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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혁 I Brown Mar 20. 2023

7년이나 한 스타트업에 다닌 사람의 일기

강남언니에서의 7년, 그리고 계속 달리는 이유

강남언니 팀에 합류한 지 어느새 7년이 지났습니다.

2016년 초,

신사동 어느 구석진 곳, 허름하고 오래된 건물 3층, 회의실도 하나 없고, 남녀가 화장실 한 칸을 나눠 써야 하는 곳(이게 가장 놀라웠음), 그마저도 남의 사무실 절반만 쓰던 시절...

서비스를 시작한 지 1년쯤 되는 5명 정도 되는 팀에 합류한 지 7년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7년간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고, 개발자로 들어와서 CTO, CPO, CCO(culture), 신사업리드까지 다양한 일을 경험했습니다. 정말 그 안에서 일의 기쁨과 슬픔, 사랑과 우정, 신뢰와 배신, 성공과 좌절등 다양한 인생의 양념들을 찍어먹어 보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지금 회사에서는 상상도 안 되지만.. 에이든(대표)이 조용히 다가와 "브라운(제 닉네임), 이제 우리 자금이 2달치도 안 남았어요.."라고 하던 시절도 있었고, 자금이 정말 쪼들려서 일부 경영진들의 월급이 밀리던 시절도 있었습니다(다른 구성원들에게 제때 주기 위해), 그러다가 기적적으로 투자를 받거나 지표가 좋아지거나 하면서 살아남았죠.


스타트업이란 단어도 생소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동료들의 버킷리스트를 조사하면 "내 주변에서도 아는 사람이 있는 회사, 외국인 동료가 있는 회사"같은 꿈들을 얘기하고 정말 그런 날이 올까, 너무 허황된 거 아닌가, 하면서 웃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엔 정말 아무도 모르던 강남언니라는 서비스는 이제 2, 30대 여성 중 모르는 사람을 찾는 게 더 힘든 서비스가 되었고 힐링페이퍼라는 회사는 본사만 120명에, 일본지사와 2개의 자회사까지 생겨 150명에 가까운 회사가 되었습니다. 물론 다행히도 이제 화장실도 남녀 각각 여러 칸을 쓰게 되었습니다~ 만세!! :D


이렇게 오래 다니다 보니 어느덧 창업 멤버가 아닌데도 7년간 한 회사를 다닌 저의 경우가 업계에서 꽤 신기한? 케이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자주 듣는 질문 중에 하나가 이거였습니다.


“왜 아직도 이 팀에 남아있나요?
7년이나 한 회사에 다니게 만든 이유가 있나요?”


놀랍게도, 이런 질문들 덕분에 계속 고민한 덕분인지 저는 꽤나 확실한 답변을 일관되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건 바로 재미입니다. 그리고 믿음!


재미있는 일을 하는 것.

우리가 일하는 곳을 재밌는 곳으로 만드는 것.

사실 이 것이 제가 대기업을 나와 위에 설명한 허름한(?), 하지만 미래가 빛나보이던 회사를 찾은 이유였습니다. 제가 S사를 재밌는 곳으로 바꾸는 건 어려워 보였거든요 ㅎㅎ


그럼 저에게 있어 재미란건 뭘까요?

동료들끼리 늘 '하하 호호'하면 재밌는 걸까요? 쉽고 편하면 재밌는 걸까요?

회사상황과는 무관하게 개인의 성장, 개인의 취향에 맞으면 재밌는 걸까요?

저에게 재미는 전혀 그런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7년간 느꼈던 재미는 정리해 보자면 아래 3가지로 나눠집니다.

1. 회사가 성장함에 따라 점점 더 어려워지는 문제를 푸는 재미

2.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재미

3. 환상적인 동료들을 만나 서로를 자극하며 성장하는 재미



자세히 풀자면 이 3가지 이야기만으로도 하루종일 떠들 수 있겠지만, 요약해 보자면..


1. 점점 더 어려워지는 문제를 푸는 재미

처음 5명일 때, 그리고 20명일 때 찾은 정답(같아 보이는 것)은 지금처럼 100명이 넘어가고 나니 아련히 먼 오답(같아 보이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영화 제목 비슷한 말처럼요.  결국 매번 상황이 달라지고, 더 큰 회사, 더 많은 것을 신경 써야 하는 조직, 더 복잡한 환경이 주어짐에 따라 계속 우리가 풀어야 하는 제품, 사람, 문화에 대한 문제들은 더 어려워졌습니다. 반면 그렇기에 질리거나 루즈해질 일이 없었죠! 힘들면 힘들었지 ㅎㅎ


2.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재미

저는 개발자 출신이었지만 개발 그 자체보다, 팀을 만들고 문제를 풀어내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개발자보다는 개발팀 리더, 그보다는 제품 전체의 리더를 하게 되었고 추후에 좋은 선배님들이 합류하신 뒤에는 조직 전체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한 조직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일에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신규 사업을 해내기 위해 또 새로운 도전 중이고요.


3. 환상적인 동료들이 주는 피드백과 성장의 재미

이 과정들 속에서 제가 철저하게 깨달은 것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예전에 꽤 “방어적인 사람”이었는데요. 더 좋은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그들의 피드백을 통해서 저 또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한 결과, 최근에 만나는 사람들은 제가 “방어적”이었다는 사실에 놀라실 정도로 바뀔 수 있었습니다. 이런 변화와 성장 모두가 저를 깜짝 놀라게 만드는, 이런 사람과 함께 일한다니!라는 생각으로 가슴 뛰게 만들어주는 동료들 덕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3가지 재미를 통해 회사가 성장하면서 또다시 3가지 재미의 요소들을 더 만들어주는 재미의 플라이휠이 있었기에 계속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당연히! 늘 재미있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믿음도 필요한거죠)

때로는 회사가 생각만큼 성장하지 못했고, 그래서 지루하게 비슷한 문제를 풀어야 할 때도 있었고,

때로는 멋진 동료들이 늘어나지 않거나 떠남으로 인해 힘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뭐 어쩌겠습니까? 인생이 원래 그렇잖아요.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원하는 만큼 되진 않습니다.

다만 원하는 것이 분명한 채로 열심히 달리다 보면 거짓말처럼 예기치 않게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인생 속 깨달음이자 믿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오르락내리락하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네요.


이제 그만큼 성장하고 경험했으니 이제는 조금 쉬워졌을까요?

놀랍게도 또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너무나 어렵고 새롭습니다. (하하하... 나는 기쁘다..)


그럼에도 저는 믿습니다.

분명히 이번 문제도 어떻게든 풀어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란 걸.

언제나 저희 팀은 함께 모여서 이런 역경을 견뎌내어 왔고, 그래서 이제 예전에 우리가 겪었던 문제들을 돌아보면 쉬워 보일 만큼 성장해 왔고, 그렇기에 이번에도 함께 이겨낼 수 있으리란 걸.


여러분도 어릴적 했던 고민과 그때 겪은 어려움들이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면 대부분 견딜만 했던 일이 되지 않았나요?

그래서 우리도 훗 날 오늘을 돌아볼 때, 지금 먼 과거를 그렇게 돌아보듯이 "와 이때는 정말 위기라고 생각하고 힘들어했었는데 말이지"라며 웃으며 돌아볼 수 있을 거란 걸, 저는 믿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 결코 쉬운 길, 빠른 길, 한 번에 몇 단계 건너뛰는 치트키 같은 길은 없고 모든 여정마다의 고난과 실패와 배움을 온전히 켜켜이 겪어내야만 또 한 번 걸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다”

이런 클리셰 같은 말들이 왜 클리셰가 되었는지 이제는 점점 이해가 갑니다.

7년 전에 아무것도 모르던 저와, (거의) 아무것도 없던 강남언니팀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절대 이미 강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 과정이 정말로 재미있었기에 잦은 실패 속에서도 계속해서 시도했고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고 함께 노력했기에 결국 우리는 살아남았고 그래서 강해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또 앞으로 우리가 만날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시 한번 함께 살아남아서 또다시 강해질 거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꼭 재미있기를 바랍니다.


언젠가 강남언니팀에서의 10년을 회고하는 글을 쓰길 기대하며 이만 줄입니다.

우리 살아남아서, 더 강해져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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