조상덜이 저 돌담 밑에 심거 논 산수유라도 저렇게 피어주니 봄인갑다 험서로 아직 숨 쉬며 살고 있구나 허제”

저 어르신들은 조상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이 들도록 고향에 사시는 덕으로 이른 봄소식을 저 산수유 꽃에서 몸에 들이고 있다. 그러하니 고향을 지키며 후손 노릇 잘해온 보상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노란 산수유를 보면 밥맛이 난다고 했던 어르신들도 이제는 안 계신다 그렇긴 해도 아직 제힘으로 살아가고 계신 어르신들은 옛날 기억대로 꽃구경 가자고 나서신다.

30여 년 전 그 소리 들었던 지리산 남원 용궁마을 산수유가 지금 해마 다처 럼 제 나이 값 이름값을 하는 중이다.
노랗게 말이다
내가 어릴 때 때 외갓집 갔다가 들었던 기억 하나 끄집어 내보면 이웃집 할아버지 말씀이 지금도 귓전에 쟁쟁하다
나는 해마다 이맘때쯤 그 기억을 불러낸다 그때는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가 이제야 풀이가 되긴 했지만 노란색이 위장에 영향을 준다면서 산수유 꽃놀이가 위장에 기운을 주는데 좋다나 뭐다나 하시면서 봄날을 산수유 밭에서 사셨고 그 이웃집 할아버지는 그날 이후로 진지를 잘 드셨으니 며느리는 밥투정하시던 시아버지 밥살이에서 한동안 해방되셨다고 했다 그러니 용궁 산수유는 그 할아버지 좋고 며느리 좋고 나는 기억 만들었고 그랬었다 그때 할아버지는 내 기억의 창문을 열고 이야기 하나를 던져 주셨다 훗날 나는 그때의 기억을 이렇게 정리해 두었었다

먼 옛날 지리산을 유람하며 수행하던 한 스님이 지리산 영제봉 아래 너른 터에 도착하여 자신이 살아갈 절터를 찾다가 돌무더기에 잠깐 앉았는데 그만 잠이 들었고 꿈속에서 용 두 마리가 나타났다 그 용들은 하늘나라에서 지리산에 귀양을 왔단다. 무엇의 잘못에 대한 대가였는지는 그들만이 알뿐 인간들에게는 두려운 존재의 출현이었다.
지리산 영제봉을 가운데 두고 양쪽에 한 마리씩 살던 용은 어느 날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매월 보름날마다 인간 세상에 비를 뿌리며 사랑을 했다.
처녀용이 노란 꽃을 머리에 꽂고 예쁜 짓 하며 총각용에게 청혼했고 마침내 터를 내고 함께 살게 되었다 그곳에 살던 용 부부는 아홉 마리의 자식을 낳았으나 옥황상제는 그 자녀 용들에게 소환령을 내렸고 부모 용 몰래 떠나던 아홉 마리 자녀 용들은 지리산 계곡을 날다가 풍경에 감탄하여 하나씩의 못 웅덩이를 차지하고 살았다
그 못에 든 용들은 하늘로 영원히 승천하지 않기 위해 자신들의 태생지 터에 뿔을 감추어 두었다
스님은 그곳이 자신이 찾던 양택 명당이라고 생각하고 이리저리 다니다가 돌부리에 넘어졌다 그 순간 벼락이 치고 소나기가 쏟아졌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난 스님은 꿈속에서 보았던 용뿔 숨겨진 곳을 찾다가 딱새 한 마리가 입에 먹이를 물고 새끼에게 가져다주는 곳을 발견하고 그리로 가보았다 땅에 떨어진 새똥 옆에는 노란 꽃을 피운 나무가 있었다
스님은 그 나무에 핀 꽃이 용뿔이 꽃으로 변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터에 절을 짓고 용궁사라고 불렀다
스님은 꿈속에서 보았던 계곡에도 가보았다
계곡에 아홉 개의 못이 있었다
스님은 그곳을 구룡계곡이라고 불렀다
지리산 용궁마을 산수유 꽃은 그렇게 탄생되었다
그 이야기는 어른이 된 내 기억의 큰 고향 유전자다

일제 강점기 때 용이야기를 가진 마을 유래를 없애버렸다는 그 실체는 이제 나의 지리산 구전 조사 일지에서 살고 있을 뿐이다

지금 그 용궁마을 산수유가 이름 값하고 있다.
봄바람에 춤추며 말이다
지리산은 그렇게 늙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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