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윤혁 I Brown Apr 21. 2018

좋은 뉴스를, 좋은 플랫폼을 만드는 길

중도를 고민하다

뉴스룸(Newsroom)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드 중에 하나다. 1)


몸 사리고 욕 안 먹는 뉴스를 진행하며 인기를 얻어가던 앵커 윌 맥어보이가, 자신의 유일한 사랑이자 멋진 동료이며 진정한 언론인이자 PD인 맥킨지 맥헤일을 다시 만나서  진짜 뉴스를 만들어가는 이야기.

이 드라마 이름을 따서 JTBC는 메인뉴스 이름을 지었을 정도이니 말 다 했다.


이 드라마를 보면, 뉴스 안에서 정의와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 그 뒤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노력과 고생을 볼 수 있다. 특히, 뉴스라는, 더 크게 보면 방송사라는 매체가 '대의와 존속'이라는 가장 중요한 두 목표 사이에서 어떻게 줄다리기를 하며 균형을 유지하는지에 대한 부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다들 알다시피 방송사라는 곳은, (일반적으로) 방송을 본 사람에게 돈을 받지 않는다. TV수신료라는 KBS 나 EBS에서 공영방송 제작을 위해 받는 금액을 제외하면 타방송사들은 일반 시청자에게는 직접적으로 돈을 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으리으리한 건물과 스튜디오와 인력들은 어떤 돈으로 유지하느냐?

다양한 출처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역시나 광고다.

우리가 방송 사이사이 (요새는 한 드라마도 둘로 쪼개서 광고를 하고 드라마 안에서 PPL 도 하니 진짜 사이사이)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광고들, 즉 그걸 보여주고자 하는 기업들로부터 돈을 받아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송출하게 된다.


다시 말해

시청자 - 방송사 - 기업

3개의 관계 안에서, 방송사는 좋은 콘테츠로 시청자를 모객하고 사이사이 기업의 광고를 유저에게 보여주어, 많은 시청자가 그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거나 사용하게 만들어서 기업의 매출을 올리게 될테니, 기업은 그것을 기대하며 대가로 방송사에 돈을 지불한다.

이렇게 세식구가 나름의 이해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와 아주 정확하게 같은 그림이 바로 우리 서비스에도, 그리고 수많은 광고 플랫폼 서비스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유저 - 플랫폼 - 광고주(업체)

플랫폼은 우리 생활 모든 곳에 존재한다. 지마켓도 구매자와 판매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이고,  카카오택시는 드라이버와 탑승자를,  야놀자는 투숙객과  숙박업소를 연결해주는 플랫폼이다.


위와 똑같은 관계로 구성된 채 서로에게 바라는 점이 있는 이 그림에서 플랫폼이라는 중간자는 꽤나 골치 아픈 고민(뉴스룸이 그러했듯)을 반복하게 된다.

좋은 콘텐츠, 진실된 콘텐츠를 제공하는 방송이 좋은 광고, 영향력 있는 광고를 보여줄 수 있는 방송과 서로 상충되어 버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뉴스가 하루 종일 어떤 기업이 안 좋은 곳이라고 까발리게 되면, 그 기업이 해당 방송사에 큰돈을 주고 광고를 올릴 수 있을까?

반대로 뉴스가 하루 종일 나쁜 기업이 좋은 것처럼 포장하면, 그 뉴스는 시청자들이 볼만한 콘텐츠를 제공한 것일까?



우리는 여기서 중간자( 혹은 미들맨이라고도 불리는)의 불행한 시나리오를 잠시 상상해 보자.


불행한 시나리오 #1
- 미들맨이 광고주 편에만 선다

-> 미들맨은 광고주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와 서비스만을 제공한다
-> 똑똑한 소비자들이 그것을 알아챈다
-> 곧 모든 소비자들이 그것을 알게 된다
-> 소비자들이 떠난다. 즉, 광고를 볼 사람들이 떠난다
-> 광고주는 볼 사람이 없는 이 미들맨에 돈을 쓰고 싶지 않아한다
-> 돈을 못 번다
-> 망
불행한 시나리오 #2
-미들맨이 유저 편에만 선다

-> 미들맨은 유저가 좋아할 콘텐츠와 서비스만을 제공한다
-> 광고주들이 그것을 불편해한다
-> 타협이 절대 없는 미들맨으로 인해 광고주들이 다른 채널로 이동한다
-> 유저는 넘쳐나지만 미들맨은 돈이 없다
-> 돈이 없으면 콘텐츠와 서비스를 만들어낼 직원들에게 월급을 줄 수 없다
-> 직원들이 떠난다
-> 망

슬프게도 둘 다 망하면서 끝이 났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중용을 지키지 못한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중용이란 무엇일까?

중용은 필자의 아버지가 굉장히 좋아하는 단어셔서 어릴적 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단어 중 하나였다.

중용이라는 말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단순히 가운데를 지키는 것이지만, 실질적인 내용은 적절함에 있다. 다시 말하자면 중용이란 지금 가장 적절 것을 의미한다. 실제 『중용』의 구절을 보면 감이 잡힌다. 2)

君子之中庸也, 君子而時中
군자의 중용이란, 군자답게 때에 들어맞게끔 함이다



중용이란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자세이며, 그것이 그냥 늘 중간에 있으라는 말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가장 적절한 자세를 취하는 것을 뜻한다.


중용이라는 단어가, 당연히 이 중간자(미들맨)라는 위치에서는 세상 더없이 중요하고 의미 있는 단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위의 불행한 시나리오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들맨이 지켜야 하는 중용이란 어떤 것일까.


“오직 고객만을 생각합니다.”  

좋은 말이지만 , 지마켓이 유저를 생각해서 모든 제품 가격을 20% 할인해서 팔라고 판매자들에게 말한다면, 모든 판매자는 쿠팡에만 물건을 팔 것이고, 유저들은 20% 할인 기대했다가 제품이 몇 개 없는 지마켓에 실망하고 쿠팡으로 떠날 것이다.


“오직 (광고)주님만이 나의 빛이라”

라고 회계장부를 보면 생각할 수 도 있겠다만..

드라마를 보는 와중에 화면에서 전화할 때마다 핸드폰의 새 기능이 10초씩 보이고, 로고가 보이는 음료수를 20초씩 마셔대는 PPL이 판을 치게 된다면 결국 아무도 그 드라마를 보지 않을 것이고, 문제는 시청률이 바닥난 드라마에는 어떤 광고주도 돈을 주고 싶지 않아할 것이다.


우리 회사는 수없이 많은 시간 동안 광고주와 유저, 광고주를 상대해야 하는 영업팀과 유저를 상대해야 하는 운영팀 사이에서 중용이란 줄다리기를 해와야 했다.  

늘 병원이 원하는 것들은 다 해주게 된다면, 그것은 돈만 바라보고 가는 쭉정이 같은 회사가 되어 망했을 것이고

반대로 별에 별 유저가 빼먹을 것만 쏙 빼먹고 떠나게 해준다면, 회사는 말 그대로 비영리단체가 되어 거리로 내몰렸을 것이다.  (물론 다행히 우리의 영업팀과 운영팀은 현명하게 행동하여 우리를 힘들게 하지는 않았지만)

또한 우리는 좋은 병원과 좋은 유저가 만나 서로에게 의미 있는 액션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플랫폼이지, 나쁜 병원이 광고하는 걸 돕고 나쁜 유저가 설치는 걸 돕는 곳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선 각각의 이해관계를 잘 인지하고 잘 활동할 수 있게 하면서도, 어뷰징(abusing) 플레이어를 제한하는 것을 고민해야 했다. 그 해결책은 결국 여러 팀원들과의 많은 대화였다.


'사용자를 생각하면서도, 돈을 잘 벌 수 있는 서비스'라는 타이틀은 기존의 예상보다 훨씬 더 가혹하고 스릴 있는 외줄 타기였고, 어느 순간에도 쉽지 않은 과제였다.  

하지만 그 어려운 걸 해내기 위해서 많은 팀원들이 오랜 회의와 고민과 격론과 다툼을 반복하며 현재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열정있는 끝장토론이 정반합을 통해 더 좋은 결론에 도달한다

그 상황에 맞는 올바른 선택을 하는 중용은 이런 것들로 부터 나올 수 있다.

어느 한쪽의 의견에만 귀 기울이지 않는 것.  

서로를 경청하고 비판하고 토론하고 수용하는 것.  

어떤 좋은 의견에도 반대쪽의 입장을 한 번쯤은 고려해 보는 것.

어떤 집단의 반대가 있을 수 있음에도 진정한 미들맨이 되기 위해 두루 시도해 보는 것.

그리고 이것들은 재미있게도 뉴스룸의 스탭들이 늘상 하는 행동들이다.

(단, 우리가 아직 부족한 부분들도 많이 있는데, 팩트를 의견의 증거로 준비하는 부분이나, 상대방의 의견을 냉철하고도 강력하게 비판하는 모습들은 아직 뉴스룸 수준은 아니다)


이를 통해 유저들이 변화를 싫어한다 해도 결과적으로 먼 훗날 더 좋고 편한 UX를 제공하면서 업체에게도 다양한 가능성을 제공하는 방식을 시도해 본다던가,

제휴업체들이 불평하는 기능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 일이 우리의 가치와 비전에 맞닿아 있는 일이라면, 유저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라고 믿었기에 반드시 밀고 나가야 했다.


조급해하지 않고, 더 먼저 나온 서비스들을 무턱대고 따라 하지 않고

천천히, 꾸준히, 묵묵히 우리만의 기능과 색깔을 만들며 걸어온 결과...

10개, 20개로 시작했던 제휴업체들은 현재 600개를 넘어서고 있고,

1000명, 2000명이던 다운로드 유저는 예전에 60만 명째를 지나쳤다.


한쪽이 아닌 양쪽을 모두 만족시키는 일.  

그 밸런스를 잘 조정해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 넘어지지 않고 올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하는 일.

그것은 좋은 뉴스를 만드는 일처럼 매우 힘들고 괴로운 작업이지만,

반대로 좋은 뉴스를 만드는 일처럼 매우 멋지고 짜릿한 일이기도 하다.


먼훗날에 지금의 팀원들과 함께 모인다면,

뉴스룸의 멋진 동료들이 좋은 뉴스를 방송하고 나서 서로에게 외치는 응원과 격려와 기쁨과 보람을 담은 그 한마디를, 우리도 외칠 수 있으면 좋겠다.

"Good show!"







1) 뉴스룸

- 왜 미국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가 아닌가?라는 영상이 SNS 돌았던 적이 있는데, 이 영상을 보고 너무 재미있어서 알아보니 각본의 대가 아론 소킨이 제작한 드라마 뉴스룸의 한 장면이었다. 그렇게 해서 시즌3까지 모두 보게 된 드라마. 추천합니다.

https://namu.wiki/w/%EB%89%B4%EC%8A%A4%EB%A3%B8(%EB%93%9C%EB%9D%BC%EB%A7%88)

2) 중용

나무위키 발췌

https://namu.wiki/w/%EC%A4%91%EC%9A%A9#fn-6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