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간 기행

고향을 지켜 내던 십리 고개는 이제 아리랑이다

by 김용근

문화대간 기행

왜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날까?

십리 안에서 나는 것은 모두 한 몸이다
사람은 그곳에서 얻어진 땅기운으로 살아가며 후손 또한 그 지기를 몸에 지니고 태어나는 것이니 고향이란 십리 안의 세상을 몸에 들인 것이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이란 고향을 말함이요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말은 사람은 고향을 버릴 수 없다는 말이다

그 실체 한토막은 이렇다
30여 년 전 지리산 구전자원 조사하러 구례 시장통에 갔다
지금도 그렇지만 장날이 되면 할머니들은 자신만의 물건들을 가지고 오셔서 시장 골목 한 사잇길에 길게 장을 세우셨다

봄이면 냉이, 쑥, 두릅 같은 들, 산나물을 비롯하여 강아지까지도 할머니들의 광주리와 보자기에 들고 쌓여 장터로 나왔다
다른 계절의 산물들도 할머니들의 손에 들려 시장통에 나와 새 주인을 따라갔다
오일장터 할머니들의 골목에는 닷세마다 세상살이 왕국이 되었다 그곳에서는 나라님도 입에 드나들고 효자효부도 그곳에서 나오고 온갖 세상사가 할머니들의 입으로 드나들었다 그곳에서 청국장을 파시는 할머니를 만났다
수십 년을 그 자리에서 청국장만을 파셨으니 청국장 할매라는 간판 없는 상호를 얻으셨다

청국장 할머니 사연 이야기

"야 이눔아 밥상머리에 올라온 것들이 지발로 기양 기어들어 온 거신 줄 아냐 왜 숟가락을 들었다 놨다 밥떼깡을 부리고 난리여 시방"

할머니는 오늘도 손주와 밥상싸움이다
방학이라 외갓집에 온 손주 녀석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올려낸 청국장에 숟가락을 넣었다 뺐다 하며 투정을 부리는 열 살배기 손주와 반찬 싸움 중인 것이다

"야 이눔아 니 묌이 왜 뚱뚱허고 비실헌지 아냐. 도시에서 거 뭣이냐 괴기며 비니루에 든 식품이며 그런 것들을 묵고 싶은 대로 묵고 살아서 그렁거여. 긍개로 할미집에서 그 몸을 고칠라먼 청국장 같은 것을 많이 묵어야 혀 빨리 묵어"

"할머니 저는 청국장 싫어요. 냄새도 나고 아뭏튼 싫어요"

"이눔아 청국장이 얼매나 좋은 것인지 알어 청국장을 맹글려면 콩, 볏짚, 아랫묵 글고 할미 손이 있어야 디야. 이 할미가 그렇게 맹근거여. 니가 방학때 온다고 너한테 맥일라고"

"할머니 그러면 청국장에서 제일 중요헌 것이 콩이예요"

"응 콩만 갖고는 청국장이 안디야. 삶은 콩에 지푸러기를 쑤셔 쳐 박아야 콩이 실을 내면서 아랫목에서 뜨는 것이여"

"그러면 청국장은 할머니가 만든 것이 아니라 지푸라기가 만든 거네요. 결국 할머니가 만든 청국장의 주연은 콩이 아니라 지푸라기네요"

"그러면 이 할미는 뭣이여"

"할머니는 총 감독이예요. 청국장 만드는 대장이라는 뜻이예요"

"그랴 이 할미가 그렇게 큰 대장인 것이여"

손주는 오늘 청국장으로 밥을 먹었다

할머니에게 들은 청국장 이야기는 이랬다

옛날에는 마을마다 청국장 논이 있었다
청국장 재료 중에 무엇이 제일 중요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콩이라고 말하지만 지리산 사람들은 볏짚이라고 생각했다

삶은 콩을 띄워주는 발효균이 볏짚에 있고 그 발효균이 맛있는 청국장을 만들어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이유 말고도 볏짚을 더 중요한 청국장 재료로 생각하였던 것은 음식이 약이고 사람을 만드는 착한 기운을 가져야 한다는 일상의 풍습 때문이었다

그래서 착한 청국장을 만들기 위해 동네 사람 중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 지은 논에서 나온 볏짚으로 청국장을 만들어 먹었다

착한 사람이 농사지은 볏짚 속에는 착한 발효균이 있고 그 착한 발효균이 삶은 콩에 들어가 착한 청국장이 되게 하여 그것을 먹은 사람들이 착하게 살게 되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그 착한 사람의 논을 청국장 논이라고 불렀고 집집마다의 청국장은 그 사람의 청국장 논에서 나온다고 했다
할머니네 집은 그 청국장 논을 조상 대대로 지어오고 계셨다
청국장 할머니의 유전자는 십리 안에서 나온 땅기운에 있었다

마을은 착한 사람들의 공동체다 그것의 끈이 착한 음식에 있었음은 청국장을 좋아하는 우리가 그 실체다
지리산의 청국장 논은 착한 사람을 내는 어머니였다

농사꾼의 손을 타야 전답이고 그것은 고향의 주춧돌이다
농지 투기는 고향을 파괴하는 테러다

고향을 지켜 내던 십리 고개는 이제 아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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