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아영 고을 사람들은 "봄나물은 소금에 데쳐내고 가을 나물은 햇볕에 구슬러 낸다"고 했다
1500년 전 지리산 가야 사람들이 살던 아영 땅은 은둔의 첩첩산중 요새였다 일제강점기의 신작로가 생겨나기 전까지는 외부와의 왕래가 거의 없는 자급형 고을이었다 다만 한 가지 자급해낼 수 없었던 것은 소금이었다
지리산을 넘어 하동에서 가져온 소금으로 백성들의 삶은 열 배나 더 풍요로워졌고 국력이 되었다 즉 소금으로 음식의 다양성을 내고 영양이 풍부해져 건강한 몸을 갖게 된 것이다
아영 고을은 낮은 데서 높은 곳까지 산과 들이 많다 그곳에서 철 따라 많은 나물이 반찬이 되게 한 것은 소금이었다
봄나물을 소금에 데쳐서 사용하면 열 배나 많은 반찬이 되었다 맛은 들이고 나물의 독성은 제거해낸 것이 소금이었기 때문이었다 발에 밟힌다는 콩이 소금을 만난 것도 그때의 일이며 거기에 풍천에 넘쳐나던 물고기며 산짐승과 소, 돼지 같은 가축 고기가 소금을 만난 음식이 되어 단백질 공급원이 되었으니 백성들의 체력은 향상되었고 국력이 되었다
소금이 아영 가야의 존재를 지켜냈다는 실체는 지리산 소금길에 보이고 "봄나물은 소금에 데쳐내고 가을 나물은 햇볕에 구슬러 낸다"는 할머니들의 구전에 있다
1500년 전 지리산 가야 아영에 든 소금과 콩은 나라의 좌청용 우백호였다
세상에 짝퉁 없는 자원 염두고도의 125리 길 출발지는 장수군 번암면 하동골이다
"할머니 좋은 나물은 어떤 거예요?"
"산에 가서 자기 눈에 잘 띄는 나물이 자기 체질에 맞는 나물반찬이 되는거여"
"할머니 나물반찬에는 무엇을 넣어야 맛있을까요?"
"나물반찬 하나에 조상 목숨 하나씩 들어 있는 것이어 이것 묵고 죽냐 사냐 험시로 먹어봐갔고 후손들 한테 넘겨준 것인 개로 우리가 시방 나물 반찬을 먹고사는 것이라고 긍개로 음식 앞에서는 매사에 겸손해야 허는 거여 나물반찬은 맛을 생각 허먼 안 되는 것이라고"
소금 한 주먹에 봄을 다 먹는다고 했다는 지리산 소금길 염두고도 1500년의 봄맛 길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