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명동 죽순이(?)였다.

20대 때 취미가 아이쇼핑

by 셜리

20대였던 라떼에는 그랬다. 심심하면 그리 가깝지도 않은 명동을 들락거렸다. 진심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날에는 아침 일찍부터 그곳을 쏘다녔고, 상점들의 불이 꺼질 때까지 그곳에 머문 적도 상당히 많았다. 그곳에서 도대체 무얼 하느라?

아.이.쇼.핑.

요즘도 이런 말을 쓰지는 모르겠다. 아이쇼핑은 콩글리시이니, 정확히는 윈도쇼핑이 맞겠지. 주머니가 가벼웠던 20대 학생 시절에 비싼 옷들을 혼자서 턱턱 살 수는 없었기에, 주로 눈요기 목적으로 명동 구석구석을 쏘다녔다. 그때는 또, 연예인들이 입을 법한 예쁘고 화려한 옷들에 대한 욕망도 강렬했던 시절이라, 아이쇼핑은 내게 일종의 대리 만족이 되었다.


그렇게 눈요기를 자주 하다가 점점 대담해져서 한 옷가게에서만 열 벌, 스무 벌을 입어 제껴보고는, 부러 없는 색상의 옷은 없는지 물어보거나, 작은 단점을 지적하며 "좀 더 둘러보고 다시 올게요"라는 빈 말을 날리며 가게를 나서고는 했다. 몹시 뻔뻔하기도 했지만, 반면에 상당한 체력이 필요하는 일이기도 했다. 게다가 내가 아이쇼핑하러 가자고 하면 군말 없이 따라나서는 동네 친구까지 두었으니, 그야말로 더욱 당당하게 그러고 돌아다녔다. 한참 세월이 지난 뒤에 그 친구는 얼마나 너 따라다니느라 힘들었는 줄 아냐, 나니까 너 따라다녔다, 네가 좀 심하게 지구력이 강한 거지 자신이 약한 게 아니다, 등등의 불평을 내게 늘어놓았다.


그렇게 명동거리를 얼마나 쏘다녔던지, 명동의 브랜드 지도를 망설임 없이 그려댈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당시에 한 건물에 다양한 브랜드가 입점하고 카페나 식당이 일부 들어오는 것이 새로운 트렌드였다. 나는 명동의 그 많은 건물의 층별 브랜드들의 위치를 다 외우고 있었고, 브랜드별 실질적인 고객들의 연령대까지 꿰차고 있었다. 게다가 놀랍게도 그 브랜드들의 타깃 고객과 실제 고객과의 차이가 무엇인지도 자연스럽게 파악하고 있었을 정도. 당시 이러한 경험과 지식의 가치를 전혀 알 수 없었던 나를 되돌아보면, 많이 안타깝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 같으면 패션 유튜버를 하던가, 패션 계통에서 꽤나 잘 활용해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모순되게도, 나는 명동에서 옷을 산 적은 별로 없었다. 어느 날인가는 늘 들르던 옷가게의 점원이 나를 단골 고객으로 착각하면서, 친절하게 그리고 익숙하게 옷들을 여러 벌이나 입어보게 해주었다. 속으로 참으로 미안한 마음이 그제야 들었고, 꼭 그 때문은 아니지만 그 가게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옷을 샀다. 그 후에도 그 가게에 자주 들렀지만, 살만한 옷은 없어서였다. 아마도 내 옷 욕심은 여러 벌 입어보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었나 보다.

img.png Photo by StockSnap on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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